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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 Mar 04. 2016

그때는 맞고, 지금은... 모른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인가?

 여행이 1년을 훌쩍 넘은 시기에 쿠바에서 멕시코로 넘어갔었다. 1년이 넘는 장기여행은 맑은 하늘에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처럼 예상치 못한 슬럼프로 찾아왔고, 모두가 예찬을 했던 멕시코 여행은 낮게 깔린 안개로 가득한 새벽 4시 언저리의 가로등 조차 없는 어느 낯선 시골길을 한 걸음씩 힘겹게 걷는 느낌이었다. 멕시코 시티에서 2주간 머물며 모두가 방문한다던 인류학 박물관과 아메리카 최대 피라미드 유적지라는 떼오띠우아깐 조차 가지 않고 동네에서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여행 슬럼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런 여행을 하던 중 뚤룸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묶게 되었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들어가 방을 체크하고 흥정을 하고 짐을 풀고 침대에 널부러 졌다. 무더운 멕시코 날씨에 녹아버린 치즈처럼 침대와 하나가 되어갈 때쯤 벽면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learn from yesterday, live fortoday, hope for tomorrow'


 샤워를 하러 들어간 아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그 글을 보다 보니, 여러 생각들이 스멀스멀 또아리를 틀기 시작했고, 결국은 하나의 생각에 맞닿게 되었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왔던가?’


 여행을 떠나기 전까진 ‘과거를 기만하고, 오늘을 희생하며, 내일을 위해 사는 삶’을 살았었다. 그리고 10년 가까운 그 인고의 세월을 통해 내가 얻고자 했던 미래를 얻었는가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10년 전 어리석고 무지하며 가진 것 하나 없는 그 모습 그대로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 다짐을 했다.

오늘을 위해 사는 것이 무지한 인간으로 치부되고, 죄악시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34년을 지내 오면서 나는 무엇을 배웠으며, 지금 그 사회가 어떻게 흔들려 가는지를 보며 삶의 방향을 가다 듬고, 행복한 삶에 대한 진진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꿔본다.


 여행에 마침표를 찍고, 돌아와 내일의 희망을 위해 오늘에 집중하며 살아가려 노력하였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생각은 멕시코 뚤룸 게스트하우스에서 했던 생각과는 간극이 생겨 버렸다. 미래의 희망을 위해 미래의 대비 없이 현실에만 집중하는 게 과연 정답일까?


 주변 지인 중에 연기의 꿈을 않고 10여 년을 연기에 매진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 생계를 위해 연기를 포기하고 쇼호스트로 전업을 한 사람이 있다. 이것이 틀린 것인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확실하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얼마 전 하고자 하는 일들이 다 꼬이고 생각이 복잡해져 대학교 때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아마도 대화를 통한 위로가 필요해서였을 것이다. 어떻게 사는가부터 아이의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에 대한 이야기는 예상대로 이미 결정되어진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대화가 오가는 내내 힘이 없는 목소리의 친구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전화를 했는데, 내가 위로를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네. 힘내"

라는 말을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보면 이 질문은 태초에 맞고 틀림이 존재하지 않는 답이 없는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뚤룸에서 했던 것처럼 정답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을 찾아 그것을 깃발 삼아 나아가고 싶어 하는 것일지 모른다.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 나약해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에 혼란을 잠재워줄 강력한 하나의 정신적 기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틀린 것이 될 거란 걸 알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영화 제목처럼 되길 바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신 있는 소리를 진심의 바닥에서부터 울려 퍼지게 되길 바랬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모른다.”가 되어 버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신은 바람에 나부껴 언제 날아가 버릴지 모르는 잎사귀가 되어 버렸고, 진심은 바닥 깊숙이 감쳐 두기에 급급해져 버렸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은 모르겠다. 예전처럼 내일의 희망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달콤하고 이상적인 말을 지금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기엔 우리 모두 이 사회가 가진 성질이 너무 쓰다는 것을 오래전에 알아 버렸다. 그렇다고 현실과 타협하여,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에 사로 잡혀 현재를 연료 삼아 태워서 미래를 갈구하란 말 역시 못하겠다. 그건 국민연금이 우리의 노후를 보장해 준다고 적극 권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후회를 남기는 삶을 살지 말자' 뿐이다. 정말 구태의연하고 뻔한 이야기이지만, 이 짧은 한 문장에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니 비겁한 말일지라도 이 이상 적합한 말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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