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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헌 Dec 01. 2018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사랑과 이별의 방정식-

어른들도 모르는 사랑의 비밀

책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대화 주제 - 사랑의 조건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하고 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소재로 글을 구성했습니다.



사랑의 방정식


사랑에 빠지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의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첫눈에 반하는 것만큼 낭만적인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뭔가 운명처럼 느껴지니까요. 책에서의 '나'가 클로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매력적이게 느껴지는 까닭은 우리의 대부분이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경험하는 운명적인 사랑을 왜 누군가는 경험하지 못하는지, 사랑은 모두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찾아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모아서 방정식을 만들어 본다면 그 안에는 어떤 변수들이 들어가게 될까요? 능력, 외모, 성격 등 다양한 조건들이 나오지만 명확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게다가, 첫눈에 반하는 사랑의 방정식의 해는 더더욱 찾기 어려울 것 같고요.



어떤 때에는 사랑이란 것이 실제로 하는 것보다 이야기하는 게 더 어려울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 성민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사랑을 읽을 수 있는 형태로 '가시화'한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주변의 그 누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물어보아도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을 언어로써 개념화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한 번쯤 정리해 놓아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인생에 있어서 반드시 출제되는 '시험 문제'니까요. 사랑을 공식화한다는 것이 탐탁지 않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정답도 없고 공식도 분명하지 않은, 이 사랑이란 것을 우리가 사유해야 하는 까닭은 사랑의 방정식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유하는 과정 속에서 얻어지는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 우리를 좋은 사랑으로 이끌 것이라 믿습니다.


한편, 사랑을 하는 것보다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정말 많은 변수가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쪽으로만 생각하다가는 쉽사리 잘못된 답을 내리게 되니까요. 그런 점에서 클로이가 '나'를 배신한 사건은 '나'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화가 나는 사건이지만, 클로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도덕적인 입장에서 그녀를 비판할 수 있겠지요. 사랑의 방정식에서 도덕도 변수가 되기는 하지만 유일한 변수는 아닙니다. 설령 그것이 비도덕적인 행위일지라도 사랑의 방정식에서는 허용이 되는 것이지요.


사랑이 막상 시작되면 이성적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남의 사랑은 답이 보이는데 내 사랑은 답이 안 보이는 까닭이지요. 사랑의 주체가 되고 당사자가 되는 순간 우리는 모두 '바보'가 됩니다. 바보가 되는 것이 사랑을 하는데 아주 중요하고 좋은 요소긴 하지만 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끔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성적'일 수 있을 때 사유하고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론이 중요한 이유가 실재하는 사건에 대해 용이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면 사랑도 예외가 되진 않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을 사유해야 하는 까닭이고 자신만의 사랑의 방정식을 찾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별의 방정식



너무 사랑해서 불안해질 때도 있어요. 이렇게 사랑하다가 제가 상처 받으면 어쩌지 하고 말이에요. - 하늘



사랑을 할 때면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별이 아닐까 합니다. 이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때야 할까요? 사랑을 하게 되면 그런 생각을 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삶이 죽음을 멀리하듯 사랑이 이별을 멀리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삶 속에 죽음이 녹아 있듯 사랑 속에 이별이 녹아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인정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사랑에 최선을 다해보는 겁니다. 결말이 좋아야 해피엔딩이 아니라 사랑하는 그 과정 자체를 해피엔딩으로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사랑을 사유하는 또 다른 방식은 이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을 하는 순간조차 우리는 불안해합니다. 이별에 대한 생각이 불현듯 찾아오니까요. 이러한 불안이 때때로 현재의 사랑을 흔들기도 합니다. 이별은 미래의 것이고 사랑은 현재의 것인데 오지도 않은 미래가 현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랑의 또 다른 아이러니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별을 하게 될까요?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사소하듯이 이별을 하게 되는 이유도 사소한 것 같아요. - 종헌



그 또는 그녀의 특별한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질 때도 있지만 때로는 정말 사소한 것이 내 맘에 들어 사랑이 시작될 때가 있습니다. 사랑이 그렇듯 이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이별의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때로 정말 사소한 것, 지나고 나면 별게 아닌 것이 이별을 가져다주기도 하지요. 사랑을 시작하는 수많은 이유가 있듯 이별을 하게 되는 수많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별의 방정식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물론, 이별의 방정식을 찾는다고 해서 이별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태도가 우리의 사랑을 더 지속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랑과 이별의 방정식



우리가 사랑에 객관적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그 당사자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남의 사랑에서는 그렇게 잘 보이는 것들이 내 사랑에 있어서는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감정이 결부된 문제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아니지만 내 마음은 그게 아닌 것이죠. 이별을 고해야 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감정은 그러지 않길 원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나쁜 사랑을 계속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가 사랑을 사유하면서 중점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사랑의 지속성에 관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좋은 사랑을 계속해서 해갈지, 혹은 나쁜 사랑을 어떻게 끝내야만 하는지에 대한 문제 말입니다.



사랑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좋은 것을 해주는 것보다 때로는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어요. -강연



사랑에 대한 지속성을 논할 때 우리는 '매력'과 '상호작용'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그 사람에게 좋게 보일지, 또 어떤 방식으로 그 사람과 소통할지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는 대개 좋은 것을 해주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방향이 아니라요. 사랑과 이별의 방정식을 통합해 본다면 사랑을 지속하고 이별을 멀리하는 정말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자기가 하고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 행동이 습관이 되어버렸다면 더더욱 말이지요.


사랑과 이별은 우리의 인생에서 너무나도 자주 출제되는 시험 문제기 때문에 반드시 한 번쯤은 사유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마주하게 될 테니까요. 그 방정식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답을 찾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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