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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rightsea Sep 22. 2023

#1-5. 다섯 번째 별

회식

" 자 그럼 이번에 인턴으로 저희부서에 배정받은 새구 소개가 있겠습니다. 정형빈씨?"

" 와 짝짝짝짝"

" 안녕하세요. 이번에 인턴으로 온 정현빈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 어서와요. "

" 환영합니다."

다들 반가워하며 한마디씩 건네자, 나는 주변을 두리번 거린 뒤,

" 자 다들 건배 하시죠. 그럼 건배사는 여기 김부장님께서 하시겠습니다. 김부장님?"


마치 멍석이라도 깔듯 애타게 주말맞이 회식을 부르짖던 김부장. 인턴의 입사는 김부장에게 절호의 찬스였고 그런 김부장에게 바톤을 넘기자 기다렸다는듯 김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높이 들며 말했다.

" 제가 잔을 들어 청춘을 하면 여러분은 위하여를 외쳐주세요. "

" 청춘을~"

" 위하여~"

그렇게 바닷가 조개 구이 집 테이블에 둘러 앉아 회식자리의 분위기는 물씬 무르익어 갔다.


술을 좋아하는 김부장.

하지만 좀처럼 술이 늘지 않는 김부장은 늘 그렇게 술자리는 찾아가며 때로는 만들어가며 늦은 시각까지 술로 보내며 집에서는 최대한 잠만 자려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김부장의 아내가 운영하던 부동산중개업이 그리 뜻대로 잘풀리지 않는 것도,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늘 마치 김부장이 호객행위이라도 해야 되는 양 아내에게 시달리는 것도. 그런 김부장의 유일한 핑계거리는 바쁜 회사일.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적 회사일은 이제 그 나이쯤이면 익숙해질 때고 승진을 염두에 두거나 아니면 제태크로 재산을 모은 부부동반 골프 모임은 부부가 함께하며 자녀 교육에나 한참 열을 올리며 이야기 하는 자리였고 그런 김부장에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집구석에 틀어박힌 작은 아들이나 서울도 아닌 경기도 대학을 다니며 일년에 한두번 내려오는 첫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보니 동기나 상사들과 공통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호의로 동기들에게 소개해줬던 분양아파트관련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유독 김부장은 동기나 직장 상사들과의 모임을 가는 대신 이렇게 부서 회식자리나 후배들과의 자리에 더더욱 목을 메었다.


" 회식 오셨나보네요?"


가게 앞에 서서 담배를 물고 하늘을 바라보고 섰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민경사였다.


" 아 네. 여기는 어쩐 일로?"


그러자 어느새 옆에 다가온 박경장이

" 안녕하세요. 저희도 회식왔습니다. 민경사님 새로 오셔서... 그쪽도 회식이시군요?"

" 아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수사는 잘되어가고 계신가요? 박경장님. "


가게 안을 한번 휙 둘러보던 박경장은 이내

" 음. 수사가 영 지지부진하네요. 그쪽은 회식자리 분위기가 좋네요?"


박경장의 시선을 따라 가게 안 한참 잔을 높이 들며 파도타기 중인 부서원들을 바라보며,

" 아무래도 모처럼 부서에 젊은 사람이 오니 그렇죠. "


" 그렇군요. 그럼 즐거운 시간되시죠. 저는 교대시간 때문에 얼른 마시고 들어가야 해서... 이만. 민경사님 먼저 들어갑니다. 이야기 나누고 들어오시죠. "

박경장은 술이 고팠는지 이내 입맛을 다시며 냉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박경장을 뒤로 민경사에게


" 이곳에 온지 며칠 안되셨다 들었는데 적응은 잘 되고 있으세요?"

" 다들 잘 해주셔서 잘 지내고 있어요. 그것보다 지난번 일 관련해서 묻고 싶은게 있었는데..."

민경사의 다소 조심스러운 물음에 고개를 갸웃 거리며 바라보는데, 어느새 담배를 피러 나온 김부장이 다가오며 물었다.

" 어 이게 누구야? 안녕하세요? 여긴 왠일이세요?"

그런 김부장에게 환한게 웃으며 민경사는 답했다.

" 안녕하세요? 저희 회식이라서요. "


" 아 거기도 회식이군요. 동네가 좁다보니 여기서 다 뵙네요. 이렇게 뵈니 전혀 달라보이시네요. 들어가시죠."


김부장의 이끌림에 자리로 돌아오자, 어느새 테이블 마다 시원한 조개탕이 올라와 있었고 그새 몇번의 잔이 돈 건지 벌써 인턴은 술기운이 꽤나 올라 취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부서 사람들 중 젊은 사람들은 슬슬 시계를 보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톡을 보내고 있었다.

" 자자 안주가 나왔으니 잔이 돌아야지. 잔 채워봅시다."

김부장의 주문에 마치 마법이라도 걸린 듯 다들 꾸역꾸역 잔을 채우고 또다시 돌기 시작하는 파도 잔.


" 그때는 몰랐는데 사복 입으니 민경사 전혀 달라보이시지 않아?"

곁에 앉은 김부장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벽면 귀퉁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민경사 테이블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부장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잔을 들어 목을 축이며 바라보자 그의 말대로 민경사는 처음 보았던 다소 딱딱하고 사무적이게만 보이던 모습과 달리 환하게 웃으며 편하게 팀원들과 잔을 주고 받고 있었고 그런 분위기 탓인지 아니면 편안한 사복 차림탓인지 뭔지 모를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 자자 여기 계산은 이 쯤에서 부서 회식비로 하고 더 마실 사람들은 여기 2차 비용, 이걸로  정 대리가 인솔하에 진행하도록. 그럼 우리는 이만."

김부장은 그렇게 말하며 내 팔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테이블 위에 5만원권 몇장을 꺼내 놓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부서원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 젊은 사람들은 또 같이 놀아야 제대로 놀지. 안그래? 우리는 아는 분들이 계셔서 말이야. 재미 있게들 놀라구."

김부장이 그렇게 말하며 하나둘 자리를 뜨는 민경사네 회식자리를 불안하게 바라보며 서둘러 회식자리를 마무리 했다.


그리고는 내 팔을 이끌며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민경사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 벌써 회식이 끝나셨어요? 이렇게 만난 것도 보통인연이 아닌데 그냥 가시지 마시고 한잔 하시죠?"

넉살 좋은 김부장은 마치 그 자리있던 사람처럼 금방 민경사 앞 빈 잔을 채우며 말했고 그런 김부장의 능청스러움에 당황할만도 한데 내색조차 않고 민경사는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 아.. 안녕하세요. 안그래도 다들 금방 술자리가 끝나서 아쉽던 찰라 인데 어서오세요. 박경장님 한잔 더 괜찮으시죠?"

" 당연하죠. 사석에서는 누님으로 모시기로 했으니 함께 해야죠. "

박경장은 술이 고팠는지 연신 술잔을 들이키며 옆으로 당겨 자리를 내어 주며 말했다.

" 다른 분들은 가셨나 보네요?"

" 뭐 요즘 워낙 싱숭생숭해서..."

박경장이 그렇게 말하며 빈 술잔을 채우려 하자 곁에서 지켜보던 민경사가 잔을 채우며 말했다.

" 요즘은 술자리에 그리 오래 있지 않나봐요. 여기는 특히 교대로 일이 이뤄지다 보니 더 그런 거 같아요. "


그러자 김부장은 술잔을 슬그머니 부딪힌 후 한잔 들이키며 내게 무슨말이라도 하라는 듯 눈치를 보냈고 나도  모르게

"  민경사님은 술이 꽤나 센거 같으신데요? 아까부터 옆에서 보니 거의 주는 술 다 원샷하시던데..."

" 어머 계속 저 보고 계셨어요?"


민경사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머리를 글적이며 내가 말없이 한잔 원샷 하자, 곁에 앉은 김부장은

" 어이쿠. 이런 미인이 이 좁은 동네에 오셨는데 어찌 눈에 안들어오겠어요? 자자 한잔 받으시죠. "



" 어머 여기 오시려고 그렇게 서둘러 자리 마무리 하신 거에요? 저도 한잔주세요."

낯익은 여자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허사원이었다. 그런 허사원을 보고 김부장이


" 어 어서와 앉아. 합석해도 괜찮죠? 여기는 저희 부서 직원 허은설입니다. "

" 안녕하세요. 박경장입니다. 제가 한잔 올리죠. "


그렇게 낯익은 술집에서 낯선 이들과 이뤄진 모처럼의 회식자리. 이미 술기운이 오른 이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정치에 경제에 우리 세대들의 공통적인 고민에 지역이야기에... 생각보다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의 삶들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하지만 술기운이 오를대로 오르자 어느새 분위기는 역시나 김부장이 주도해갔고

" 그래서 말이야. 낚시를 하는데 풍경이 얼마나 멋지던지... 아니다. 우리 이럴게 아니고 이왕 이렇게 모인 김에 우리 3차로 그래. 이왕 이리 된거 ... 딸꾹. 캬~ 아. 내친 김에 우리 이과장 아지트로 가자구. "


나름은 절제를 하며 술자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내게 들려온 김부장의 청천벽력같은 말. 내가 놀라 눈이 동그랗게 되서 김부장을 바라보자 김부장은 애타게 오늘은 집에 가기 싫다는 절규에 가득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팔을 다시 이끌며 애원하다시피,

" 이과장~~ 딸꾹~~ 이대로 끝내기는 너어무 아쉽자나~~ 안그래? 가자. 응? 여기서 걸어가면 딱인데~!"

" 아... 네... 뭐... 그러시죠. "


그런 김부장을 부축하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옆 편의점에서 급히 안주를 사고 그렇게 우리는 내 캠핑카로 향했다. 김부장을 제외하고 다들 고향을 등지고 직장을 따라 온 이들이다 보니 늘 반복되는 일상에 주말에 특별할 것 없던 금요일 밤. 그 밤에 마주한 캠핑카에서의 회식자리는 생각보다 그들에게 낭만적인 시간을 선사했다.

쌀쌀한 가을날. 제법 바람이 불어대던 여느날과 달리 그날따라 바람도 없고 하늘의 별은 유독 빛났다.

캠핑카 앞에 쳐둔 챠양막 아래 모닥불을 피우고 그렇게 둘러 앉아 음악을 틀어두고 박스에 의자에 걸터 앉아 각자 취향에 맞는 양주에 소주에 맥주에 잔을 채우고 누구랄 것도 없이 그렇다고 오가는 몇마디 말도 별로 없이 둘러 앉아 음악에 흐느적거리며 그렇게 홀짝이는 술맛은 캠핑의 멋은 어쩌면 우리의 지친 일상을 달래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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