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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rightsea Oct 02. 2023

#1-12. 다섯 번째 별

잠식

' 아직 눈치도 못 채고 있었군요. 인간은.'

순간 머릿속에 혼란스러운 영상들이 가득 차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문득 소리가 들렸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에 집중하려 애를 썼다. 


" 여기에 온 목적이 뭐죠? 왜 하필 이곳에 온 것이죠?"

민경사는 연이어 박경장에게 질문했지만 박경장은 묵묵부답이었고 고개를 숙인 내 머릿속에는 뚜렷이 박경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봐야 해요. 휘우 씨. '


내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박경장을 바라보자 박경장은 

' 내 말이 들린다는 것 다 알고 있어요.'

' 이건 뭐지? 당신에게 어떻게 이런 능력이..!'


그때 박경장은 민경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순간 박경장의 눈은 주홍빛으로 빛이나며 번뜩였다.

" 민경사 당신은 내가 믿을 수 있는 존재인지 알 길이 없죠. 이곳도 그렇고. "

민경사를 바라보고 박경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민경사는 잔뜩 날을 세운 채


" 그건 이 지구에 침입한 낯선 당신 같은 존재가 논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요? 당신들. 지구에서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거죠? 지구에 오고자 했다면 정상적인 루트로 정식 요청을 해서 와도 되잖아요?"

" 정상적인 루트라... 우리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침입자로 규정하는 인간들에게? 하. 아마도 실험대상이 되지 않았다면 다행일지도 모르죠. "


그렇게 말한 박경장은 팔짱을 낀 채 창밖을 응시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그런 박경장의 말이 울려 퍼졌다.

' 적어도 생명체로써 존엄을 알고 인간성을 지닌 당신 같은 존재라면 생명의 위기 순간을 인식하고 나와 같은 존재들의 목소리가 들리겠죠. 지금 인간들은 인구 소멸과 급속한 과학발전으로 위기에 처해 있으니까. '


나는 고개를 돌려 박경장의 시선을 따라 밖을 바라봤다. 분명 들어올 때 한 밤중이었던 창밖은 푸른 초원과 언덕이 펼쳐진 낮이었고 순간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밤인가 낮인가. 저 창문 밖 세상은 픽션인가. 아니면 또 다른 세상인가.


' 우리가 지구와 공조를 펼치기로 하고 수많은 정보와 기술을 전수할 때만 해도 인간들 내면에 잠재된 마음은 평화와 사랑, 공존 같은 인간애와 인류애였어요. 하지만 휴머노이드가 점령해 가는 세상은 곧 100년 후쯤이면 인간이 편의를 위해 개발하고 인간대용으로 생각했던 그 인공지능이 어느새 인간을 점령한지도 모른 채 몇몇 야망에 가득 찬 인간들의 지배를 받으며 우주를 개척한다는 명목으로 우리가 머무는 별로 우주전쟁을 해 올 거예요. 우리는 그걸 막으려 인간의 능력을 깨우고자 온 거예요. '


' 휴머노이드? 아직 이곳에는 그 정도의 기술이 개발되지도 않았고 한참의 시간이 필요한데...'


' 일반 인간들은 착각하고 있죠. 당신이 이곳에 들어오며 목격한 수많은 인간들은 이미 휴머노이드예요. 그들은 인간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사실 휴머노이드. 삶의 전반에 걸쳐 시스템 속에 침입하여 인간들에게 과다한 약물로 행동을 억제하며 정해진 틀로 삶을 유도하고 그렇지 못한 인간은 사회적 이방인이 되어 도태되도록 만들어가니까. 인간의 거대한 다양한 생각과 사유들은 사회라는 시스템으로 규격화되어 어느새 휴머노이드화 시키고 그걸 통해 길러진 인간은 휴머노이드와 다를 바 없는 삶으로 지쳐가고 있어요.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이 서로를 욕망으로 잠식하도록 의도적으로 진화시키고 있죠. 그리고 그 생각이 토대가 되어 세계를 서열화시키며 지배의 야욕을 키워가고 있어요.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삶을 사는 다양한 인간들은 생존조차 힘들도록. '


민경사는 박경장을 불렀다. 그런 민경사를 바라보던 박경장이

" 당신이 생각하는 세상은 진정 인간을 위한 세상인가요?"

" 당신과 같은 존재가 침입하여 이렇게 인간 세상을 어떤 소용돌이로 몰아넣으려 들지 않는다면 인간을 위한 세상이 되는 거죠. 당신이 여기 온 목적이 뭐고 왜 인간들의 바디를 갈아타며 어디를 향해 가려는지 말을 하지 않는 거죠?"

" 당신들 같은 존재들에게 말해봐야 당신들은 국가라는 시스템에서 주장하는 논리로 우리를 외계존재로 침입자로 몰아가니 그렇죠. 우리가 온 이유도 인간들이 가진 마음과 같이 우리 스스로를 지키고 존재하고자 함인데 인간은 인간만이 가진 우수성을 바라보고 야욕을 키워가고 있죠. "


나는 어느새 박경장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인간은 통제된 삶을 살지 않아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삶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요. '

' 그렇게 인식하도록 사회에 길들여진 것은 아니고요? 당신의 머릿속에 들어간 그 수많은 영상들은 우리 종족의 미래 모습이에요. 이래도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이 파괴적인 존재가 아닌 평화적인 존재인가요?'


머릿속 영상은 뚜렷하게 형체를 드러내며 거대한 우주선들이 길게 늘어진 채 한 행성에 폭격을 가하고 있었다. 지구보다 10배는 커 보이는 그 행성에서 빗발처럼 쏟아지는 포탄을 피하던 우주선은 그 행성으로 추락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고 행성 내부로 폐허가 된 건물들과 인간과 유사한 모습을 띈 존재들은 처참히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마치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히 머릿속에 재현되었다.


' 당신도 모르는 사이 당신은 시스템에 길들여지며 그 시스템에서 정해놓은 행보로 살아가는 중이라구요. 인간이 말하는 삶의 소중한 것들. 그것들을 점점 잊어가며..'


순간 박경장은 스스로 목을 조이며 발버둥을 쳤고 내가 놀라 박경장을 바라보자 박경장의 눈은 주황빛을 띄나 싶더니 순간 탁자 위로 튀어 올라 민경사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민경사는 민첩하게 박경장의 손목을 잡아 테이블 아래로 내동댕이쳤고 사무실 문이 열리며 요원들이 뛰어들어왔다. 그러자 박경장은 오징어처럼 몸이 늘어지며 의식을 잃어버렸다. 


다행히 민경사는 그 짧은 순간 나를 덮치며 감싸안았고 그런 민경사를 나는 품에 안은 채 바닥에 밀려 넘어졌다. 민경사의 얼굴을 내가 쓰다듬으며

" 민경사님 괜찮으세요? "

" 다행히 그가 원하던 목적은 실패한 것 같네요. "

민경사는 옷을 훌훌 털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는 바닥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머리속에 그가 말한 것들을 민경사에게 말해야할지 그가 말한 것처럼 이 곳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휴머노이드라면 민경사도 같은 존재라면 어떻게 해야할지 막상 민경사의 눈을 바라보자 말문이 막혀 뭐라 말해야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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