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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rightsea Oct 05. 2023

#1-13. 다섯 번째 별

믿음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의지한다는 것. 보는 것을 믿고 내가 경험한 것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 살아오며 익혀온 당연한 것들 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낯선 존재와 늘 마주하던 존재와의 사이에 믿음이 깨져버리는 순간에. 나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바라봐야 할 것인가.


머릿속은 온통 혼란의 도가니였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불안을 느끼든 지금 당장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 삶이 이대로 통째로 변한다 해도 내가 과연 그 박경장의 형체를 띈 그의 말처럼 이 지구를 위해 그리고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잠재적 의식 속에 내재된 인간성을 깨워본 들 한 낮 사회 시스템에 속한 개인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미 그의 말대로 저들이 휴머노이드라 한 들 저들의 실체를 밝혀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그냥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존재들. 인간. 기껏해야 어느 집단에 속한 공무원 정도로 보이는 저들이 그렇다고 인간보다 힘이 센 것도 그렇다고 인간과 외형이 다른 것도 아닌 그저 사람인 그들이 나와 다르다는 그의 주장은 왠지 신빙성이 떨어지게 더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불안한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내가 누리고 알고 있다고 자부해 온 삶이 알고 보면 거대한 시스템의 계획 일부이고 그 시스템에 적응해 가며 살아가는 계획된 인간의 모습이라면 나는 과연 주체적인 내 삶을 내 선택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그가 말한 대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여 도태되어 가는 인간 중 하나였던 것인가.


소용돌이처럼 몰아친 내 과거 인생에 대한 생각과 회의감. 그리고 그가 말한 인간성이란 것. 내가 누리고 살아야 하고 지켜야 하는 것들은 무엇이었나.




" 민서우 팀장에게서 이야기 들었습니다. 앉으시죠. 많이 당황하셨을 텐데. 저는 본부장 이장혁입니다."


민경사의 안내를 받고 들어선 사무실.  창가 끝에 그가 서서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런 그에게

" 안녕하세요. 오늘 너무 혼란스러운 일들이 있어서 정신을 못 차리겠네요."


" 충분히 공감합니다. 저희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요. 아직도 정부에서는 저희 부서의 존재를 부정할 만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오늘 보셨다시피 외계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위협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기에 대비를 해야 하는 것도 현실이죠. "


" 앉으시죠. 휘우 씨."

그의 안내를 받아 사무실 가운데 소파에 앉자 다소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손 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그런 내 손을 바라보던 민경사는 내 손을 살며시 잡더니


" 저보다 더 담담히 현장에서 지켜보며 저를 도와주셨어요. "


그런 민경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본부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민팀장은 그러니까 민경사로 알고 있는 서우 씨는 제가 미국에서 모셔왔습니다. 죽마고우 친구 딸이기도 하고 또 사안이 사안인지라 적임자가 이 친구 만한 사람이 없기도 했고요. 오늘 만난 박경장은 의식불명이 되어 더 이상은 대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곁에서 보시며 많이 놀라셨겠네요. "


" 의식불명이 된다는 말을 그냥 말로만 듣다 실제로 보니 어떻게 되어버리는지 알겠네요. 순간 너무 놀랐습니다. 마치 산 송장처럼 늘어지며 핏기가 사라져서..."


" 우선은 그 외계 생명체가 인간과 접촉을 통해 이동하는 건 확실하고 무엇보다 마지막에 민경사와 접촉이 있었지만 다행히 민경사가 의식을 잃거나 한 건 아니라서 괜찮으리라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몇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해서 부득이 저희 직원이 휘우씨를 댁까지 모셔다 드릴 겁니다. 너무 당황하지는 마시고 댁으로 잘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서 목격한 것은 잊어주시기 바랍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 아 아닙니다. 저도 처음 보는 광경이기는 해도 제가 도움은 못되어도 일단은 상황이 진정되었으니 저도 집으로 돌아가야죠. "

그때 민경사가 나를 바라보며,

" 이대로 숙소에 가실 수 있으시겠어요? 차라리 저희 집으로 가시죠. 저는 아마도 내일 아침이나 집으로 들어갈 듯한데. "


그러자 곁에서 듣고 있던  본부장이 말했다. 

" 아무래도 그냥 가시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오늘은 민경사 집에서 하루 주무시고 내일 민경사와 마저 이야기를 나누시는 게 나을 듯싶습니다. "


" 아 그래도 주인도 없는 집에 혼자 머무는 건 좀..."

무안해하는 나의 마음과 달리 내가 어떤 면에서 걱정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본부장은 말했다.


" 괜찮습니다. 그곳은 저희 직원들 안가로 얻은 곳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민경사 이외에 사람은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니  뭐 정 불편하시다면 그럼 민팀장과 같이 가셔서 주무시고 출근하시죠. 민팀장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나머지 절차는 내일 진행하도록 하죠. "

"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





어두운 현관에 먼저 들어선 민경사는 거실로 향하여 커튼을 걷었다. 창밖으로 밝게 들어오는 달빛에 비친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푸른빛을 띤 듯 깊고 진한 검은색으로 우수에 젖어 있었다. 

" 이렇게 허무하게 마무리되어 조금 속이 갑갑하네요. 달빛이라도 봐야 마음이 좀 풀려서요."


전혀 감정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너무 의외의 말들. 나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많이 속상하셨나 보네요. 그런데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보는데도 민경사님 눈동자는 진짜 검고 깊은 흑색이셨군요. 푸른빛을 띨 만큼. "


내가 그렇게 말하자 민경사는 순간 당황하며 거실의 불을 밝혔다. 

" 흠. 제 눈이 그랬나요? 한동안 거울 속 제 눈을 바로 바라보지 못해서 미처 몰랐네요. 제가 그런 눈을 가진 지도."


" 뭐 워낙 정신없이 지내셨으니 그럴만하죠. 하아~ 오늘은 정말 우리 집도 아닌데 집에 들어서니 왠지 집에 온 기분이 들면서 온몸이 늘어지네요. "


나는 그렇게 말하며 눈 부신 거실 등을 팔로 가리며 거실 소파에 늘어졌다. 그러자 민경사가


" 시원하게 샤워라도 하세요. 많이 긴장하셨을 텐데. 아참 저녁도 못 드셨죠?"

" 아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꼬르륵 대긴 하네요. 많이 신경 쓰였나 보네요. 죄송해요."

" 제가 죄송하죠. 좀 늦었기는 하지만 사워 하시는 동안 뭐라도 시켜둘게요. 아직 문 닫기 전이니."

" 그럼 저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자 민경사는 편의점에서 맥주와 흰 티, 야외용 수영복 반바지, 속옷을 사 와서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 옷을 받아 들고 혼자 껄껄껄 웃었다. 그러자 당황한 민경사가


" 죄송해요. 해변가다 보니 입을 만한 게 이런 거밖에 안 보여서..."

" 아뇨. 괜찮습니다. 뭐 수영복 바지... 올여름 피서를 안 갔더니 이렇게 옷으로 기분 내라는 건가 보네요. 하하. 그래도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네요. 잘 입겠습니다."


" 다른 곳은 다 닫아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미안해요. "

그때 벨이 울리며 배달 주문한 치킨이 도착해서 민경사가 받아 들고 왔다. 


" 그렇다면 오늘 일은 이 치맥으로 날려보시죠. "

그렇게 말하며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서는 시원하게 말아 내게 건넸다. 

나는 민경사가 건넨 소맥잔을 들고 시원하게 한 입에 털어놓고는

" 카아~ 오늘 무슨 일 있었나요? 도통 기억이 없는걸요? "


그러자 그제야 다소 긴장해 보이던 민경사는 웃음을 띠며,


" 다행이다. 이제야 한결 편안해 보이시네요. 그럼 저도 좀 씻고 올게요. "

그렇게 말하며 옷가지를 챙겨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그런 민경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혼자 소맥을 말아 또다시 연이어 원샷을 하고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 다리를 입에 물었다. 


' 뭐 별 다를 거 없는 삶인데. 내가 뭘 어찌 하겠어. 아무것도 아는 것도, 그렇다고 할 수도 없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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