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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rightsea Sep 27. 2023

#1-10. 다섯 번째 별

불안

" 허사원 웬일이야? 이렇게 다 꾸미고? 데이트라도 가는 거야?"

퇴근 무렵 한 과장이 다가와 나를 툭툭 치며 고개를 저어 바라보니 허사원이 오늘따라 한 과장의 말처럼 달라 보였다.

  하루종일 같이 생활해 왔는데도 아니 같이 근무를 한지 벌써 8년이 되었는데도 미쳐 그녀의 패션에는 관심 한번 두지 않았는데 센스가 뛰어난 한 과장은 그녀의 변화를 한눈에 감지하고 먼저 말했고 그런 한 과장을 한번 올려다본 후 허사원을 보자 이내 허사원은 웬일인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 어머 한 과장님 센스. 계절이 바뀌었잖아요. 이런 날 기분이라도 내야죠. 안 그래요? 그럼 가을 여자는 이만 퇴근합니다. "


" 허허 허사원 바람 들었나 본데? 웬일이지? 알아?"

한 과장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봤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멀어지는 허사원의 뒤통수를 보다 다시 한 과장을 올려다 보고는 어깨를 들썩였다.

" 뭐 별로. 관심 밖이라."


" 뭐야. 둘이 데이트 가는 거 아니었어? 이상하네. 오늘 하루종일 이과장만 바라보고 있던데?"

" 뭐요? 그럴 리가요. 잘못 보신 거겠죠."

" 이렇게 눈치 없어서는. 어서 가봐."

" 아이고. 한 과장님. 아니래도요. 저는 아닙니다요. 먼저 퇴근하시죠. 저는 아직도 할 일이 태산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책상에 올려진 자료를 바라봤다. 그러자 한 과장은 방긋 웃더니 이내 자리로 돌아가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문득 책상 위 시계를 보니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난 무렵, 오늘따라 이렇게 퇴근이 하기 싫으면서도 기다려지는 수요일은 처음인 듯하다.


내가 초조한 듯 시계를 바라보고 있자, 김 부장이 다가와

" 뭐 연락올 곳이라도 있어? 아까부터 시계만 보고 있게."

" 아 네. 뭐. 퇴근 안 하십니까?"

" 흐음. 나야 뭐. 건 수 기다리는 건데. 이 과장이 입질이 안 하니 어쩔 수 있나. 안 그래?"

늘 늦은 시각까지 야근을 하는 나와 같이 퇴근하거나 내가 저녁을 먹으러 일찍 퇴근하면 말없이 뒤따라 방파제로 향하던 김 부장이 웬일인지 내 눈치를 보고 있어서 나는

" 아. 민경사가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다고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어. 흐흣. 그런 줄도 모르고 말이야. 눈치도 없이. 알았어.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

그렇게 말한 김 부장은 짐을 챙겨 나가는 길에 내 곁으로 다가와서는 슬쩍 내 귓가에

" 그렇게 티 나게 기다리지 말고 그냥 먼저 전화해 봐. 기다릴지 모르잖아."


" 네? 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자 김 부장은 짓궂게 놀란 시늉을 하며,

" 뭐라는 거야. 이번 주 내 그러고 있는데. 왜 본인만 모른 척하지? 잘해봐. 나 간다."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찡긋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김 부장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랬다.

벌써 며칠 째 멍하니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일하는 중간중간마다 나도 모르게 민경사를 떠올리고는 했다. 사실 궁금하기도 했다. 일은 잘 해결되어 가는지 그 이후 그들의 행적은 어떻게 되었는지 뭐라 물어볼 수도 없었고 들을 세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전화를 할지 말지 고민도 되었다.

 막상 밀려드는 온갖 상념에 전화를 들었다가도 뭐라 말을 꺼낼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기에는 너무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고 연관이 있다고 말하기는 내 업무도 아닌 일에 지나친 신경을 쏟는 건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이내 전화를 내려놓고는 멍하니 핸드폰만 바라보다 자리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벌써 수요일.


 며칠은 그렇게 잘 버텨왔는데 막상 늘 같이 생활하던 사람들이 내게 입을 떼고 보니 오히려 어색했던 그동안의 내 행동들이 제대로 눈에 보이며 더는 앉아 있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나도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몸을 기댄 채 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를 물며 서 있는데 저 멀리 차량이 한대 멈추자, 아까 나간 거 같던 허사원이 반갑게 누군가와 인사를 한 뒤 차에 오르는 것이 보였다.

' 데이트 가는 거였구나. 그새 누군가 생겼나 보네?'


피던 담배를 마저 피운 나는 차를 몰아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는 숙소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잠자리가 바뀐 것도 아닌데 익숙한 숙소임에도 불구하고 캠핑카를 벗어나 누운 잠자리는 며칠째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고 쉬이 잠이 들지도 않았다.




퇴근 무렵.

" 결근할 사람은 아닌데 말이야. 전화도 안 받고 이상하네. 이 과장 전화해 봤어?"

" 네. 전화를 안 받아서 내일도 결근하면 비상 연락망에 전화해 보려고요. "

" 알았어. 그럼 이 과장 난 먼저 퇴근할 테니까. 내일 회의에 차질 없도록 준비 잘하고 수고해."

웬일인지 허사원이 출근을 안 한 걸 걱정하던 김 부장은 이내 와이프 생일이라며 서둘러 퇴근을 했다. 그런 김 부장을 바라보다 다시 업무를 보려 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 잘 지내셨죠? 저 민경사님 부탁받고 왔습니다. 주차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박경장의 전화에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저 멀리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있는 박경장을 바라보며 손을 든 뒤 다가가는데 다시 전화가 울려 바라보자 민경사의 전화였다.


" 잘 지내셨어요?"

" 아 네. 전화 주신다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별 일은 없으셨어요? 제법 기다렸는데 연락이 늦으셨네요."

" 아 그동안 서울에 갔었어요. 본부에 회의차... 이제 막 내려와서 전화드려요. 어디 가시나 봐요. "

민경사와 통화를 하며 얼결에 박경장의 차에 타자 박경장이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런 박경장에게 나는 전화를 가리고

" 죄송해요. 통화 중이라서..."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와의 전화를 끊기 싫어 나는

" 방금 막 만났어요. 박경장. 안 그래도 박경장이 민경사님 부탁받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제게 하실 말씀이..."

" 박경장?! 제가 부탁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당장 그 차에서 내려요! 어서!"


전화기 너머 다급한 민경사의 외침에 나도 모르게 박경장을 힐끗 곁눈질로 바라봤고 그런 내 눈과 박경장의 눈이 마주칠 때 스치듯 주홍빛 불빛이 지나갔다. 나는 다급히 차문을 열자 박경장은 차에서 내리려는 나를 붙잡았고 박경장이 붙잡은 손사이로 뜨거운 열기가 전해져 나도 모르게 매우 강하게 뿌리쳤다.


그러자 박경장은 재빠르게 차에서 내려 다시 나를 붙잡아 손을 잡으려 들었고 나는 이내 그가 잡 내 옷소매 위 그의 팔을 잡아 등 깊숙이 찔러 넣고는 업어치기를 해서 그를 내 던졌다. 그리고 친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차로 내달렸다. 차에 타고 차문을 잠그자 뒤따라 온 박경장은 차문을 미친 듯 열려고 하다 이윽고 자신의 목을 부여잡더니 본인의 숨통을 조이려 들었고 그의 손 사이로 움켜 쥐었던 목줄기 위로 주홍빛 핏줄이 돋아나나 싶더니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그렇게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나는 너무 놀라 차 안에서 다시 통화 중이던 전화를 들었다.

" 박경장이... 쓰러졌어요. 어떻게 하죠?"

" 휘우님.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세요. 아셨죠? 지금 5분 뒤면 본부 팀이 도착할거에요. 저도 같이 갈테니까. 그대로 계세요. 절대 내리지 마시고. 뚝."

그녀의 말대로 채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바로 검은색 밴이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차에서 검은색 슈트 차림에 가죽 장갑과 마스크를 쓴 남성들이 내려 박경장을 들 것에 실어 차에 옮겼고 차 앞 좌석에 타고 있던 민경사가 내려 내 차에 탔다.


" 휴우. 괜찮으세요?"

너무 긴장한 탓인지 나도 모르게 핸들을 잡고 있던 손이 미친 듯 떨려 왔다. 나는 채 바라보지도 못하고 멍하니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민경사는 재차 내게 물어왔다.

" 휘우님 이휘우 씨. 괜 찮으시냐구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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