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퇴근 후 서울로 향하게 되었다. 글쓰기에 재미를 들리고, 책 한 권을 써보자는 목표가 생겨서였다. 동영상이 아닌 수업에 직접 참여하여 조언을 들어보고 싶었다. 곧바로 이곳저곳을 뒤져봤으나 당진에서 하는 글쓰기 강의는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찾다 못해 나는 서울까지 나서기로 했다.
수업은 하필 저녁시간. 나란 촌놈은 난생처음 서울의 퇴근 러시를 맛볼 수 있었다. 본래 내가 출퇴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남짓. 잠이 부족한 날은 20분 전에 일어나 세수만 대충 하고 부스스한 머리를 안전모로 가리며 길을 나서곤 한다. (출근하기 직전 잠이 제일 꿀맛 같다.) 그런 생활에 익숙한 탓인지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퇴근길이 적응되질 않았다. 서울 사람들은 역시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매일 같이 이런 생활을 하려면 자연스레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을 테지.
2시간이나 걸려 찾아간 강의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그곳엔 바쁜 직장 생활 와중에도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작가는 아닐지라도 자신의 내면을 진솔하게 글로 나타내고자 했다. 그 글을 자세히, 오래 바라보다 보니 모두 멋진 글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새삼 내 이야기를 출판해 보겠단 생각이 어리석게 여겨졌다. 세상엔 좋은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서울 도로 위 셀 수 없이 많은 자동차, 고개를 올려야 바라볼 수 있는 빌딩, 거기에 빽빽이 들어선 유리창. 각각의 공간에서 애쓰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 이야기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훌륭할 테다. 나는 내가 해변가의 모래 알갱이 하나처럼 여겨졌다. 딱히 빛나지도 않는 알갱이 하나.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꽤 급하다. 하고 있던 생각을 다 집어치우고 일단 일차적인 욕구를 해소하고자 화장실을 찾았다. 터미널로 향하는 길에 백화점이 보였다. 필히 화장실이 있겠지. 건물 안으로 후다닥 뛰어들어갔다.
볼 일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는데 화장실 앞에 걸려 있는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 앞에다 왜 이런 걸 걸어놨지.’
그것들을 바라보다 벽체에 걸린 모형 하나에 시선이 고정됐다. 들판에서 시원하게 볼 일을 보고 있는 캐릭터. 피식 웃음이 났다. 다들 시원하게 일 보라는 건가? 들판에서 거침없이 물줄기를 쏟아내는 모형이 어딘가 유쾌하게 보였다.
자리에 서서 바라보다가 나는 별안간 놀라고 말았다. 모형틀 구석에 조그맣게 쓰인 숫자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0’이 거의 내 월급만큼이나 붙어있는 대단한 숫자였다.
‘네가 이 가격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몸값. 그저 웃기게 바라본 모형이 이 정도로 가치가 있다니. 캐릭터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녀석은 나를 향해 오줌을 날리고 있었다. 그걸 처맞으며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바라봤다. 특색 없는 검은색 티 한 장, 어디서 묻었는지 모를 얼룩을 묻은 연청바지, 2년 정도 신어 너덜해지기 시작한 컨버스 한 짝. 어쩐지 부끄러워져 무릎에 얼룩을 손으로 슬쩍 가렸다. 터미널로 달려나갔다.
버스를 타고 오며 생각했다. 나는 초라하다. 게다가 겁쟁이다. 꿈을 꾸기도 전에 경쟁에서 패배하기를 두려워한다. 때문에 달아날 핑계를 만들곤 한다. 그러면서 시도조차 하지 않고 달아난 자신에게 비루함을 느낀다. 제멋대로 상처받는다.
당진 터미널에서 하차했다. 서울과 달리 비교적 고요했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쩐지 걷고 싶어 택시 정류소를 그냥 지나쳤다. 그대로 집까지 1시간 반 거리를 걸었다.
인적 드문 시골 도로. 중간중간 가로등은 근방만 잠시 비출 뿐 조금만 지나면 금세 다시 컴컴해진다.
‘가다가 들개라도 만나면 어떡하지.’
또다시 걱정이 슬금슬금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한참을 걸어온 상태. 되돌아가긴 늦은 상태였다.
인도가 따로 없는 길. 몸을 차도 끄트머리로 바짝 붙여 걸었다. 어두운 길 때문에 지나던 차가 나를 보지 못하고 쳐버릴까 염려되서였다. 조심히 길을 걷고 있는데 저 멀리 도로 한복판에 꿈틀대는 무언가가 보였다.
‘뭐지?’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가까이 다가서도 그 꿈틀이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세 마리의 새끼 고양이였다.
“야 여기 있으면 위험해.”
녀석들을 쫓아낼 요량으로 발걸음을 크게 굴렸다. 새끼 고양이들은 나를 피해 건너편 수풀로 우다다 달려 나갔다. 잠시 서서 수풀을 바라봤다. 영 다른 곳으로 향했는지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엔 새벽녘의 시원함, 바람을 타고 오는 풀벌레 소리, 유난히 밝은 달빛, 그리고 세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떠올리며 앞으로 향했다. 구태여 걸어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주변은 어둡고, 차도 끄트머리에서 홀로 걷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계속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어딘가로 향하는 일은 두렵지만 그 자체로 즐겁기도 하다. 택시를 타고 빠르게 가지 못하더라도, 설사 도착하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이건 퍼즐을 맞추는 일과 비슷하다.
그림 하나를 완성하고자 애쓰는 일은 고행인 동시에 즐거움이다. 내가 만족할만큼 애쓴다면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빠르지 않더라도 괜찮다. 어처피 완성의 기쁨은 아주 한 순간이다. 끝까지 제대로 맞춘다면 나의 노고를 기념하여 방 한 구석에 모셔다 놓고 또 다른 퍼즐을 집어들 테다. 중요한건 과정을 즐기는 일이지 않을까. 집으로 향하는 길에 고양이와 바람과 달빛을 느끼듯이 말이다. 나는 삶의 조각을 집어드는 일에 지나치게 겁먹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