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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Nov 25. 2019

체코의 집시 아이들

그해 여름, 런던을 다녀왔다. 개인적 공부도 하고 자료도 찾고, 파김치가 된 세상살이에 대해 생각도 좀 가다듬고... 이런저런 목적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5주동안의 여정 말미에 체코 프라하를 잠깐 들렀다. 사진 속 아이들은 프라하 인근 클라드노라는 작은 도시에서 만난 녀석들.



프라하로 돌아오는 기차 시간이 남았었다. 역사 건너편에 성근 플라타나스 숲이 보였다. 울창하지는 않지만 나무 그늘이 있었고 작은 벤치도 있어 건너가 보았다.  



숲 안쪽으로 초라한 3층 건물이 있고 그 앞에서 꼬마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카메라로 하늘을 찍고 나무를 찍고 벤치를 찍는데, 어느새 꼬마들이 다가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날 쳐다보는 것 아닌가. 털끝만큼 의심도 적의도 없는 웃음을 머금고. 그리고는 카메라가 신기한듯 손가락으로 자꾸 가르키는 것이다.
 
체코는 슬라브혈통의 체코족이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슬라브 혈통이 아니다. 어딘가 모르게 집시의 느낌이 강하다.

안쪽의 집은 다 허물어질듯 낡았다. 여러 집이 공동으로 거주하는 형태이다. 창문에는 빨래가 주렁주렁 걸려있고 머리를 길게 기른 (아이들 아빠로 보이는) 갈색 피부의 남자가 아예 웃통을 훌렁 벗고 문 앞에 누워있다.
  
아이들의 입성은 남루하다. 하지만 너무나 티없는 표정이다. 손짓발짓으로 "너희들 찍어줄까?"라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카메라 모니터에 찍힌 자기들 모습을 보여주니 깡총깡총 뛰면서 좋아한다.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김"이라고 말해주니 아이들 역시 스스로를 가르키며 이름을 말해준다. 발음이 잘 안들려 여러번 물었다. 그 중 한 아이의 이름이 스타쉬슬로바냐였던가....
 
숙소로 돌아와서 노트북 모니터에 사진을 확대시켜 본 후 나는 깜짝 놀랐다. 때묻은 옷을 입고, 입가에 음식 부스러기를 묻힌 아이들이 꼭 천사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라.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는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거꾸로 담겨있음을 발견한다. (사진을 확대시켜 보시기 바란다)



그럴 게다, 내가 아이들을 찍었지만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낯모르는 동양인 아저씨의 웃음이 생생히 찍힌 것이겠지.

장난치며 놀다보니 기차 시간이 임박했다. 헤어지면서 몇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이 움직이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손을 흔든다.
 
세 명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구석이 젖어온다. 애뜻함, 가련함, 따뜻함.... 이 감정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한 30분이나 되었을까 우연히 스쳐지나며 만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그 녀석들의 웃음이 지금 내 마음 속에 박혀있다. 화려한 보석은 아니지만, 햇살 아래 언제나 반짝이는 작은 사금파리처럼....
 
생각해보니 클라드노의 플라타나스 숲... 아이들과 만난 그 순간이 그해 여름의 여행 가운데 가장 빛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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