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설치전-1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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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오해

나만이 보이는 것들

by moonrightsea Jul 30. 2023

" 자 미소야. 잠시만 그대로 있어봐. " 

한창 그림을 봐주며 주변을 돌던 재민샘은 손을 앞으로 뻗고 허리에 힘을 준 채. 한 손은 허벅지에 올리고 석고상을 응시하고 있는 내게 말했다. 


그리고는 다가와 내 팔꿈치를 한 손으로 받치고 한 손은 내 어깨를 잡은 채 얼굴을 내 얼굴에 대었다. 나는 흠칫 놀라 그를 바라보자, 그의 거친 한숨이 내 볼에 전해졌다. 그는 바로 눈앞에서 나를 한번 흘깃 보더니 윙크를 하고

" 뭘 놀라고 그래. 자 앞에 봐. 석고상. "


그렇게 말하며 그를 보던 내 턱을 살며시 돌리고 내 볼에 얼굴을 붙이고는 

" 자 한쪽 눈을 감고 연필 끝을 봐. 보이지?? 기울기."


그가 시키는 대로 한쪽 눈을 감으니 선명히 드러나는 조금 툭 튀어나온 석고상의 잘못된 형태. 

" 아 보여요. 저 부분이 제가 실수한 거네요. "


그러며 그를 바라보자 바로 눈앞에 있던 그는 다시 한쪽 눈을 찡긋 하며 말했다. 그의 거친 숨을 참는 호흡이 내 얼굴에 전해져 재민의 눈을 보자 붉어진 두 뺨과 귀가 눈에 들어왔고 흔들리는던 재민의 눈동자도 이내 안정을 찾으며 내 두 눈을 응시했다. 

그러자 그는 내 어깨에 올려두었던 손을 쓱 내려 내 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허리를 펴서는 두 손으로 내 어깨를 감싸 쥐고 나를 일으켜 세운 뒤 뒤로 당겼다.


그가 이끄는 손놀림에 이끌려 뒷걸음질을 치자 이내 그의 넓은 두 가슴이 내 등에 닿였다. 

두근두근. 


전해지는 그의 심장 소리.

나는 그만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고 다시 그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환하게 웃었다. 그때,



" 샘은 너무 미소만 자세히 봐주는 거 아니에요?"

질투 섞인 미정의 목소리. 

" 혜영이는 몇 개월이 지나도 아직도 실력도 안 늘고 샘이 잘 안 봐줘서 그대로인데..."

그러자 그가 당황하며 말했다. 

" 뭐 다들  봐주고 있잖아. 이제 혜영 차례인가?"


그렇게 말하며 그는 이내 내 어깨의 손을 풀고는 서둘러 혜영의 자리로 갔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희경이,

" 야. 미소."

희경이 연신 고개를 까닥거리며 나오라고 신호를 보냈고 그런 희경의 뒤로 시계를 보니 쉬는 시간이 다되어 가서 나는 희경을 따라 화장실로 갔다.

 

" 쏴~~~ 아아앙"


" 야 재민샘이랑 너 무슨 사이야? 너에 대해 물어보더라?"

" 나? 제자 관계? "

" 칫 뭐야. 재미없게."


" 그런 너는 재민샘이 너한테 왜 내 이야기를 물어봐? 둘이 친해?"

" 아 있어. 어떤 재수 없는 년 때문에... 암튼 그런 게. 나중에 말해줄게. "


" 너 언니는 집에 들어왔어?"

" 야. 그 재수 없는 년은 말도 하지 마. 으 짜증 나. 나와."





주말 화실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곁에 누군가 음료수를 놓고 간다.

바라보니 성현이었다.

" 저 이렇게 계속 안챙겨주셔도 되요. 제가 너무 부담스러운데..."

" 뭘. 열심히 하는 거 응원하는 건데. 마셔. "


" 아 그럼 제가 다음에 밥 살게요. "

" 그래? 그럼 오늘 저녁은 내가 7시에 수업이 끝나니까 그때 밥 먹을래?"

" 아 저 오늘은 6시 되면 가봐야해요. 서울에서 언니들이 온다고 했거든요. "

" 아 그렇구나. 그럼 뭐 오늘만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다음에 얻어 먹지 뭐."


" 감사합니다. 선배."

" 응? 또 선배? 영 섭섭한데? 그렇게 내가 어려워?"

" 아 그건 아니고 ... 어색해서요. "


그렇게 말하자 그가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다가와 허리를 굽혀서는 얼굴을  들이 밀었다.

" 아 이건 아닌데 영 실망인데?"

나는 당황하며 그를 바라보자,


" 흠 우리 꽤나 친해진 줄 알았거든. "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돌아가 무심한 듯 이젤에다 그림을 그렸다. 


" 음 그게 제 말은... 제가 좀 낯을 가려서 그래요. 죄송해요. "

그러자 그가 다시 일어나 내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탁탁 두드리며,

" 그건 나도 마찬 가진데? 근데 넌 뭐랄까... ? 사람을 편하게 해줘. 네 말과는 달리. 음 말을 막 하고 싶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해야하나?"


" 제가요? 성현오빠? 어디를 봐서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 봤다. 그러자 그가

" 바로 이런 부분. 후훗. "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내 코를 툭 치고는 다시 가서 그림을 그렸다. 나는 머릿 속에 물음표가 떴다. 



며칠 뒤. 쉬는 시간.

화실에 들어가자 지난주 그렸던 내 그림을 재민 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보고 계시다 이내 나를 자리에 앉히시고는 

" 여기 봐봐. 이 부분이 어색하지 않아?"

나는 그가 가리키는 대로 시선을 돌리자, 어두운 색감이 진하게 구분 없이 채색되어 있었다. 그림을 보자니 한숨이 나와 휴우~~ 하고 한숨을 쉬자, 그가 내 힘 빠진 어깨를 끌어당겨 허리에 힘이 들어가게 하고는 다시 내 볼 곁으로 다가와서는 속삭였다.


" 너무 들여다보면 하나도 안 보여. 감이 안 오거든. 일어나 볼래?"

그러며 다시 나를 세우고는 한 손은 내 어깨를 쥐고 한 팔로 내 목아래 쇠골 부위를 감싼 채 나를 뒤로 이끌었다. 뒷걸음칠 때마다 그의 가슴은 쿵쿵 소리를 내며 내 등을 두드렸다. 나는 넘어질 세라 그의 팔을 잡았다 다시 내 목 위 재민의 팔을 풀자, 내가 잡았던 재민의 팔목 돌려 나를 한 바퀴 돌게 만든 뒤 이내 손을 잡았다. 


중심을 잃은 내가 휘청이자 이내 두 손으로 어깨를 잡고는

" 자 봅시다. 이제 시선이 좀 달라졌는지."


뚫어지게 그림만 보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색감들이 어느새 뒤로 나오니 선명하게 어둠만 드리운 채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놀라 그를 바라보자 그는 내게 윙크를 하며 

" 봐. 보이지? 그렇게 바라만 보면 절대 안보인데도. 이리 와봐. "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이끌고 나를 의자에 앉힌 후 ' 휴우' 하고 한숨을 쉬고 석고상을 바라봤다. 내 손을 여전히 쥔 채.

그런 그의 손을 살며시 풀어 나는 그의 손 위에 지우개를 올려주었다. 그러자 그가 빙긋 웃어 보이더니 


" 여기 이 부분을 좀 더 역광을 표시해 주고 여기는 포인트를 더 잡아주면 보다 자연스럽게 색감이 살아나. 어때?"

" 아 아까와는 느낌이 전혀 틀린데요? 색의 깊이감이 보여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쓱 얼굴을 내게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리고 내 눈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쉼없이 흔들렸다. 그때




" 샘. 저도 좀 봐줘요. 진짜 이건 너무해. 미소만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에요?"

미정이었다. 시선을 돌려 보니 주변의 아이들 시선이 모두 우리에게 쏠려 있었고 나는 이내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자 희경이,

" 어머 재민 샘 얼굴 붉어진 거 봐. 터지겠어. 오호호 호호. 저희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

그러며 내 손을 이끌고 비상구로 향했다. 혼자 담배를 한대 물고는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던 희경이,


" 야. 잊어버려. 저것들 질투 어디 하루 이틀이야? 그저 재민샘이 곁에만 다가가도 아주 질투를 해서 난리 발광이야.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 어디다 들이대? 네가 하도 그림 실력도 빨리 늘고 하니까. 샘이 좋아하는 거지. "


" 좋아는 무슨. 관리하는 거지. 샘이 거의 과외처럼 가르치다시피 해서 는 실력이니까. 난 신경 안 써."

" 올. 재민샘은 아닌 거 같던데? 응?"

" 뭐래. 오해하지 마. 그런 거 아냐."


" 뭐지? 꺄르르르르"


" 뭐가 그렇게 재밌어?"


고개를 돌려 보니 성현이 서 있었다. 곁에는 형식, 민식, 재우 선배가 같이. 

희경의 곁으로 다가온 형식선배는 희경의 담배를 하나 빼서 물고는

" 야 너는 이런 건 좀 같이 피자. 미소도 나눠 주고 말이야. "


그렇게 말하며 내게 담배를 권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이내 성현이

" 야. 너는 왜 담배도 안 피우는 애한테 이런 걸 권해? 나가자. "

그렇게 말하며 비상구에서 내손을 이끌고 복도로 빠져나왔다. 그가 잡은 손을 슬쩍 빼자, 그제야 그가

" 너 혹시 재민샘한테 관심 있어?"


" 아뇨? 제가 왜요?"




" 아 아까 보니 둘이 친해 보이길래."

" 그거야 샘이 저를 상급반에 올리려고 속성으로 집중 지도 해주셔서... 그래서 그렇죠. 선배."

" 그럼 둘이 별 사이는 아니네?"


" 오해하지 말아요. 선배. 그런 사이 아니니까."

" 선배?"

순간 성현의 미간은 찌푸려졌고 나는 그를 보고는 당황하며

" 미안. 미안해요. 성현오빠. "


그러자 그가 환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어 트렸다. 그러며

" 아냐. 뭐 별사이 아니면. 됐어. 후훗."


그렇게 말하고 성현이 실기실로 들어가자 그 뒤로 재민샘이 다가왔다. 

" 미소야. 잠깐 상담 좀 디자인 실로 올래?"


재민의 손에 이끌려 디자인실 구석으로 가자 그가 나를 돌려세워 그를 보게 한 뒤

" 아까는 많이 당황했지? 미안. 애들이 오해를 하게 해서..."


" 아니예요. 충분히 오해할 수 있죠. 저 상급반에 올리려고 집중 지도 하신 것도 맞고 뭐 애들 입장에서 보면 저만 너무 감싸는 느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러니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자 그가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 음. 그게 그 오해가 아니고.. 사실은 말이야. 너..."

나는 당황해서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런 내 행동에 조금 당황해하는 재민을 보며 


" 선생님은 잘하실 수 있잖아요. 그렇죠? 이제 저도 그 친구들과 같은 입장이고 같은 반이니 뭐. 저 말고도 다른 친구들 차별 없이 골고루 봐주실 거죠? 저에게 처럼 친절히."


" 응? 아 그래. 근데 말이야. "

" 전 충분히 선생님은 잘하실 거라 믿어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




버스를 타자마자 현욱은 나의 팔을 이끌어 바짝 붙어 팔짱을 꼈다. 그리고 내게 

" 재민 샘이 뭐래? "

" 아 오해였다고 미안하다고."


" 그래. 너무 신경 쓰지 마. 암튼 여고생들이란 지들은 재민샘 손만 잡아도 완전 성은이니 어쩌니 호들갑을 떨고 네가 재민샘 손잡으면 난리를 치고.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말이야. 유난스럽기는..."

" 뭐 애들이 오해할 수 있지. 나도 샘이 자꾸 손을 대는 게 신경 쓰이는 걸?"


" 야 뭐 남자가 손잡는다고 다 뭐라도 되냐? 봐. 너랑 나.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잖아. "

그렇게 말하는 현욱의 헤드락을 걸었다. 그러자 현욱이 막 목을 캑캑 거리며 연신 내게

" 야. 이것 좀 풀어봐. 숨 좀 쉬게. 응?"


" 어머 그렇게 힘들었어요? 죄송합니다. 마마."

" 어머 얘는? 호호호호. "

나보다 더 여성스럽고 얌전한 현욱. 그는 경원고 2학년. 나와 비슷한 키에 하얀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비밀이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여성스럽고 그런 여성스러움을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내게는 드러 낸다는 사실. 


" 봐. 너랑 나랑은 이맇게 스킨십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잖아. 그냥 재민샘과 나는 스승과 제자 사이지 어떤 관계도 아닌데?"

" 그니까 내 말이..."


" 아 나 내려야 해. 마마 조심히 들어가시옵소서. "

" 어머 계집애. 호호호호. 조심히 잘 가."

현욱은 버스에서 내리는 내게 미스코리아가 손을 흔들듯 좌우로 천천히 우아하게 손을 흔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큰 골목을 따라 걸어 들어오는데 멀리 가로등 아래 왠 시커먼 그림자가 보였다. 

약간의 경계심이 들어 유심히 보자 검은 터틀넥, 불룩 나온 뱃살, 검은 가죽바지 그 위를 쉼 없이 손이 오가더니

" 어이 거기 "

나는 놀라 미친 듯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려 할 즘. 집 앞 가로등 아래 

" 넌 뭘 그래 여자애가 늦게까지 다니고 그래?"

엄마였다. 

" 아빠가 무지 화가 많이 났어. 네가 뭘 잘못했는지 말도 안 하고 암튼... 들어가면 잘못했다고 말씀드려."

" 응?"


집안으로 들어서자, 아버지께서 내 책상 위에 있던 참고서를 집어던지셨다. 그러며,

"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말이야. 그림이나 그리러 다니고. 말 안 하면 모를 줄 알았어? 그럴 거 같으면 그냥 여상이나 가지 뭐 하러 힘들게 인문계 가서 말이야."


" 여보 당신은 애한테 왜 그래요? 가뜩이나 예민한 사춘기인데... 화실은 제가 다니라고 했어요. 그러니 저랑 이야기해요. 넌 어서 씻고 들어가. "

어머니는 울먹이는 나를 화장실로 들려 보내고 아버지와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다음날 아침. 

" 엄마... 언제부터 알았어요?"

" 넌 말을 안 하니 왜... 두 달 전에. 화실에서 전화 왔었어. 너 학원비도 안 내고 다녔다며? 그래서 내가 돈 보내줬어. 생활비에서. 어쩌니 힘든데. 그리 좋아하고 잘한다고 설득을 하는데... 무슨 수로 말려. "


" 엄마... 미안해요.... 말씀 안 드려서..."

어머니는 울먹이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 되써. 이제 때가 되어 네가 말한 거니 그거면. 아버지께는 엄마가 어제 잘 말했으니 이제 신경 쓰지 말고. 대신에 너 용돈에서 뺄 테니까. 아껴 써."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시며 용돈을 내미셨다. 1만 원이 줄어든 2만 원. 

눈물이 핑 돌았다. 걱정해 왔던 일들이 한순간 해결 되었는데 내게 건넨 엄마의 손이 너무 미안하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또 얼마나 엄마는 힘들게 그렇게 나 때문에 쪼들려 살아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르며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서울에서 내려오신 후 어머니는 달라지셨다.

  물론 서울도 조카들을 봐주시러 더 자주 수시로 가셨지만 집에서도 끊임없이 무엇인가 배우러 다니셨다. 어머니가 문화센터에 가서 수업을 들으실 때마다 집에는 그림이며 화분이 늘어갔고 전문가 수준의 작업들도 제법 보였다. 그리고 그에 따른 내 일도 하나둘 늘어갔다. 어머니가 집을 비우고 수업을 가실 때면 그 빈자리는 오로지 내 몫이었다. 살림이며 집안 청소며 빨래까지.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고 또 그 바쁜 3월을 시험 준비를 하고 화실까지 다니자니 여간 힘이 든 게 아니었다.

그렇게 지칠 대로 지쳐 화실을 가려 주말에 나오는데,

" 네 엄마는 어딜 그리 싸돌아다녀?"


할머니는 이내 못마땅한 얼굴로 내게 물어보셨다. 

" 수업 가셨어요. 할머니. 식사는 저기 식탁 위 상 위에 다 차려 뒀고 국은 데워서 드시면 돼요. "

" 다 식어빠진 국은 무슨... 넌 주말인데 얌전히 집에 안 붙어 있고 맨날 지엄마처럼 어딜 그리 나다녀? "

" 청소도 해놨고 빨래는 널어서 나중에 걷어서 개기만 하면 되고. 저는 그림 때문에 화실에 가요. "


"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이 말하는데 꼬박꼬박 말데꾸야. 재수 없게. 그냥 네네 하면 되지. 싸가지 없이."

순간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째려봤나 보다. 

" 어딜 빤히 그렇게 째려봐? 어? 생긴 건 꼭 지엄마 닮아서는 말이야. 돈도 없는 집에 아비 힘들게 번돈 쓸데없이 계집애 뒤치닥 거리 하게 만들고. 여상이나 가서 지 아빠 힘든 거나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아휴. 저게 터만 안 팔았어도. 내가 그때 우겨서 끝까지 지우라고 했어야 했는데. 괜히 지아비 말 들어가지고. 원. 재수가 없어서는."

그때 남동생이 집으로 들어왔다. 

" 어디가?"

나는 눈물이 나 말을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가방을 휙 낚아채 들고 나오는데,

" 아유. 우리 장손 왔네. 어서 들어가. 이 할미가 맛있는 거 해줄 테니. "


화실을 가는 나는 그렇게 눈에 가시처럼 바라보시던 할머니. 하지만 동생에게는 더없이 너그럽고 상냥한 분이셨다. 내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우리 집이 외벌이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나는 갖은 구박을 받으며 그렇게 지내건만. 동생과 나는 같은 집에 태어나도 누구는 귀한 존재고 누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존재. 그게 나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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