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출퇴근을 할까. 아마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닐까. 적어도 나는 돈 때문에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자유 의지로 정한 가치 있는 목표란 무엇일까. 아마 흔히 말하는 ‘꿈’이라는 게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내겐 꿈이 없었다.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꿈이란 정말 재능 넘치는 사람들이나 꾸는 것이지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라 여겼다. 그 외에는 현실감각 없는 사람들이나 쫓는 게 꿈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적당히 만족하는 수입으로, 적당히 취미생활이나 하며 살자고 생각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공장 교대 근무에 발을 들어놓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초등학생을 봤다. 아이는 장래희망이 뭐냐는 질문에 꿈은 없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나 하며 좋아하는 축구나 하면서 살고 싶다고 답했다. 문득 그 아이의 미래가 나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아이에게 꿈을 꾸라는 말이 하고 싶어졌다.
어른은 오래 살아남은 사람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기에 어린애처럼 마냥 놀지 않는다. 또한 크게 다치지 않으려 한다. 앞 뒤 가리지 않는 사랑에 빠져들기를 경계하게 되었으며, 꿈처럼 허황된 것에 휘둘리지 않기로 한다.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어른이 되기 위해 했던 일들은 대체로 가슴을 뛰지 않게 만들었다. 어쩌면 어른이 되는 일은 보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른이 되는 일은 중요하다. 그건 살고자 애쓰는 일이다. 동시에 가슴 뛰게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일이다.
빅터 프랭클이 말한 ‘스스로 정한 가치 있는 목표’란 그런 의미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현실적인 계획이 필요하므로 허황되지 않게 하고, 스스로가 정한 가치란 이상향을 쫓는다는 점에서 가슴 뛰게 만든다.
한동안 스스로 정한 가치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참고해 보고자 했다. 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을 썼다. 쓴 글이 조금씩 쌓였을 때 문득 책이 쓰고 싶어졌다. 그제야 나는 빅터 프랭클의 말이 보다 이해되는 듯했다.
어쩌면 스스로 정한 가치 있는 목표란 사랑에 빠지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가만히 기다리며 내 모든 것을 내던질 꿈이 생기길 바라는 일은 운명적인 사랑을 막연히 기다리는 행위와 별 반 다르지 않다. 한눈에 모든 걸 바칠 정도로 반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호감이 갈 때 상대방에 대해 좀 더 알아가려 애쓰다 보면 보다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스스로 정한 가치 있는 목표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됐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삶의 의미나 가치가 희미해졌을 때 사람은 죽어간다. 때문에 본능적으로 가슴 뛰는 일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무언가를 찾고, 사랑하는 사람을 갈구하며, 꿈을 꾸고자 한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출퇴근을 너무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으려 한다. 어쨌든 살기 위해 애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출근 한 시간 전 글을 쓰고 있다. 밥벌이와 전혀 상관없는 이 행위를 부질없는 짓으로 생각하지 않고자 한다. 역시 살기 위해 애쓰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