브런치북 설치전-1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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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화실

나라서 안 되는 이유

by moonrightsea Jul 30. 2023

" 알아보니 니 정도 성적이면 여상 가서 전교 1등이고 졸업하면 바로 취업이야. "

" 저 열심히 공부했어요. 아버지."

나는 그렇게 눈물이 맺힌 채 고개를 숙이며 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면 뭐 하니. 성적이 전교 1등이 안되는데... 이렇게 어중간한 성적으로는 인문계 가 봐야 제대로 된 직업도 못 찾고 결국 등록금만 축내는 대학생활을 할 거야. 미래도 불안정하고. 그러니 아빠 말 들어. 더는 고집부리지 말고."

" 저 열심히 공부했어요. 아버지."

" 너는 아버지 말씀하시는데 어디 말대꾸야? 여보 미소는 제가 잘 타이를 게요. "


" 어멈아. 버르장머리는 바로 고쳐야지. 네가 맨날 재를 싸고도니까 저리 싸가지 없이 어른들 말에 자꾸 토를 달고 끼어들잖니. 재는 혼이 좀 나야 해. "

" 저 열심히 공부했어요. 아버지."


나는 분노에 차서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을 째려보며 다시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한참을 운동장을 달리고 온몸이 눈물과 땀으로 젖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 어서 가서 씻어. 아버지 알기 전에."




" 누나. 누나 나가고 할머니께 어머니 얼마나 혼났는지 알아? 누나 교육 잘 못 시켜서 집안이 이지경이라고..."

" 네가 뭘 알아? 네가 공부 못한다고 구박을 받았어? 하고 싶은 공부 뒷바라지 안 해준다고 어른들이 말이라도 하든? 네가 어떻게 아냐고. 내 심정을.... 흑흑."

그렇게 말하며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렇게 울었다.


방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들어오셔서는

" 어디 계집애가 귀한 손자한테. 여상이나 가서 돈이나 벌면 될걸. 뭐 하러 이런 거를 대학을 보내겠다고 지엄마는 남의 아들 속을 다 뒤집어 놓고. 뭐가 이뻐서.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어른한테 말이야 고함이나 지르고. 너는 신경도 쓰지 마. 귀한 손주"


나는 이불을 들어 할머니를 노려봤다. 그러자,

" 어디 어른한테 이리 싸가지 없이 노려봐."

나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었다. 설움에 복받쳐. 


다음날.

" 아버지께는 내가 잘 말씀드렸어. 너 여상 안 가도 되니 그만 일어나. "


" 엄마 정말? 엄마가 말했다고? 드디어? "

" 그래. 네가 그랬잖아. 할 말 하고 살라고. 늦겠다. 어서 씻어."



창림여고에 입학하고도 벌써 9월.

나름 지역의 유일한 연합 인문계 고교고 다들 성적이 좋아야만 올 수 있는 곳이다 보니 이미 1학년 2학기 말쯤 되니 나름의 진로를 대부분 정하고 열심히다. 하지만 육상을 그만둔 후 내게는 목표나 꿈이라고는 그저 공부. 

그것마저도 창림여고에 입학하니 입학 성적이 전교 20등이었는데 매 시험을 치를 때마다 성적은 곤두박질 쳤다. 목표가 사라진 뒤 하는 공부는 그저 허송세월일 뿐. 그런 내게 유일한 낙은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거나 그 만화를 열심히 따라 그리고 수업시간에 듣지 않는 영, 수 수업은 잠을 자는 것. 


평소 만화를 자주 그려 친구들 얼굴을  간간히 그려주고 한 실력 때문에 친구들은 곧잘 내게 얼굴을 그려달라 사진이나 잡지를 가져왔고 그런 친구들의 그림을 그려 주는 걸 유일한 낙을 삼았던 내게 희경이 다가왔다. 


이미 입학도 하기 전부터 미술을 전공하며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던 미대에 입학을 자원한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던 그녀가  목표도 없이 방황하는 나와 비교되어 영 못마땅했지만 희경은 내게 어느새 다가와 미주알고주알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을 만큼 학급의 소식통에 어느 날부터는 부쩍 내게 친근함을 표시하며 더 살갑게 다가왔다. 


그러던 11월 어느 날.

" 가자. 응? 진짜 가보면 좋다니까? "

" 나 가봐야 학원비도 없어. 그래서 못가. 내가 거길 왜 가냐? 가서 뭐 하라고."

" 그냥 나 따라가는 거라 생각하면 되잖아. 그냥 가서 그림만 구경해. 그럼 되지. 그리고 가는 길에 우리 우혁이도 보고."

" 우혁이? 우혁이가 누군데? "




" 올 이제야 흥미가 생기는구나? 있어. 장원고 2학년. 얼굴이 하얗고 뽀애. 창문가 앉아 있음 얼마나 빛이 난다고. 야 내가 그 오빠 보려고 그 미술학원 가잖아. 시내 다른 미술학원 안 가고. 가자. "

그렇게 희경의 손에 이끌려 장원고 가기 전에 위치한 미술학원에 갔다. 


1층은 안경원, 2층은 노래방, 3, 4층이 화실인 미술학원은 복도를 올라가는 계단마다 그림이 전시되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둡고 길게 이어진 복도를 따라 포인트 조명이 켜져 있고 그 벽면 포인트 조명을 받은 그림들은 바라볼 때마다 마치 살아 있듯 꿈틀 대는 느낌. 나와 시선을 마주한 흑백의 그림 속 인물은 나를 바라보며 시선을 맞추는 느낌. 그 신비한 느낌은 나도 모르게 그 길을 따라 원장실로 안내했다.


원장실로 들어서자 커다란 눈에 초점이 풀린 듯 많이 피곤해 보이는 원장 선생님이 나를 보시고는 

" 어서 와요. 희경이 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

" 안녕하세요. 창림여고 1학년 이미소입니다. "


" 앉아요. 그림에 재능도 있고 공부를 곧잘 한다고?"

" 아 아니에요. 저 지금은 성적이.."


희경이 잽싸게 내 입을 막고는

" 얘 입학할 때 전교 20등이었어요. 지금이야 뭐 조금 방황 중이지만... 그림도 진짜 잘 그려서 잘할 거예요."

나는 그런 희경의 손을 살며시 떼며,


" 저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그림을 배우고 싶은데 아직은... 학원비도 없고..."

" 아 그거야 걱정 안 해도 돼. 뭐 재능도 있고 성적도 되는데. 부모님 설득은 차차 그림을 그려 보면서 하면 되고 무엇보다 그렇게 열정이 있는데 포기하기는 너무 아깝잖아?"


" 이렇게 온 것도 인연인데 우선 학원비는 선생님이 받지 않을 테니 다녀보면서 같이 고민을 해봅시다. "

" 그래도 배우면서 학원비를 못 드리는 건 말도 안 되고..."

" 그건 어른 들 문제니 미소양은 너무 걱정 말고. 자 우선 여기 이것부터 좀 적고... 잠시만. "




그렇게 말하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재민샘 좀 불러주세요."

이윽고 원장실 문이 열리자, 귀까지 오는 굵고 브라운 색이 도는 웨이브 머리를 한 남자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우수진 눈빛 짙은 쌍꺼풀. 오뚝한 콧날 위에 둥근 형의 뿔테 안경을 쓰고 날렵한 턱선을 지닌 하얗고 창백한 얼굴의 남자.

  그런 외모와 반대로 체크무늬 남방과 흰 티를 겹쳐 입은 소매 사이 선명히 드러나는 팔뚝의 근육과 셔츠 아래 단단히 자리 잡은 떡 벌어진 가슴. 한눈에 봐도 그는 제법 운동을 하는 다부진 체격.


 그는 빤히 그를 관찰하는 나를 보자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귀까지 빨개졌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 어머 재민샘. 나보고 반하셨군요. 어머 귀까지 빨개졌네. 오호호호"


그러자 곁에 있던 희경의 입을 막고 원장이,

" 재민샘. 여기 창림여고 1학년 이미소 양. 오늘부터 화실에서 그림 배울 테니까. 잘 챙겨주고 안내 좀 부탁해요. 희경아 너는 나랑 이야기 좀 하자. "


" 네. 안녕. 이 미소구나. 이름이... 반가워. 오늘부터 너를 지도하게 될 경원대 3학년 정재민이라고 해. 잘 부탁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내 손을 이끌고 화실 밖으로 나왔다. 슬며시 손을 빼자, 그가 당황한 듯 연신 힐끗힐끗 뒤를 돌아보며 

" 음. 우리 안면이 있지 않아?"


" 아 제가 조금 흔한 얼굴이죠? 그런 말 많이 들어요. "

" 아니 내 말은 혹시 나 기억 안 나?"


" 음... 전혀요? 우와 그림이 진짜 멋지네요?"

" 아 내 정신 좀 자 이리로 따라 올래?"

그렇게 그의 손에 이끌려 화실 이곳저곳을 안내를 받았고 그렇게 나는 화실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화실에서 나는 기초반이었다. 

처음 화실에 가면 선긋기, 색감 내는 법, 다양한 드로잉 요령 등 숱한 기초 수업을 하고 석고상 중 기본 도형을 수업을 하고 그 도형 수업이 완료되어 어느 정도 형태라는 개념이 생기고 색감을 표현할 즘이면 석고조각상을 그리는 수업으로 넘어가는데 그전까지는 기초 데생으로 구석에서 기초데생을 하는 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그 옆에서 석고조각상 기본 형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졌다. 


처음 기초 소묘를 할 때만 해도 나는 원장선생님의 지도를 받았고 진도가 나갈수록 점점 원장샘의 부탁을 받은 재민샘이 조각상들을 그리다 내게 와서 그림을 봐주는 일들이 많아졌다. 


평소 석고조각상 수업을 듣는 반 애들이 10여 명 정도였는데 수업을 하다 재민 샘이 내게 와 수업을 할 때면 그 반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다 물끄러미 우리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 계속 신경을 쓰자, 재민 샘은 내게 얼굴 바짝 대고는


" 긴장할 필요 없어. 다들 네가 진도가 빠르니까 신경이 쓰여 그래. 승부의 세계는 냉철하니까. 힘내.."


그렇게 말하며 잔뜩 긴장한 내 어깨를 잡고는 뒤로 쭉 당겨주었다. 그런 그의 손이 부담스러워 내가 기지개를 켜며 

"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면 이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내 어깨에 쓱 어깨동무를 하며 그는 속삭였다. 

" 자 우리 한 달만 응? 그럼 충분히 우리 반으로 올라올 거야. 조금만 더 힘내라고. "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내게 응원의 말들을 남겨두고 다시 수업하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런 재민샘의 응원에 힘입어 어느새 나는 그림 시작하고 2달 만에 바로 상급반 즉 석고조각상 반 수업으로 올라갔다. 물론 그 과정을 나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주말마다 시간을 내어 학원에 와서 그림을 그렸고 저녁이면 독서실을 가고 하는 생활을 반복하며 성적에도 신경을 썼다. 그림을 했다고 성적이 떨어지면 안 되니까. 

주말인 그날도 그림 그린다고 학원으로 간다고 하니 웬일인지 희경이 화실에서 보자고 했다.



나는 화실에 올라가는 길에 두 손에 호빵을 사서 들었다. 식기 전에 얼른 전해주고자 급히 화실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데 계단을 내려오는 누군가와 나는 부딪혔고 그만 호빵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호빵에

" 아.. 희경이 건데 어쩌지... "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의 호빵을 바라보자, 이내 크고 긴 손가락이 내려와 호빵을 쥐고는 

" 후후.. 아 어쩌지. 미안. 이건 내가..."


그의 말에 고개를 들자 어느새 불쑥 내민 손이 보였다. 그 손을 잡고 내가 일어서자,

" 아 이건 내가 버리고 다음에 음료수 사줄게. 안녕? 네가 미소구나?"


" 아 안녕하세요? 근데 누구? "

" 난 성현이라고 해. 희경이 한테 이야기 들었어. 너 희경이랑 친하다며? 반가워. 난 김성현이라고. 이번에 그림 시작했어. 바로 디자인 실로 들어가서 나 못 봤나 봐?"


" 아... 네... 안녕하세요. 이미소예요. "

인사를 건네자 그는 다짜고짜 악수를 하며 내밀었던 손을 들어 내 앞머리를 귀옆으로 넘겼다. 

" 훗. 귀엽네. 자주 보자. "

순간 당황한 나는 목례를 하고 후다닥 뛰어 실기실로 향했다. 


그러자 내손에 있던 호빵을 휙 가로챈 희경이

" 음? 이거 내 거지? 잘 먹을게. 근데  왜 한 개야? 니 거는?"


" 아 오다 부딪혀서 떨어 뜨렸어. "

" 아이 이런 칠칠이 너 또 넘어졌구나? 조심 좀 하지. 너 오다 성현오빠 봤어? 완전 잘 생기지 않았냐?"

" 관심 없어. 그런 사람. 넌 여기 웬일이야?"



" 아 있어봐. 이리 와봐. "

그녀는 내 손을 이끌고 비상구로 향했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한대 피기 시작했다. 

" 야 너 담배..."

" 야 너까지 잔소리하지 마. 안 그래도 재수 없는 그 인간이 지랄을 떨어서 겨우 피해왔으니까.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희경은 다시 담배를 한대 피고는 내게 말했다.

" 며칠 전에 버스를 탔는데 우혁이 버스에 마침 앉아 있는 거야? 내가 너무 놀라서 한참을 바라봤거든? 그랬더니 우혁이 나를 보더니 씩 웃는 거야? 야 너무 설레지 않아?"


" 오 드디어 너를 알아봤구나? 그래서?"

" 그래서 내가 가서 인사를 했지. 아 얼마나 잘생겼는지 눈이 부셔. 창가에 내리는 햇살에 완전 반짝반짝 빛이 나면서..."

" 희경아 나 그림 그려야 해. 응?"


" 알았어. 아무튼 그래서 내가 가서 손을 내밀며 인사를 했지.' 나 희경이. 창림여고 다녀. 자주 봐요. 그랬거든?" 

" 와 진짜 너 용기 있구나? 멋진데? 뭐라 그래?"

" 피식 웃더니 ' 숨 쉴 동안은 요.' 그렇게 말하고 버스에서 내리는 거야."

" 엥? 그게 뭐야. "


" 야 정말 멋지지 않아? 그 사람 지금 나한테 반한 거 맞지? 그렇지 정말 로맨틱해."




" 뭐래니? 너 까인 거잖아." 

" 아니거든? "

" 뭐가 아니야?"


" 들어봐. 그래서 오늘  너한테 이 이야기 들려주려고 내가 버스에 올랐는데 또 만났어."

" 진짜? "

" 응. 그래서 내가 가서 왜 지난번엔 그냥 갔느냐. 인사만 하고 그랬더니 대뜸 나한테 전화번호를 주잖아."

" 우와. 그럼 전화해 봐. 당장."


" 안 받는데? 어떻게 하지?"

" 헐 그럼 너 그 이야기 때문에 이렇게 난리치고 온 거야?"

" 야 나 좀 도와주라. 어떻게 하지? 응? "


" 희경아 그건 그거고 너 전화 좀 받아. 자꾸 전화 오잖아. 신경이 쓰여 집중이 안돼."

" 아이 씨발. 이 인간은 왜 나한테 전화질이야. 자꾸. 집 나간 년한테 안 하고."

" 아버지 셔? 어서 받아봐. 언니 또 집 나간 거야?"


" 아. 젠장. 잠시만? 여보세요? 응. 내가 어떻게 알아. 그년을... 응... 거기로 오라고? 알았어. 뚝."

희경의 표정은 일순간 일그러지며 잔뜩 화가 나 있었다. 

" 희경아... 괜찮아?"


" 아 재수 없는 년이 들어와서는 이렇게 나를 괴롭히냐? 언니라고 있는 게 맨날 집구석이나 나가고 지 아비는 잡으러 다니고 둘 다 정말 재수 없어. 아 씨발 젠장. 나 간다."


" 응? 희경아 어디 가는데?"

" 어디긴 어디야. 그년 잡으러 가는 거지. "


희경이 밖으로 나가고 내가 따라 내려가자 갑자기 하늘에서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희경은 방금 막 도착한 버스로 미친 듯 달려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뒷좌석으로 와서는 뒤따라 가던 나를 보며 손을 흔들고는 연신 전화를 한다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자리에 앉아 멀어져 갔다. 



추운 겨울이 지나 2월. 어느새 봄이 다가오는 계절.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화실에서 집으로 향했고 집에 들어서자 집안의 공기는 냉랭했다. 안방 문 앞에서 할머니가 안절부절하며 서 게시고 남동생은 계속 그런 할머니를 방안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안방 안에서는 어머니의 울음 섞인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 무슨 일이야?"

당황해서 내가 묻자, 남동생은 휙 하고 방으로 들어갔고 할머니는 

" 신경 쓰지 마. 그냥 너는 방에 들어가 있어. "


라고 말하시며 나를 방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데 그때

" 나 도저히 못 참아요. 이번은 절대 그냥 안 넘길 거야. 나랑 이혼해요. 아무리 해도 이건 아니야. 어떻게 당신 외벌이에 힘들게 이날 이때껏 암말 안 하고 그렇게 견디며 살아왔는데... 어떻게 집을 넘겨. 넘기길. 당신 제정신이에요? "

" 당신이 몰라서 그래. 사업이 쉬운 줄 알아?"


" 한두 번이어야 말이죠. 감옥 간다고 돈필요하다고 합의금 줘. 장가간다고 집 필요하다고 힘들게 모은 적금 깨줘. 하다 하다 이제 지들은 60평 빌라 살면서 응? 우리 집을 저당 잡아요? 그게 말이나 돼요? 내가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왔는데... 어? 양말 하나 안 사신고 하다 못해... 응? 당신 눈에 애들이 보이긴 해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부들부들 방앞에 그렇게 떨고 서있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나를 기어이 끌어 방으로 밀어 넣고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셨다. 그리고 간간이 들리는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


" 내가 해주라고 했다. 어? 내 자식이 피눈물을 흘리는데 어떻게 하냐? 형이라도 도와야지. 그리고 너는 뭘 그래 대단하게 살았다고 그리 퇴근한 남편을 쥐 잡듯이 잡아? 뭘 얼마나 해왔다고 형편도 어려워 혼수도 제대로 못해와 놓고. "

" 어머니 제가 뭘 그리 아직도 미우신 거예요? 네? 이번에는 저 그냥 못 넘어가요."


" 아 당신은 가만히 있어. 어머니께 무슨 말버릇이야? 어머니 죄송합니다. 이 사람이 많이 화가 나서..."


" 내가 아무 말 안 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 저리 속에 능구렁이 들어서는 지 시동생이 그리 힘들다고 난리 치는데 들어주지도 않고 말이야. 내 딸들이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그 몇 푼 되지도 않는 계금 그거 뭐라고 빌려 주지도 않고 악착같이 틀어쥐고는... 독한 년. "

" 어머니!"




" 어머니 말씀 잘하셨네요. 저 악착같고 독한 년 맞아요. 저희도 살아야죠. 그러니 이번에는 양보 못해요. 절대 아니면 이혼하던가요. "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짐을 챙겨 집을 나가셨다. 


어머니는 서울에 시집간 언니네로 가셔서 어린 조카들을 봐주신다며 2달을 있다가 내려오셨다. 


그사이 집안 살림이며 식사 청소는 모두 내 몫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빨래를 돌리고 밥을 차리고 서둘러 아버지 옷을 다려 놓고 다시 내 도시락과 남동생 도시락을 싸고 할아버지 할머니 식사 드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교복을 입고 미친 듯 달려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방학 보충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서 다시 저녁 식사 준비를 해놓고 나는 밥을 굶은 채 다시 화실로 향했다. 

그렇게 지쳐 가던 하루하루 그날도 어김없이 주말 일요일 오후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내 곁에 성현이 다가왔다.

" 자 이거 마셔."

그가 건넨 음료수. 

" 아 별로 생각이 없어요. 선배님."


" 선배는 무슨. 그냥 오빠라고 편하게 불러. 안 그래도 심란해 보이는데."

" 아... 그냥 집에 일이 좀 있어서요. "


" 아 뭐 집안일이야 말 못 할 수 있으니. 힘내라고. "

그는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그런 그의 손이 부담스러워 나는 슬며시 어깨를 흔들었다.


" 아 이런 거 부담스러운 가봐?"

" 네. 집에 남자라고는 남동생인데... 오빠도 없고. 뭐 저희 집이 보수적이기도 해서요. "



그러자 그가 손을 들어 한번 손바닥을 보고는

" 아 이거. 그냥 난 편하게 마음먹으라고 별 뜻은 없었어. 근데 실력이 부쩍 많이 늘었구나."


" 뭐 저에 비하면 선배님도 만만치 않은 걸요.  벌써 입시반에서 자리 잡고 계시니."

" 그거야 난 급하니까. 늦었잖아? 많이. 시작이 늦은 만큼 열심히 해야겠지?"


" 열심히 하시는 모습 보기 좋아요. 힘내세요. 선배님"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생긋 웃어 보이고 연신 조각상을 보고 그렸다. 그러자 성현이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 너도 보기 좋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힘이 돼. "


" 인생이 달린 문제잖아요. 열심히 해야죠. 둘 다. 우리 힘내요. 선배님 파이팅!"

나는 그를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는 그렇게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그가 환하게 웃으며 붉어진 두 볼을 한번 쓱 만지고는 


" 그 선배님이란 소리. 안 하면 안 돼? 그냥 오빠라고 불러. 편하게 성현오빠라고."

" 네? "

" 아 난 여동생이 없거든. 집에서도 막내라서. 그러니 너 편하게 부르라고 따라 해봐. 성현오빠."

" 음... 성현오빠? 이렇게요?"


" 크큭. 듣기 좋네. 앞으로는 그냥 편하게 그렇게 불러 알았지?"

" 네. 성현오빠. "

" 아 듣기 좋네. 뭐라 부르라고?"

" 성현오... 빠요?"

" 하하하하하하하 "

내가 그렇게 부르며 그를 바라보자 그는 큰소리로 웃으며 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나도 그런 그를 바라보다 다시 조각상으로 시선을 옮긴 채 그렇게 집중하며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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