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역할
길게 늘어진 수염. 하얗게 세어 귀뒤로 늘어진 머릿결. 그는 산파였다.
지리산에서 그녀를 돌봐주었던 그녀가 믿고 의심치 않았던 그가 그 노인이 그렇게 정영을 안고 서 있었다.
그가 그때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눈빛이 달라 보여서 일지도 아니면 그를 둘러싼 공기가 그곳에서 느꼈던 때와 전혀 다른 차가운 기운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를 만나러 병원에 갔을 때 그를 둘러쌓던 훈훈했던 그 공기와 지금 내 방안에 퍼져 있는 이 사뭇 다른 차가운 공기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냉랭한 한기와 너무나 대비를 이루며 그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나는 침대 아래로 뛰어내려 그에게 다가가려 했고 그 순간 연수가 나를 밀쳤다.
" 다가서지 마. 저 근처에 가는 순간 네가 사라질 수도 있어!"
연수가 내뿜는 기운에 밀려 내가 고꾸라졌을 때 그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 네 것이 아닌 것에 탐내지 마라. "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홀연 사라져 버렸고 놀란 나와 연수가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정영과 그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 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우리 정영이 어디로 데려간 거야?"
그러자 연수가 온몸이 푸른빛을 띠며 일렁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 순간을 놓칠세라 연수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눈을 꼭 감았다.
어두컴컴하고 공허한 공간.
사방은 어둠으로 둘러 쌓였고 몸은 공중으로 붕 떠올라 발아래는 아무것도 닿지 않아 차마 연수를 놓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머리가 터질 듯 아파와서 고개조차 들 수도 없었다. 귀를 타고 뜨거운 무엇인가 흘러내리고 있어 정신을 차리기도 힘든 데 가는 실눈을 뜨고 바라본 주변으로 안개처럼 희뿌연 것들이 느리게 흘러가는 이곳.
연수는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는 듯한데 연수의 배를 타고 흐르는 희미한 목소리.
" 감히 산파 주제에 어디 사사로이 하늘의 뜻에 사심을 이렇듯 교묘히 숨길 수 있었단 말이지. 어떻게 감히."
그러며 연수는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젓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의 머릿속을 뒤지듯 기억의 조각을 찾으려 애쓰듯 그녀가 손을 넘겨 가며 휘저어 가며 이리저리 넘기다
" 여기쯤인가? 여기서부터 되돌아가야 하는 건가?"
그렇게 말하더니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잘 들어. 여기서부터는 절대 당신은 입을 열어서는 안 되고 눈으로 본 것을 기억하려 애써도 안돼. 산파가 문제가 생긴 건 여기서부터니까. 그저 나를 꼭 잡고 절대 놓쳐서도 안돼.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리는 끝이 없이 아래로 떨어졌고 나는 어금니가 빠질 듯 입을 미친 듯 앙 다물었다. 턱이 얼얼하고 덜덜 떨려 얼굴의 근육들이 경기가 와서 마구 흔들렸다.
바닥에 풀이 닿는 느낌이 들었을 때 발아래를 보자 새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자 연수가 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으며 움직이지 말라고 신호를 보냈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연수는 내게 신호를 보낸 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도 그녀가 시선이 향한 곳으로 바라봤다.
커다란 바위 뒤 몸을 숨긴 우리.
맞은편 1m 채 안되는 높이 둥근 형태의 넓은 돌담벼락을 중심으로 1000년은 넘어 보이는 나무뿌리가 받치고 있는 한 사당 나무를 제복을 입은 순사들이 불을 지르고 있었고 그 주변을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백성들 몇몇이 에워싸서 흐느껴 울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그 돌담의 돌들을 하나씩 빼고 있었다.
그 곁으로 마을 주민들의 시체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아마도 나무를 불태우는 것을 막으려다 일어난 참사인 듯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나무가 불타는 동안 그렇게 한참을 서서 지켜보고 있는 동안 연수는 아무 말도 않고 주먹을 불끈 쥐고 서 있었다. 부들부들 떨며.
불에 타던 나무가 이윽고 쩍 소리를 내며 반이 갈라져 벌어지자 옆으로 쓰러졌고 쓰러진 나무를 다시 밧줄로 묶어서는 질질 끌어서 냇가에서 퍼온 물로 연신 불길을 잡아서 헹궈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붙어서는 그 나무의 가지를 쳐냈고 다듬기 시작했다.
남은 나무에 다시 기름을 붓고 마저 불을 질렀고 그러자 나무는 또 쩍 소리를 내며 가운데 부분을 삐죽 남긴 채 갈라지더니 이내 볼썽 사납게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널브러진 나무를 냇가에서 가져온 물로 또다시 헹구어 밧줄로 묶은 뒤 다듬기 시작했다. 어느새 기둥 모양이 만들어진 나무 두 동. 스님 옷을 입은 한 놈이 다가와 제를 올리더니 뭐라고 말을 하고는 산 아래로 먼저 내려갔다. 그리고 순사들이 남아 있던 나무에 불을 질러 완전히 태워버렸다.
연기가 끊임없이 피어오르자 새들이 날아올랐고 산에서 산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몰랐는데 왜 내게는 마치 절규처럼 들릴까.
이윽고 냇가에서 가져온 물로 나무에 뿌리고 다시 남은 나무마저 밑동을 잘라 낸 뒤 남은 뿌리마저 곡괭이와 낫으로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꼬박 하루를 날을 새며 그렇게 그 짓을 하고 있었다. 순사들이 날을 새며 채찍을 들어 마치 엄숙한 일을 수행하듯 그렇게 그들을 지키며 끝까지 다그쳐 일을 마무리시켰고 기어이 바닥 위로 드러난 뿌리와 밑 둥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다 다듬어진 나무 기둥은 뒤에 줄을 묶어 냇가로 흘려보내고 몇몇이 따라 냇가로 들어가며 그 일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다 끝난 줄 알았던 그 자리에 조금 뒤 장정 네다섯 명이 돌아와 어른 허벅지 만한 크기의 커다란 쇠로 된 말뚝을 박고는 순사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 사라졌다. 그 자리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순사들은 일제히 칼을 들어 마을 주민들을 기어이 몰살을 시키고 나서야 자리를 떴고 순사들이 자리를 뜨고 나자 다시 스님이 그 자리로 돌아와 제를 지냈다.
산파였다.
' 저자는 알고 있었구나. 저 마을 주민들이 여기가 무덤자리가 될지. 그래서 저 나무가 어디로 갈지도. 저자가 지키려던 게 그럼 저 마을 주민들이 아니고 제 목숨이었나. 아니면 이 땅의 기운이었나...'
문득 생각이 거기로 향했을 때 연수는 나를 노려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다.
순간.
순간
몸이 붕 뜨며 보이는 풍경.
발아래를 보자 늘어진 기와집들. 도대체 얼마나 많이 겹겹이 둘러 쌓였는지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이 대궐 같은 집의 안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집집마다 쌀가마며 재물들이 분주히 오갔고 전국 각양각색의 사투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그중에 눈에 띄는 커다란 기와집 대들보 위에 기둥하나를 중심으로 양 옆에 기둥을 세네 개는 받치고 기어이 그 가운데 있던 기둥을 장정 열명이 붙어서는 '영차' 하며 기둥을 끌어내고 있었다.
머릿속에 문득 그 나무가 스치고 지나갔다.
' 그럼 그 나무를 여기에?'
'저 집이구나.'
기둥은 이미 일제 강점기에 이 집구석에 박혀 그렇게 자리를 잡았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기둥과 내 아들과는 무슨 연관인 거지?
'도대체 여기는 왜 온 거지?'
채 뭐라 더 생각할 겨를 도 없이 그렇게 또다시 연수에게 이끌려 이동이 되었고 다시 떨어지자 주변은 폐해로 변해 있었고 한 노 신사가 그 자리에서 불에 탄 나무 조각을 들어 품에 안고는 잘 닦아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에게 주었다.
그 여자는 그걸 들더니 깔깔 거리며 웃고는 연신 그 조각을 핥아 대더니 입 주변이 시커멓게 변해가는데 이내 아작아작 씹어서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 노신사의 팔짱을 끼고는 차를 타고 사라졌다.
" 저것들이..."
연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친 듯 화를 냈다. 그러자 다시 주변은 어두운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 어서 결계를 풀어라."
" 고작 남자하나 살리려는 욕망에 지 새끼 구하려는 욕심에 눈이 가려 보이지 않을 테지. "
마치 멀리서 메아리치듯 들리는 산파의 목소리.
연수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연수의 허리를 꼭 부여잡고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 어서 풀래도!"
연수가 소리치자 순간 연수의 몸이 푸른빛을 돌며 불꽃이 올랐고 나는 온몸이 감전되는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이 순간을 어떻게든 나는 버텨야 했다. 머릿속에는 사라져 버린 정영의 잠든 얼굴이 선하게 그려졌다.
연수의 몸으로 맴도는 푸른 불빛 곁에 주변이 금이 가며 환하게 되더니 일 순간 와장창 깨져 내렸다. 그러자 꽤나 넓게 잘 빠진 집안 거실.
그리고 우리를 보고 으르렁 거리고 있는 개들. 사냥개처럼 생긴 개 두 마리에 그리고 멀리 소파에 누어 물끄러미 바라보는 곰돌이처럼 생긴 비숑 두 마리까지.
연수는 푸른빛을 띠는 눈으로 매섭게 노려보며 그 소파로 다가섰고 그러자 그 앞을 가로막아 섰던 사냥개 두 마리가 매섭게 연수의 팔을 물고 늘어졌다. 나는 순간 너무 화가 나서 그 개 한 마리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리쳤고 그 개는 '깨갱'하며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런 그 개를 연수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손을 뻣었다. 그러자 그 개는 맥없이 연수의 손바닥에 목이 달랑 달려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러자 갑자기 소파 위에 한없이 편안하게 널브러져 있던 개 두 마리가 벌떡 일어나 미친 듯 공포에 질려 짖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 사사로이 원한으로 귀한 목숨을 가지겠다는 거냐?"
좀 더 뚜렷이 들려오는 산파의 말에
" 후훗. 귀한 목숨이라. 왜 내가 영물로 변해 있으면 모를 줄 알았더냐?"
그렇게 말하고 연수는 손에 들었던 개의 목을 한 손으로 꺾어버렸고 그러자 그 사냥개는 맥없이 축 늘어졌고 연수의 다른 팔을 미친 듯 물고 늘어지던 개는 이내 오줌을 싸면서 미친 듯 깨갱 거리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런 개들을 둘러보던 연수는
" 왜?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더냐? 나를 도대체 뭘로 보고! 이 잡것들이!"
그러며 순간 연수의 몸은 불길로 휩싸였고 연수가 뻗은 팔로 바닥에 엎드렸던 또 다른 사냥개의 머리가 바로 댕강 달려 올라왔다. 그때.
홀연 모습을 드러낸 인간.
" 제발. 제발 그 아이만은 안된다. 멈.... 멈추시오!"
어디선가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던 인간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 나와 사냥개를 끌어안고 바들바들 떨며 흐느끼더니 기어이 꺼이꺼이 목을 놓아 울어 댔다.
" 안돼. 아가 우리 아기 이대로 가면 안 돼. 아직 세상 빛도 못 봤는데... 이제 다 왔는데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이대로는 가면 안돼.... 엉엉. 조금만 버텨."
연수가 눈에 살기를 띠며 그 인간을 노려 보며,
" 왜 너를 버린 자식보다! 나아 보이는 이 개 따위가 그리도 소중하더냐? 그 개 따위에게 니 자식의 영혼을 깃들게 해서 정영으로 태어나게 해 준다고 산파가 허울 좋게 말만 하고...
정작 산파가 말을 안 해주던? 네 업에 대해? 네가 아무리 권력이 탐나도 그렇지. 아무리 재물이 너네 집안으로 몰려도 그렇지. 어떻게 대가 이어지고 재물이 모이는지 제대로 말은 안 해줬나 보구나. 이런다고 네가, 내 새끼를 가져간다고 네 후손이 후대에 사람이라도 된다고 하든? "
"어? 정영이 몸에 니 새끼 영혼을 집어넣으면 저 개새끼에 깃든 네 자식이 너네 집의 대를 이을 줄 알았더냐? 웃기지도 않구나. 니 네 집안은 타고난 운이 한대에 사람으로 나면 다음은 무조건 개로 태어나는 팔자. 절대 부모와 자식이 같이 부를 누릴 팔자가 아니야! "
그렇게 말하며 연수가 그 인간에게 손을 뻣자 그 인간은 맥없이 바닥에 픽 쓰러졌다. 그러자 산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 네 자식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나 보구나. "
" 가져가 보거라. 그 깟 아이 목숨 따위. 채 열두 달을 못 채우고 태어나 이리도 천한 업보로 전락한 생명 따위. 정성으로 키워봐야 너네들의 권력 욕심에 재물로 만들 아이 따위. 나는 거두지 않는다. "
연수는 의기양양하게 바닥에 쓰러진 인간에게 다가가 목에 발을 대고는 꾹 눌렀다.
" 자 그만 말해보거라. 네가 꿈꾸는 세상이 무엇이냐? 나라를 구한 답시고 민족을 구한 답시고 백성들 피로 얼룩진 이 산천의 기운을 담아 기라성 같은 대궐에 살았었고. 지금도 예전처럼 그 호화로운 기둥으로 둘러싸인 집이더냐. 아니면 네 곁에 그리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저 년이더냐?"
그러며 연수는 허공에 손을 뻣었고 어디선가 젊은 여자가 맥없이 연수의 손에 목덜미가 잡힌 채 끌려왔다.
" 자 알 봐 두거라. 이제 이 년의 목숨은 내 거둘 테니. 하나 그런다고 너네들이 다음 생에 다시 만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니 새끼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네가 사사로이 국운을 팔아 재물을 탐하면 결국에는 니 새끼든 네 명이든 저기 소파에 나란히 앉은 네 부모든 네 가문의 이름을 걸고 다시 태어나는 자는 반드시 개가 된다. 알겠느냐?"
그러자 산파가 어디선가 가져온 타 버린 나무 조각으로 연수의 등을 찔렀다.
순간 연수의 등에서 푸른 핏물이 솟구쳤고 사방으로 튀며 주변은 더 밝게 빛이 났다. 그러자 연수가 아랑 곳 않고는 더 크게 눈을 부릅뜨고 이글 거리는 눈으로 매섭게 산파를 노려 보며 말했다.
" 고작 이깟 나무조각으로 천년밖에 안 된 나무조각으로 내 명이 다하리라 여기느냐? 한낯 인간주제에? 어디 내 몸에 손을 대!"
그러며 등을 돌려 의미 심장한 눈빛으로 산파를 둘러쌓던 공기를 뚫고 산파의 가슴으로 새파랗게 질린 야수의 손톱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산파는 미친 듯 신음했다.
산파의 가슴에 품었던 정영의 목을 한 손으로 끌어낸 연수.
" 니들이 바라는 것이 정녕 이 나라의 흥망성쇠더냐? 사람을 재물로 받쳐. 영물이라고 생각하는 귀한 생을 재물로 받쳐서 니들이 무사하길 바라느냐? 봐라. 이 아이를 내 손에 내 분노에도 아랑 곳 않는 아이를 보란 말이다!"
미친 듯 신음하던 산파가 바닥에 널브러져 가슴에 피를 쏟으며 그 속에서 나온 정영을 든 연수의 손 끝을 바라보자 연수에게 목덜미를 잡힌 정영은 놀랍게도 무섭게 불타는 연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두 손을 벌리고
" 한 낯 미물도 지 어미를 알아보지만 보거라. 이 아이는. 나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이 아이는 말이다. 나를 어미로 알아보는 것이라 아니라 나를 아주 탐나는 것으로 지 배를 채울 걸로 보고 있지 않느냐. 니들이 탐한 것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 줄 이제 보이느냐? "
나는 그 순간 연수에게 달려가 정영을 끌어안았다. 그 순간 나는 파란 불꽃에 휩쓸렸고 내 얼굴과 머리카락은 푸른빛으로 휘감겼다. 뼛속까지 타는 듯한 고통이 내 안에 전해지고 나는 정영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푸른 불꽃에 휩싸인 채.
그러자 그제야 정영은 나를 알아보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소스라치게 소리를 지르며
" 빠빠... 응애애애앵. 아빠빠애앵. 애앵. 애앵... 으앙"
무엇이 그리도 서럽고 두려웠는지 참았던 울음을 한 번에 토하듯 쏟아내며 연신 내 품에 안겨 파고들려 하며 잔뜩 흥분한 채 울음을 그치질 않았다.
내 몸을 둘러쌓던 푸른 불꽃은 어느새 사라지고 노란 기운이 내 몸을 감싸고돌았다.
" 보거라. 이게 인간이다. 부모이며 자식이다."
" 지 한 목숨을 던져 생명을 구하고 지가 죽는지도 모르는 것. "
순수한 아이의 눈에 보이는 것은 순수한 마음만 보이는 법. 니들이 내 아이에게 보여준 탐욕의 마음은 결국 내 아이에게 탐욕으로 채워지고 지 아비가 보여주는 순수한 부정의 사랑은 그 부정으로 보이는 법. 그게 내가 니들을 구분하는 차이지. "
산파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눈물을 쏟아내다 이를 악물고는 벌떡 일어나며 연수에게 소리쳤다.
" 왜! 몇 대를 이어 이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몇 대의 생을 받쳐 이 나라를 위해 우리 가문을 내 핏줄을 희생하며 하늘에 뜻을 과업을 행하였는데 왜 나는 안 되는 것입니까! 내 자식들은 내 후손들은 적어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줘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해서 이 나라를 위해 살생도 마다하지 않은, 희생도 마다하지 않은 내 핏줄들이 이 땅에 발 버티고 떵떵거리며 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데 왜 아니 된다 말입니까!"
연수는 산파에게 다가가 그의 수염 끝을 움켜쥐었다.
" 고작 하늘의 업을 행하는 자가 사사로이 핏줄에 연연하여 진정으로 생에 주어진 업보를 보지 못하다니..."
산파의 수염에 연수의 푸른 불꽃이 붙으며 화르르 타기 시작하자 산파는 고통에 또다시 몸부림치며 온몸이 검붉은 반점으로 얼룩 지며 정정하던 몸은 흉물스럽고 초라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얼굴의 피부는 늘어지고 코는 휘어져 매부리 코로 변하며 입안의 이빨은 모조리 빠져 밖으로 후드득 흘러버렸다. 허리는 점차 굽어지며 서 있기 조차 힘들 만큼 구부러지더니 이내 다리를 후들거렸다.
" 네가 영생을 하늘이 준 이유는 몰랐나 보구나."
" 어리석은 인간. 네가 산에서 내게 가져다준 영혼이 왜 멀쩡히 저기 저렇게 살아 있는지 아버지와 의절까지 한 채 그리도 인간세상에 뛰어들어 스스로 버텨내며 지 삶을 살았는지 몰랐던 게야? "
그러며 바닥에 쓰러져 목이 꺾인 개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인간을 한번 바라본 연수는
" 저런 아비 아래 하루하루를 사는 게 고통이었던 게지. 부모랍시고 자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깡그리 무시한 채 짓밟고 부모 자식 간의 도리나 사랑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인간에게서 배울 거라고는 오로지 탐욕과 들끓는 욕망 밖에 없는 인간에게서 벗어나 제 삶을 살아 가려 한 그 어리석은 인간이 바란 게 무엇이겠느냐?"
그러며 다시 산파를 바라봤다.
"그저 그는 자신이 바란 것을 이루고 스스로 얻는 것을 구하고 또 누리고 살고자 함이었을 텐데. 저기 저 아비란 작자와 네가 다 망쳐 버렸어.
한낯 너희들의 그 권력 욕심과 탐욕으로 얼룩진 그 핏줄 욕심으로 네가 아무리 그 영혼을 정영에게 받쳐도 정영은 그 아이의 영혼에 지배되는 게 아니라 지배되기는커녕 집어삼켜버렸어. "
"지 뱃속에 들어가면 순수한 아이의 뱃속에 들어가면 오로지 생존을 위한 먹이만 될 뿐. 그게 무슨 핏줄이 되고 미래가 되고 힘이 되겠어? 그저 정영의 아비는 저 정영을 안아 든 저자 일 뿐인데. 지를 정성으로 키우고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그런 정영을 위해 하루하루를 희망으로 살아가며 버티는 부모뿐인데. 그런 부모의 마음을 사랑을 어찌 허울 좋은 명분으로 대의라는 껍데기로 덮으려 드는 게야! "
산파는 어느새 쭈글쭈글해져서 늘어진 제 손의 가죽을 당겨보며 절망했다. 그리고 얼굴의 가죽도 늘어날 대로 늘어나 흉물스레 변해 있었다. 그제야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흘렸다.
" 네가 하늘의 힘을 빼앗긴 네가... 매일매일이 눈을 뜨는 것이 죽음을 기다리는 고통이 얼마나 크고 무섭고 두려우며 사랑하는 가족에게 아무것도 못해주는 무능력한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지 그런 가족에게라도 무엇인가 간절히 해주고 싶은 마음만이 존재하는 사랑을 알 턱이 있나? 그래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세상에 보여주고자 하는 가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음을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 지켜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음을 알 수 있었느냐 말이다. "
그렇게 말하며 연수는 다시 매섭게 노려 인간을 바라봤다.
" 한 낯 네 말 한마디에 충성하고 네 말에 목숨을 거는 개. 그 개가 네게 충성한 이유를 정녕 모른단 말이냐? 그게 자식이 진정으로 너를 존경하고 위해서 충성하는 것과 너를 지 목숨을 지켜주고 밥을 주는 존재로 충성하는 개와 같다고 본 것이야?"
" 너의 목숨 하늘이 허락한다면 내 지금 당장이라도 가져가겠지만 마음 같아서는 너희들의 목숨을 한방에 가져가겠지만 아쉽게도 하늘은 허락지 않는구나.
니들이 살아생전 숨 쉬는 동안 그 긴 시간 동안 오늘 들은 것을 기억하고 산파 너는 이제 매일 죽음에 맞서야 할 것이야. 매일매일 초라해지고 아무것도 못하는 너 자신과 싸워야 할 것이야. 어디를 가도 알아봐 주고 네 능력을 인정해 주던 과거의 너를 기억하는 이들의 기억이 모두 사라졌으니.
아무도 너를 알아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먹을 것을 찾아야 하고 하루하루 잠들 곳을 찾아야 할 것이다. 누울 자리가 마땅찮아 목숨을 던지고 싶어도 쉽게 죽지도 못할 것이고 그렇다고 살고 싶어도 살아 있는 게 더 고통처럼 느껴지는 하루가 이어질 것이다.
네가 왜 그렇게 사는지 네가 왜 그리 비참한지 아무리 생각하려 들어도 계속 너 자신만 원망하게 될 거야. 네 욕심으로 일어난 일이란 생각만 머릿속에 들 거야. 네 안에 빛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 "
그리고 인간을 바라봤다.
" 허울 좋은 집안에서 잘도 백두대간 허리를 잘라 대들보 삼아 재물을 모아 잘도 버텨왔겠다. "
" 그래 어디 누릴 권세며 탐욕을 잘 누려 보거라. 너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겠지. 저 년의 목숨을 네가 거둬야 하니까.
물론 내가 가져간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도 사실은 네가 원해서 이뤄진 것이니. 저 년의 목숨에 깃들었던 악귀는 내가 이미 데려간 터. 저년이 깨면 미친 듯 발광을 할 게야. 왜냐면 난 기억을 안 지울 거거든.
그 악귀에게 갇혀 영혼이 잠식당했던 그녀의 기억이 하나하나 되살아 날 때마다 미친 듯 발광해서 결국에는 네가 저지른 악행을 다 까발리려 들 테고 그럼 넌 저년의 목숨을 거둬야 하니까. 그게 니 운명이거든. 그리고 네가 가진 권세로 그걸 덮어야 하니까.
니 손이 더 더럽혀지고 또다시 이 집안에 개들이 채워지고 등을 돌린 니 손주가 니 재산을 갈갈이 뜯어먹으면 그때 내가 다시 오마. 어차피 이런 악행으로 3대가 잘 살지는 못하는 법. 비루하기 짝이 없이 모든 권력에게 외면당한 채 감방에서 매일매일 너를 죽이려 드는 자들에게 갖은 방법으로 생을 구걸하고 하루하루 버티고 버텨 빛을 보려 할 때 그때가 나를 만날 날이다. 네 인생에 빛은 나니까. "
활활 타오르던 연수는 이내 나와 정영에게 다가와 우리를 끌어안았다.
" 가자. "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우리에게 입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