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정체

알면 안 되는 것

by moonrightsea

" 야 말을 해줘야지. 어디가~ 같이 가."


소방서를 미친 듯 달려 나오는 내 뒤를 쫓아 우석은 헐레벌떡 내 차에 올라탔다.

" 이 새끼. 뭐야. 뭐 하자는 건데? "

" 서둘러야 해. 또 사라질지 몰라. "


그녀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나는 미친 듯 네비에 00 유치원을 찍고 서둘러 차를 몰았다. 당황하며 허둥대는 나를 보던 우석은

" 응? 야 이 새끼야. 알아듣게 말해봐. 이게 쳐 돌았나?"


나는 연신 숨을

" 후우~ 후우~ 후우~"

" 와. 너 이렇게 말 많이 하고 난리 치는 거 생전 처음 본다. 투명 인간이 아니었구나? 숨도 쉬고 말도 하네?"


소방서에서 내 별명은 '투명인간'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고 술자리에서도 술을 먹지 않고 늘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다른 동료들이 다 집에 돌아가는지 차에 태워 확인을 하고 난 뒤에야 집으로 홀연 사라지는 녀석.


우석이 언제나 흥분해서 그날 있었던 사건 사고를 말하면 그저 무표정한 표정으로 바닥만 바라보다 어쩌다 한 번씩 씩 웃어주는 녀석. 밥을 먹을 때도 메뉴를 고를 때도 말 한마디 잘 안 해서 결국에는 우석이

" 이거야?"




그렇게 메뉴를 골라주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의사를 표현하는 정도.


대형 산불화재 현장 투입 뒤로 증상이 더 심해지자 우울증 치료를 권유받았고 그런 연유로 가끔 반차를 내고 병원에 상담차 다녀오면 말없는 내게 다가와

" 이 새끼. 밥은 챙겨 먹고 약 먹어야지. 이 투명인간아."


이렇게 말하며 우석이 붙여준 별명.

붙임성 좋고 항상 적극적이고 호탕하게 웃는 우석 덕분에 나는 늘 아무 말도 안 해도 되고 그저 우석의 뒤에만 있어도 하루종일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아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내게 오는 관심 따위


" 뭘 현소방교한테 물어봐요. 저한테 물어봐. 저자식 여자 없어요. "

" 아 그거? 현소방교가 대신 당직 서줄 거예요. 그렇지?"

" 끄덕끄덕"


" 음. 현소방교는 회식 당연히 가죠. 저만 ok 한다면야."

그러면 나는 손을 들어 ok사인을 보냈다.


어떤 날은

" 야 그러다 우석이 너 정우랑 사귀는 거 아니냐?"

" 에이 이러지 마십시오. 형님. 저 여. 자. 좋아합니다. 어디다 갔다 붙여요. 시커먼 남자새끼를."


" 그러기에는 너무 챙긴다?"

" 에? 헐. 크하하하하. 저 자식 저 없으면 밥도 아마 굶어 죽을 걸요? 아시면서. "


그렇게 넋살로 주변을 정리하며 나의 보호막이 되어 주변을 지켰다.



그런 우석도 퇴근을 하면 늘 술로 지새우는 날이 많다 보니 내가 집에 데려다주고 내 집으로 가서 내가 어디 사는지 늘 궁금해했다. 하루는

" 야 안 되겠다. 여기 세워봐. "


술이 취한 우석을 태우고 집으로 향하는데 우석이 편의점 앞에 차를 세우게 해서 멈추자 비틀거리며 편의점으로 가서는 소주 2병에 마른오징어 안주를 사들고 두루마리 화장지 한 세트를 사들고 나왔다.

" 되따. 가자. "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 가자 너네 집으로 그래도 처음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야 있냐?"


나는 그 길로 그를 우석의 집으로 데려다주며,

" 관심 꺼. 한번 더 있단 짓거리 하면 안 본다. "


그렇게 매섭게 노려 보며 화장지를 집어던지고 돌아 섰다. 그러자,


" 야이 새끼야.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 어? 너만 힘들어? 너만 아프냐고? 다 죽을 고비 하루에도 숱하게 넘겨. 그렇게 꽁꽁 싸매고 혼자 꽁꽁 앓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사람새끼면 사람 냄새나게 살아. "

돌아선 내게 우석은 화장지를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그런 우석에게 돌아서 주먹을 쥐고 그의 얼굴에 대고


" 네가 뭘 알아. 인마. 겪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입 닥쳐. "

내가 눈물을 그렁 거리며 미친 듯 거친 숨을 참으며 우석에게 말했을 때 우석은


" 후훗. 이제야 좀 살아 있는 것 같네. 너도 병신은 아니네. 화도 내고. 알았어. "

그렇게 말하며 우석은 주먹을 불끈 쥔 내 손을 내려놓더니

" 알았다. 더는 안 침범하마. 대신에 뒈지지는 말아. 새끼야. 나 너까지 치우기 싫다. "



네비가 안내한 대로 유치원 입구에 도착하자 갑자기 우석이 뒷좌석에 있던 모자를 눌러썼다.

" 뭐야. 이거 첩보 작전이야? 여긴 왜 와? 너 불륜이야?"

"..."


그렇게 말하며 의자를 뒤로 급히 젖혀 눕더니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 야 인마. 말이라도 좀 해라. 속 시원하게. 아휴. 미쳐. "


그러더니 이내 다시 의자를 당겨 낮은 자세로 앉아 나를 바라봤다.

" 야. 이 새끼 난 놈이네. 응? 그 어린 영계도 모잘라 심지어 유부녀야?"

" 닥쳐. 너 그만 돌아가. "


내 말에 흠씬 놀란 우석은

" 와. 욕도 하네? 진짜 쳐 돌았구먼. 이런 건 말이야. 모텔을 갔을 때 급습하는 거야. 인마. 노하우가 없어서는. 아니지. 그렇지. 이 새끼가 불륜이면 헉. 그럼 그 여자가 불륜녀고 네가 납치? "


" 휴우. "

내 긴 한숨에 어이없어하는 표정에 우석도 왠지 너무 간 느낌이 든 건가. 이내 머리를 긁적이면서


" 뭐. 암튼 네 말주변에 보아하니 아무 말도 못 했겠구먼. 후훗. 이럴 줄 알고 내가 또 따라 나선거지. 정의의 아니지. 암튼 뭐 너를 위한 메신저!"




차 안에서 한참을 앉아 있는데 우석이 햄버거를 사들고 왔다.

" 자 새끼야. 자고로 잠복은 새참이지. 먹어."


나는 물끄러미 우석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고 그냥 차 안에서 연신 유치원 문만 바라봤다. 햄버거를 마다 하는 나를 보던 우석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한번 피식 웃더니 이내 내게 사다준 햄버거도 홀랑 먹어치운다.


얼마를 더 기다렸을까. 시계를 보니 4시.

분주하게 유치원 앞이 바빠지더니 수많은 차들이 오가고 아이들이 노란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던 그녀. 다정하고 정겹게


" 우리 친구들 내일 봐요. "

" 네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


그렇게 차갑고 냉정하기만 하던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너무나 따스한 눈길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도 모르게 두 팔을 감싸 안고 마구 문지르는데 차 앞유리에 긴 머리카락이 보인다. 깜짝 놀라자 곁에 있던 우석도 덩달아,

" 옴마야. "


" 너무 빨리 도착했잖아. 아직 시간도 아닌데. 꼼짝 말고 기다려. "

약간은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하던 그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돌리며 우석을 매섭게 노려봤다. 우석과 눈이 마주치자

" 아 안녕하세요. 미인님.. 아 아니.. 아가씨... 어음.. 이름이... 정... 연수 씨구나. "


그녀는 다시 천천히 나를 보며 물었다.

" 저건 뭐야?"

" 아... 내 친구."

" 치워. "

그러자 우석이 벌떡 일어나 차에서 내렸다.

" 아니 그래도 초면에 말씀이 너무 지나..."


그녀는 휑하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치원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이전 03화#1-2. 그녀의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