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알아서 안 되는 것들
" 여기가... 너네 집이야?"
지친 발걸음을 겨우 이끌고 그렇게 넋이 나가 도착한 곳은. 내가 사는 곳. 내 아파트.
강원도 끝자락 강릉에서도 거의 산 끝자락에 위치한 지은 지 20년도 더 된 이 곳. 이곳은 내가 소방관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며 구한 집이었다.
그녀가 옥상에서 나를 구해주고 난 뒤 나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입대하였고 거기서 무술을 익히며 헌병이 되어 제대 후 태권도를 하던 선임을 따라 태권도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단증을 따고 다시 검정고시를 치고 야간대를 다니며 공부하여 소방 공무원 시험에 합격 강원도 강릉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밤 낮이 뒤바뀌는 잦은 출동으로 우울증이 깊어진 어느 날.
베란다를 타고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나 경멸스러워서 나는 검은색 색지를 사서는 온통 다 발라버렸다.
어두워진 거실에 이사 들어올 때 두었던 짐도 그대로 둔 채 그저 신발을 신고 그대로 그곳에서 생활을 하며 오로지 산이 보이는 방하나만 창을 열어두고 침낭 생활을 해왔던 나. 언제든 죽어도 아무도 모를 인생.
그런 내게 소방은 그저 나를 살린 그녀를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적어도 그때 나를 살렸던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내게 그런 이상한 말들을 남긴 채 사라져 버린 걸까.
그토록 내 머릿속을 온통 차지하고 한 낯 희망 같던 그녀와의 만남만을 손꼽아 기대해 왔는데...
3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동안 하나도 변함이 없는 것만 같은 그녀를 나는 청소년 쉼터의 불이 난 사고 현장에서 다시 마주했던 것이다.
" 이래서 내가 너에게 간 거였구나. "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거실 가득 붙여 두었던 검은 종이를 쫘악 찢었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
익숙지 않은 햇살에 팔을 들어 눈을 가리며 인상을 찌푸리자 그녀는 내게 다가와 내 팔을 내리며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길게 한 숨을 쉰 뒤 이내 긴 한숨과 함께 그 담배를 물고는 피기 시작했다.
" 빙고. 이제 답을 알았어. 네가 나를 부른 이유. "
그녀는 훗 하고 웃더니 이내 매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 죽기 싫었다는 말은 진짜였나 보네. 젠장."
그리고 그대로 거실 바닥에 담배를 꺼버리고는 벌떡 일어났다.
" 이제 네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았으니 그만 찾아. 나 너 궁금하지 않아. 그러니 그만 부르라고."
나는 당황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아직도 처음 만났던 모습 그대로.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지난 그녀는 처음 만났던 20대 모습 그대로 일까.
신비로운 그녀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 왜 넌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야?"
내가 그녀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반문했다.
" 넌 왜 내 주문이 안 먹히지?"
그녀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해댄다. 저 의아하다는 표정.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신기하게 보는 그녀. 하지만 내 눈에는 세월을 뛰어넘은 네가 더 신기한데...?
"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 말하면 알아듣기나 하고?"
그렇게 말한 그녀는 거실 벽면에 세워두었던 접이식 이동 침대 먼지를 턴 뒤 거실 한 복판에 펼치고는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리고 다시 연신 담배를 물었다.
"후우~~. 그렇게 벗어나려고 해도 안 되네. 이 놈의 굴레. 젠장."
그런 그녀에게 나는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로
" 정체가 뭐냐니까?"
" 알 거 없어. 말해도 넌 이해 못 할 거니까. 날 이렇게 만든 게 너니까. 책임져."
그토록 그녀가 궁금했는데 그녀가 왜 그랬는지 나는 정말 묻고 싶었는데 왜 그녀 앞에서 나는 자꾸 다른 말만 하는 건지.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나 아름답다.
혼이 나갈 만큼.
눈이 부시도록.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한 나는 부엌으로 걸어가 냉장고 문을 열고 냉수를 꺼내 마셨다.
" 벌컥벌컥."
그러자 그녀가 내게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몸을 구부려 냉장고 안을 바라봤다.
" 꼬락서니 하고는. 휴우~ 먹을 게 고작 물이야?"
그녀의 엉뚱한 질문에 나는 물병을 든 채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녀도 나를 바라보더니 내 손에서 물병을 뺏어 들었다. 그리고는 물을 이내 마셔 버리고 입을 쓱 닦더니,
" 나가자. 안 되겠다. 너 그 전에 그 옷부터 좀 갈아입어."
그녀의 말에 고개를 숙여 보니 내 옷은 어제 화재 진압현장에 투입되었던 소방 옷 그대로였다. 여기저기 불에 검게 그을리고 엉망이 된 그대로.
" 설마 옷도 없는 거야?"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 흐음. "
그렇게 한 숨을 쉰 그녀는 이내 건너 방으로 가서 벽에 걸려 있던 스웨터와 청바지를 가져와 내게 던졌다.
" 입어. 시간 없어."
그녀의 손에 이끌려 향한 곳은 편의 점.
그녀는 잘 익은 사과와 참외. 와인 1병. 햇반 1세트. 포장 김치. 계란을 바구니에 넣고 계산을 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좀 더 큰 마트로 데려가서는 마트 입구에 걸린 옷가지를 이리저리 대어 보더니 굵은 실로 엮어둔 스웨터와 기모가 든 면바지를 골랐다.
그리고 빨간색 털 목도리를 골라서 내 목에 칭칭 감아 보더니 이내 풀어서 바구니에 넣고 다시 계산을 했다. 그리고 내게 들으라고 하더니 내가 짐을 들자,
" 4시 50분이 되면 00 유치원 앞으로 와. "
그렇게 말하고는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우두커니 멀어져 가던 택시를 보고 한참을 서 있다 나는 짐을 든 손을 들어 시계를 봤다.
오전 11시 30분.
천천히 발을 옮겨 오르막길로 향했다. 계단을 타고 오른 꼭대기 층. 우리 집.
신발을 그대로 신고 들어가 거실 그녀가 펼쳐둔 간이 이동 침대에 그렇게 털썩 주저앉자 전화가 울린다.
"야. 현정우 너 살아 있는 거야?"
같이 근무하던 우석이었다.
" 응. 나 괜찮아."
" 휴우. 다행이다. 너 이 새끼. 그렇게 넋이 나가 그대로 사라져서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 내가 사라졌어?"
" 그래. 이 새끼야. 아무리 집에 가서 두드려도 기척도 없고 우리가 문 따려다 참았어. 새끼야. "
나는 순간 당황해서 물었다. 아무도 아무에게도 내 집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
" 내 집에 왔었다고? 어떻게 알고?"
" 뭐. 암튼. 괜찮다니 다행인데... 도대체 너네 집에 있던 그 여자는 누구야?"
" 누구?"
" 야. 너 깨우면 죽여 버린다던 그 여자 도대체 언제 숨겨둔 거야? 그런 미인을... 암튼 너 이 새끼 진짜 깬다. 아무리 미인이라도 그렇지. 그런 여자를 집에 숨겨뒀다고 그리 집을 숨기고 말이야..."
나는 전화를 그대로 든 채 미친 듯 차를 몰아 소방서로 향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우석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찾아 소방서를 여기저기 뒤지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던 그 녀석과 마주쳤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내 돌발행동에 놀란 건 우석도 마찬가지였다.
" 야. 휴우. 너 진짜 여러므로 어제 오늘 나를 놀래 키는구나?"
' 헉헉헉헉...'
거친 숨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
" 너... 너도 그녀가 눈에 보인다고?"
" 뭐야?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 말해봐. 너도 그녀가 눈에 보인다는 거지? 진짜지?"
우석은 황당한 듯 나를 처다 보더니 이내 바지를 마저 입고 지퍼를 올리며 힐긋 나를 올려다보며,
" 야이 새끼야. 그럼 그런 미인이 니 눈에만 보이란 법이 있냐? 후훗. 새끼. 곰인줄 알았더니 재주는 좋아."
그렇게 말한 우석은 내게 해드락을 걸며,
" 자 말해봐. 그녀랑 무슨 사이인 거야? 어디까지 간 거야?"
연신 내 머리를 헝클어 뜨리며 나를 추궁하는 우석의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오로지 내 머릿속 떠오른 것은 선명해지는 기억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그녀의 얼굴. 이목구비.
짙은 검은 일자 눈썹. 길고 끝이 올라간 큰 눈매. 그 깊은 검은 눈동자를 담은 큰 쌍꺼풀. 하얀 그녀의 목선. 일렁이듯 나부끼던 그녀의 긴 검은 생머리.
그리고 그 바람결에 전해져 오던 그녀의 살갗과 뒤섞인 듯한 라벤더 향.
그녀는 내게
그렇게
내 곁에서
실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