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주관적이고, 이기적이며, 변덕스러운 마음. - 사랑 -
아내가 임신 8개월에 접어들었다. 한눈에도 멀리서 임산부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배가 나왔고, 요즘은 한껏 나온 배 때문에 뒤뚱뒤뚱 거리는 귀여운 걸음걸이를 선보이고 있다. 아내는 입덧으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매일 부은 다리와 태아의 격한 태동 때문에 밤에 잠을 설치며, 그로 인한 것인지 그와 상관없는 것인지 모를 쏟아지는 잠으로 인해 일상에선 멍한 상태가 지속되고, 잦은 호르몬 변화 때문에 이유 없는 눈물을 쏟을 때도 있다. 이것뿐만 아니라 임신을 함으로써 일상에 수많은 변화와 불편함을 동반하며 아내의 삶을 이리저리 휘저어 놓고 있지만, 아내는 단 한 번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10년간 보아온 아내의 모습 중 무언가를 이렇게 좋아하고 애정을 쏟는 건 처음 보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연애 초기의 아내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그런 아내가 가끔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폭풍에 휩싸일 때도 아이에 대한 원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냉정하게 말해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아직 우리에게 아무런 것도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에 불편함과 귀찮음을 주어주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아이가 생김으로써 삶이 더욱 윤택해지고 즐거워지며 행복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아이가 무언가를 우리에게 해주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끔 아내와의 다툼이 있는데, 그 다툼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원인은 아주 사소한 것이다. 하지만, 그 사소한 것에 기인하는 근본적 원인은 상대방에 대한 바람 혹은 기대 때문이다. 상대의 행동이 예상의 반경을 벗어나 일어날 경우 종종 실망과 짜증으로 번지고 감정에 다툼의 불꽃이 점화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기대를 품은 것은 스스로인데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고 상대방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참으로 이기적인 행동이 아닌가 싶다.
사랑에 있어 교만은 폭력이다.
당신이 주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스스로 믿는 순간
관계는 일그러지고 사랑은 변질되며 당신의 사랑은 곪아 갈 것이다.
사랑의 가치의 기준은 주는 자의 몫이 아닌 수용하는 이의 몫이다.
목숨을 바쳐 모든 것을 내 던진 들 받는 이가 그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거대한 만력이며, 유린일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만큼 주관적이고, 이기적이며, 변덕스러운 것도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2014년 9월 4일 – 자메이카(런던 이야기)
여행 중 겪은 아이와 부모의 관계에 대해 아내가 적은 글 (http://blog.naver.com/msclara/220112744527)을보고 떠올랐던 생각을 적은 글이다. 사랑의 주체는 사랑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받는 사람이기에 한없이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은 상대에게 요구가 생기고 바람이 생기는 순간 흔들림에 직면할 것이고, 흔들림은 실망을 끄집어내어 균열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꾸준히 자신의 의도에 따라와 주기를 바라고 자신에게 집중해 주기를 갈망한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처음 시작은 항상 상대에게 바라는 기대가 없다. 단지 사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랑하는 마음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다. 처음의 이 마음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람이 생겨나고 기대가 자라나 욕심으로 관계를 흔들어 버리는 것이다. 넓게 본다면 사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사람은 관계의 동물이다. 그러하기에 사람과 사람 관계 사이에는 주고받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 주고받는 것이 마음일 수도 있고, 개인의 이득일 수도 있으며, 자기만족 일 수도 있고, 대리만족 일 수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관계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는 것이 사람 간의 관계를 잘 보관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사람 간의 관계가 지속되고 그 사람과의 유대감이 쌓일수록 그 속에선 기대란 것이 자라나는데, 자신이 주는 것만큼, 혹은 스스로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일방적인 상대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고는 하는데, 이런 기대감이 생성되는 순간 관계의 균형은 흔들리기 시작하고 이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을 경우 관계는 균열이 생기고 그 사이에서 일그러짐이 발생하게 되며, 이로 인해 관계는 상하게 된다.
항상 정답은 찾기 어려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다. 찾으려 만 한다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이상하게 눈앞에 있는 것을 두고 멀리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눈앞에 마주 앉은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고 그 사람의 배경이나, 자신의 욕심에 초점을 가져간다면 당연히 눈앞에 있는 사람은 흐려지고 말 것이다. 반대로 눈앞에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그 사람이 가진 뒷 배경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흐려질 것이고 그 사람만이 또렷하게 눈앞에 남게 될 것이다.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 이것이 사람 간 관계의 첫 번째이자 기본이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 기본이 되는 다른 하나는 '진심'이다. 사람의 마음은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아닌 종이의 재질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라는 종이에 쌓여 담겨있는 진심은 처음에는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베어져 나온다. 누구는 A4용지의 재질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이는 한지의 재질, 마분지의 재질을 가지고 있어 마음이 들어 나는 데는 각자 개인의 차가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재질을 가지고 있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종이에 베어 진심은 묻어나게 되어있다. 그렇기에 진심을 거짓으로 포장하는 어리석은 행동만큼 관계를 망가트리는 행동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다. 사람 간의 관계가 깊어지면 간혹 상대를 자신화 시키려는 우를 종종 범하기도 하는데, 모든 결정과 사고의 중심의 주체가 자신이 되며, 상대방도 당연히 자신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상대방이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바꾸어 자기와 동일화시키려는 행동을 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하고 화를 내고 달래 보아도 사람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이기에 그 사람을 바꾸고 싶어 하는 당사자는 결국 상대방을 포기하고 만다.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보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하면 되는 일을 어렵게 굳이 바꾸려 노력하다 실망으로 이어지고 결국 인연의 끈을 스스로 잘라 버리는 것이다. 결국 상대방보다 당사자의 바꾸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소중한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위의 기본을 지켜나간다면 사람 간 관계의 보관에는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이상을 일상에 구현해내는 능력과 그것의 연속성을 잃지 않고 지켜 나가는 것이다. 알고 있는 것을 간과하지 않고 실천하는 능력. 그리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 이것이 당신과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이자 노력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적어도 지금 나에겐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