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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rightsea Sep 18. 2023

#1-4. 다섯 번째 별

내가 여기 사는 이유

"여기입니다. 들어오시죠."

내가 캠핑카 내부를 급히 정리하고 안으로 그들을 불렀을 때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들은  차 내부를 연신 둘려보며 들어왔다.


" 여기서 어떻게 생활하시죠? 저라면 금방 불편해서 못 지낼 거 같은데..."


 박경장이 대략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어보자, 창밖을 바라보며 서 있던 민경사가 박경장의 옆구리를 살짝 찌른 후  더 물어보려는 박경장의 입을 가로막으며 내게 물었다.

" 이곳에서 목격하신 건가요? 시각은 언제쯤이었나요?"


나는 그런 민경사를 바라보며,

"음 한 11시 반정도 된 거 같네요. 방파제서 나온 게 11시 넘어서니..."


" 그럼 여기 와서 커피를 내리고 창밖을 보자 불빛이 보였고 저희 팀과 통화하는 사이 출동차가 도착하고 바다에 불빛도 사라졌다?... 맞나요?"


" 네 그렇죠. 통화하느라 한눈 판 사이 금세 사라져 버린 거죠."

" 네에."

그녀는 그렇게 듣는 둥 마는 둥 대답을 하며 무언가 생각을 하려는 듯 말끝을 흐리며  다시 열심히 적고 있었다.

 어느새 조용해졌던 파도소리가 귀가로 선명해지며 그들에게 줄 커피를 들고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자 그 둘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은 색색의 노을로 붉게 물들며 태양을 집어삼킨 듯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 이야. 다른 건 몰라도 저 그림 같은 노을은 여기 아니면 구경하기 힘들겠는데요. 민경사님? 아주 예술이죠? 이래서 제가 동해근무를 고집합니다."


마치 자신만의 갤러리를 오픈 한 마냥 즐거워하는 박경장에게 민경사는 부러운 듯 바라보며 말했다.


" 후훗. 그럴만하네요. 바다 위 노을을 사진이 아니라 실물로 그것도 근무 중에 영접하긴 또 처음이네요. "


그녀의 말에 나는 

" 아 민경사님은 여기 오신 지  얼마 안 되셨나 보네요?"


내가 그렇게 묻자 곁에서 감탄하며 노을을 바라보던 박경장이

" 그럼요. 원래라면 특채로 들어와 본부에 있어야 하는데 특별히 여기 오신 거라 그렇죠. "

조금은 신이 난 듯 보이는 박경장과 달리 머쓱한 듯  모자를 다시 손에 쥔 민경사가 나를  보며 말했다.


" 아 오늘 막 현장근무로 배정받고 바로 온 거라서요."


민경사의 민망함을 달래주고자 나름 나는 넉살 좋게 웃어넘기며

" 앞으로  자주 뵙겠네요. 뭐 낭만적인 노을 구경을 원 신다면 언제든 장소 제공해 드리죠. 저도 여기서는 거의 잠만 자서요."


내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민경사는 


" 그럼 평소는 여기 안 계신 건가요?"  

" 아 뭐 혼자 있다 보니 대부분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일하다 퇴근해서요."


이때, 김 부장이 맥주와 소주, 안주가 든 편의점  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 이 과장~  짠!  어?  또 무슨 일터 졌어? 경찰분들은 왜..."


느닷없는 김 부장의 등장에 당황한 박경장과 민경사는 연신 김 부장을 바라보며 나를 바라보더니 내게 물었다.


"누구시죠?"


그러자 김 부장은 이내 타고난 붙임성으로 웃으며,


" 안녕하세요. 아 전 이 친구 직장동료입니다만... 해경에서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여기를...?"


난처해하는 두 경찰과 김 부장을 사이에 두고 아직은 비공개 수사라던 그들의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나는 뭐라 대답을 할까 난감해하고 있는데 이내 민경사가 기지를 발휘해 김 부장에게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근처 순찰 중 캠핑카  치안점검상 들렀습니다. 모임이 있으셨군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윙크를 했고 나는 그런 그녀의 기지를 바로 받아치며,


" 아 그런 건  아닌데 뭐. 이렇게 된 거 노을도 이쁜데 퇴근길이시면 같이 술이라도 한잔 드시겠어요?"


" 아 아닙니다. 다음에 시간 나시면 또 뵙도록 하죠. 박경장, 우리는 그만 서로 복귀하도록 하죠. 두 분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어색하게 인사를 건넨 뒤 서둘러 자리를 떴다.

못내 찜찜한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김 부장은 어리둥절해하며 나를 바라봤다.


" 아 별일 아니에요. 캠핑카보고 신기해하길래 잠시 이야기 좀 나눈 거예요."

내 어색한 변명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김 부장은 그래도 미심쩍은 마음이 가시지 않은 듯 연신 머리를 긁적이며

" 아니 캠핑카가 서 있는 걸 어제 오늘 본 것도 아니고 주변에 캠핑카 장박족은 차고도 넘치는데 희한하네. 왜 여기 들어와서 치안 어쩌고 난리야?"


" 뭐. 정장 입고 캠핑카 들어가는 사람 보기 힘들죠. 놀러 온 것도 아니고... "

" 뭐 이 과장이 그렇다면야 그러려니 하는데... 난 또 시체라도 떠올랐는 줄 알았잖아."

" 네? 김 부장님은 무슨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세요? "

" 뭐. 그렇지? 이 과장 와이프가 현실감이 얼마나 강한데 그리 챙겨가고 여기를 또 오겠어?"

" 네?"

" 아 아니다. 내가 괜히 지난 이야기는 꺼내서... 미안하이. 자자 술이나 먹자고."


2차를 가자며 우기는 김 부장을 대리기사를 불러 차에 태워 보내고 캠핑카로 돌아와 비로소 옷을 갈아입고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기억. 


한참 입사 후 동기들이 대리 직급을 달 때 지방대 출신에 학벌이나 그 흔한 인맥, 배경하나 없던 나는 연일 진급에서 밀렸고 그런 내게 희망은 부동산 재테크였다. 

나름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사회생활이라 착실히 돈을 모을 생각에 연애도 미뤄가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내 나이 30대 후반. 나름 알뜰히 모은 돈으로 월세에서 다시 이곳 인근에 빌라를 사고 거기에 부동산 경기 붐으로 전국이 들썩일 무렵 나는 부동산을 하는 김 부장의 아내 소개로 이곳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를 기다리며 소개팅에 나가 전 아내를 만났다. 그녀는 꽤 연차 있는 대형병원 간호사였고 현실감이 분명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다. 


그런 야무진 그녀와 서울을 오가며 1년의 장거리 연애 끝에 이곳에 마련했던 빌라에 신혼집을 차리고 여기 새 아파트에 입주를 기다리며 막 신혼 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될 무렵,


  이곳 울진에 지진이 일어났다.

  하필 그날은 내가 주야 교대로 집을 비운 상태였는데 임신 3개월 차였던 전 아내는 너무 놀라대피하다  빌라계단에서 발을 삐긋하며 굴러 유산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그녀를 살뜰히 돌봤지만 한동안 유산으로 인한 그녀의 우울증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 여름. 태풍의 경로가 이곳 울진을 지나가며 또 한 번 시련은 닥쳐왔다. 


안 그래도 혼자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아내 때문에 주야 교대도 주간 근무로 옮겼었는데 하필 태풍으로 인한 발전소 비상근무로 자리를 비우며 또다시 그녀를 그 무서운 순간 혼자 두게 된 것이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고 태풍도 무사히 빠져나갔지만 도통 그녀의 마음은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이곳에 아무 연고도 없는 자신을 그 무서운 자연재해 속에 혼자 둔 것도 속상한데 삼십 대 중반에 느지막이 아이를 가지고자 매일 난임주사를 맞아 시퍼렇게 멍이 든 거울 속 그녀의 배는 더 그녀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내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기어이 그녀는 이대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며 바다에 뛰어들었다. 


때마침 근처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던 김 부장이 나를 도와 그녀를 바닷가에서 데려 나왔다.


  지진 때문에 가뜩이나 입주하려던 아파트에 문제가 생겨 입주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설상가상으로 전국적으로 빠르게 식어가는 부동산 열기로 인해 대출을 잔뜩 끼고 분양받았던 아파트는 마이너피를 기록하고 있었기에 그런 우리 부부를 바로 곁에서 봐왔던 김 부장은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래서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더 이상 그녀를 여기 잡아두는 것은 내 이기심인 것만 같은 마음에 이혼을 요구하는 그녀에게 나는 한치의 미련도 없이 우리가 살던 빌라를 처분하고 분양받았던 아파트도 팔아 위자료로 주고 헤어졌다. 


하지만 그녀와 헤어지고 미친 듯 일에만 매진하니 의외로 진급의 기회는 금방 왔다. 

동기들이 한참 애들 키우고 가정일로 두분 분출할 동안 나는 금방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했고 나름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보상이라도 하듯 직급이 올라감에 따라 연봉도 제법 올라갔다. 하지만 내 삼십 대를 송두리째 앗아간 집이란 것이 부동산이란 것이 도통 신뢰가 가지 않아 나는 캠핑카를 사서 이곳에 세워두고 가끔 회사 사택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거의 대부분은 여기서 생활을 이어 왔던 것이다.


' 지지리도 재수없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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