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봉사활동

by moonrightsea

순간 나는 물에 빠져 버렸고 허우적허우적 대며 정신을 못 차릴 때 손이 불쑥 들어와 내 팔을 끌어당겼다.

" 괜찮아?"


경윤이다. 일어나 보니 허벅지가 안 되는 높이의 물. 놀라고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 차가운 냇물은 온몸의 긴장을 한방에 씻어내렸고 무더운 여름의 열기를 식혀 버렸다.

"야 이러기야?"


나는 물을 두 손 가득 담아 경윤이에게 뿌렸고 나를 도와준답시고 팔을 뻗었던 경윤이는 놀라 도망도 가기 전에 물세례를 맞았다. 옆에서 배를 잡고 깔깔 대던 권익이는 어느 틈엔가 다른 친구들 손에 들려 내 옆에 빠져 있었고 곧이어 정림이도 물에 빠지더니 다른 친구들도 물로 뛰어들어왔다. 그렇게 깔깔 거리며 우리는 한참을 웃었고 한 시간 남짓 물놀이를 하고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곧 차양막으로 내달려 평상 위로 올라왔다.


" 이런 강물이 불어나면 위험하니까 어서 숙소로 돌아가자."

열심히 물놀이를 구경하던 선생님께서 제일 마지막에 물에 빠지시고 털썩 평상에 앉아, 담배를 한대 물고는 하늘을 바라보시더니 주섬주섬 짐을 싸셨다. 그런 선생님의 뒤를 따라 우리도 짐을 싸기 시작했고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 어떻게 하지? 우산이 없는데."

" 머 어떻게 다 젖었는데... 남학생들은 일단 짐 들고 뛰어가고 여학생들은 여기 돗자리 쓰고 따라와. 그리고 경윤이랑 권익이는 나머지 짐 들고 여자애들 돗자리 좀 들어주고. "


" 네? 짐 들고 돗자리도 들라고요?"

" 뭐야. 은사로 모신다며?"

" 네. 그렇죠. 은사님. "

몇몇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의 뒤를 따라 먼저 내달리고, 돗자리를 양쪽에 들고 어색하게 짐과 함께 정림과 나를 바라보던 권익과 경윤에게 선생님이 외쳤다.

" 얘들아. 여기 봐봐. 찰칵. 이야. 그림인데? 한 번 더. 찰칵."

" 샘 머에요. "

순간 당황해하며 인상을 쓴 권익이, 활짝 웃는 정림이, 미소를 지은 나, 그런 나를 바라보는 경윤이 이렇게 우리는 추억의 한 장면이 되어 사진에 그렇게 남으며 그날 하루가 저물어 갔다.




그리고 그날 밤.

"아악아악"

" 무슨 일이에요? 선생님? "


"아 니들은 일단 동요하지 말고 들어가. 괜찮아. 별일 아니야."

잠이 들려고 방으로 들어가 눈을 붙이려고 할 즘 어디선가 괴로운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왔고 아이들은 방문을 열고 속소밖으로 나오자 선생님이 진정을 시키며 우리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오셨다.


" 가끔 장애우들이 그럴 때가 있어. 그냥 이럴 때는 니들은 모른 척하면 돼. 니들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여기 계신 분들이 알아서 하시니까. 니들은 그냥 들어가 있으면 돼. "

선생님의 말에 우리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고 한동안 그 소리는 계속 귀가를 맴돌았으나 이내 고요해졌다.


다음날, 약간 초췌한 얼굴의 원장님이 우리를 배웅하러 나오셨다.

" 애들아 이틀 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본의 아니게 비가 오는 바람에 오늘 일정이 좀 당겨져서 그렇네. 산길이다 보니 위험해서 조금 일찍 하산하게 된 점. 미안하게 생각해. 조심히 돌아가고 여기서 한 경험이 소중한 추억이 되어 너네들 인생의 밑거름이 되길 바랄게.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께도 효도하고 알았지?"


" 네. 감사합니다. "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모두 피곤한 듯 서로 누구랄 것도 없이 어깨에 기대어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나는 비 내리는 창밖 한 없이 이어진 숲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장선생님은 이 깊은 숲 속에서 그 긴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버텨내는 걸까. 하루도 이틀도 이토록 길고 고되게 느껴지는 데 누군가를 위하고 헌신하는 마음이 그토록 긴 시간 동안 이어지는 한결같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문득 부모님이 생각났다.

넷이나 되는 아이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불만이나 투정한마디 말하지 않고 아침저녁을 준비하시는 어머니, 하루도 쉬지 않고 주말까지 일하시는 아버지. 새벽마다 일어나 마당을 쓸고 정원을 손질하시는 할아버지... 여느 집처럼 우리 눈에 보이는 싸움이라고는 없었던 우리 집.


서로를 흠잡고 흉보며 고성이 오가는 싸움 하나 없는 그 긴 침묵의 시간들. 원망도 어떠한 화도 오가지 않았던 대화들은 어쩌면 그런 인내의 마음은 아닐까.


내가 그토록 답답해하며 서로의 마음을 말하지 않던 그 불편한 순간들은 어쩌면 내뱉으면 뼈에 사무치는 상처가 되어 서로에게 칼날이 되어 도려내야 하는 아픔이 됨을 알기에 침묵하시는 것은 아닐까. 우리를 위해. 그 답답함을 참고 또 인내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이렇게 낳아주신 것만 해도 고마운데.


"애들아 고생 많았어. 집에 들어가 잘 쉬고 담주는 설령동 마을 회관입구 환경미화 있으니까 늦지 앉고 참석해. 그날 보자. 미소야. 집에 도착하면 전화할게. 받아."

" 응? 응. 알았어."

권익이 해산하며 내게 다가와 말했다. 그런 권익의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정림이 어느새 다가와 물었다.


" 너 요즘도 권익이랑 자주 통화해?"

" 아니 그때 모임 이후로는 안 했어. 왠지 이상하잖아. 여자 친구도 있는데."

" 걔네 사귀는 거 아니라는데? 뭐지?"


" 넌 어떻게 알아? "

" 아 오빠친구들이 말해줬지. "


" 아 맞다. 이번에는 아린이 안보이던데 너희 오빠랑 아린이는 아직도 잘되어가?"

" 잘 될 리가 있냐? 말도 마. 걔 완전 진상이야."




" 왜?"

" 휴. 내가 한동안 너 뜸했다 그쟈 친구야? 이리 와 너."

정림은 나의 목에 헤드락을 걸었고 나는 그녀에게 이끌려 버스에 올랐다. 그간 그녀의 과외선생님이 경원고 회장을 과외하고 정림과 그의 오빠정혁을 과외하는 일 그래서 그들이 서로 소식을 알고 지내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린과 정혁이 헤어졌다는 말은 오늘 들어 나도 놀란 터였다. 그것도 정혁 이 아린을 찼다는 사실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 집착이 집착이 보통이 아니야. "

" 되게 도도해 보이는데 보기와 다르네?"

" 몰라. 매일 전화해. 하다 하다 엄마가 너무한 거 아니냐고. 우리 아들 대학 떨어지면 네가 책임질 거냐고. 난리를 그런 난리도 아니었어. "


" 진짜?"

" 더 놀라운 건 전화를 해도 오빠의 반응이 시원찮았다는 거야. 아린이가 그렇게 전화하는데도 매일 바빠. 시간 없어. 그런 거 물을 거면 전화하지 마. 이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리는 거야. 지가 그렇게 좋다고 난리 치며 우리 동아리 다시 들어올 때는 언제고. 나참. "


" 뭐야. 미스터리 커플이야?"

" 암튼 오빠랑 사귀기 전에는 내도록 우진오빠 이야기를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대더니..."

" 너네 집 연락처는 어떻게 알고?"

" 몰랐어? 걔 나랑 같은 중학교 나왔잖아. "

" 아...."

" 내가 전에 말했는데 걔가 우진오빠 팬클럽 회장이었다고."

" 난 그때 그 우진이 연예인줄 알았지. 사람인 줄 몰랐지. 내가 원래 남들 연애에 관심 없잖아. 듣기는 잘 들어줘도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고. "

" 너도 참. 뭐. 그게 니 매력이니까. "




" 뭐야 그거 칭찬인 거지?"

" 과연?"

" 어쭈"

우리는 그렇게 버스 안에서 장난을 치며 깔깔거렸고 버스에서 내린 정림이 안 보일 때까지 나는 손을 흔들어 댔다. 그러다 문득 전화벨이 울려 급히 전화를 받자, 권익이었다.


" 뭐야. 아직 버스 안이야?"

" 응 넌 벌써 도착한 거야?"


" 나야 아까 도착했지. 차 타고 왔잖아. "

" 아 그렇구나. 잘 들어갔어?"

" 응. 넌 내리려면 멀었어?"


" 아니 다와가. 왜 무슨 일이야? "

" 아 그게. 그때 그러니까..."

" 뭐 그때 그 애? 헤어졌다며?"


" 아냐. 사귄 거 아니거든. 우린 철저히 비즈니스 커플이었어. 그럼."

" 뭐래. 동네방네 그 정도 키스면 뭐. 사귀는 거나 마찬가지지."


순간. 버스 안을 돌아봤다. 토끼눈을 하고 바라보는 내 행동이 이상해서인지 아니면 약간 흥분한 내 음성이 너무 커서 그런지 왠지 모든 승객이 나를 보는 것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훌쩍 내려버렸다.

" 벌써 다 온 거야? "

" 아냐. 인마. 너 때문에 나 너무 빨리 내렸잖아. "


" 올. 충격적이긴 했나 보네. 봐. 내가 이런 놈이라니까. 내가 좀 과감하긴 하지. 그러니 그날 니들보다 늦었는데 상품권을 우리가 탄 거지."


순간. 그때의 그날이 머릿속에 번개처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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