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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Aug 25. 2021

병약한 나에게 권한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

  밤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저녁부터 시작된 두통이 점점 심해지더니 급기야 구토까지 하고 싶을 정도에 이르렀다. 내 두통이 어디 하루이틀 일인가 싶어 약도 먹지 않고 버티었는데 새벽에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부랴부랴 약을 찾았다. 약을 가지러 가는데 한 걸음 떼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5초면 닿을 거리가 1분은 족히 걸린 듯하다. 겨우겨우 약을 먹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머리는 깨질 듯 아파오고 속은 계속 메슥거린다. 


  다시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명치 끝이 꽉 막혀 돌덩이가 걸려 있는 느낌이다. 곧 쏟아낼 것 같은 기분에 쪼그려 앉아 변기통을 붙잡아 보지만 헛구역질만 수십번이다. 젠장. 이건 술이 떡이 되게 먹은 날이나 있는 현상인데. 오늘 저녁 직접 만든 육회가 있음에도 밥만 먹었는데 말이다. 술을 마셔줬어야 했나 싶은 미친 생각까지 든다.

 ‘내일은 어떤 글감으로 백백을 쓰지? 그래 이것을 써보자.’ 

 ‘내일 도서관 책 반납해야 하지. 어제까지었는데 비 오는 바람에 하루 연체했네.’ 

 ‘내일 아침엔 애들 떡국을 끓여 줘야겠다.’ 

  머리는 깨질 것 같은데 머리 속은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열일’중이다. 빌어먹을 두통. 

  

  그러고 보니 이렇게 심한 두통은 오랜만이다. 어릴 적부터 결혼 전까지 나는 정말 이틀에 한번 꼴로 두통을 달고 살았다. 두통약은 필통, 지갑, 가방 속 어디라도 있었다. 복통은 없었을까? 아빠 따라 인도네시아에 잠깐 살았는데   복통 때문에 조기 귀국한 나다. 생각해보면 나는 자주 아팠다. 머리가, 배가, 무릎이, 어깨가…… 부위만 달랐을 뿐 늘 아팠다. 다행히 심각한 병은 없었지만 늘 그렇게 골골 대는 아이였다. 


  결혼을 앞둔 나에게 엄마가 말씀하셨다. “신랑한테 어디 아프다 어디 아프다 자꾸 얘기하지 말아. 아프다는 소리 좋아할 사람 없어. 아프면 그냥 병원 가. 알았지?” 오죽 하면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 말 때문인지 결혼 후엔 좀 덜 아팠던 것 같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 뻗으라’고 했던가? 아프다고 징징거릴 엄마가 옆에 없어서일까? 어쨌거나 덜 아프니 무척 편했다. 아프면 성가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깜빡 잊고 지냈나 보다. 내가 병약한 사람인 것을. 작년 바디프로필 찍는다고 하루에 3~4시간씩 헬스장에 살더니 올해는 헬스장은 고사하고 공원도 뛰지를 않는다. 


  새벽 늦게야 다시 잠이 들었다. 아이들 등교만 아니었음 계속 자고 싶었다. 나의 무거운 머리와 메슥거리는 속은 안중에도 없다. 어제 밤 한 발짝도 떼기 힘들던 내 다리가 최적화된 주방 동선을 따라 재빨리 움직인다. 다리보다 더 빠른 손은 이미 식탁에 떡국은 아니지만 아침식사 준비를 마쳤다. ‘애들 학교 보내고 다시 자야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뿔싸! 오늘은 커피수업이 있는 날이다. 잠은 고사하고 빛의 속도로 집안일을 끝내 놓고 집을 나선다. 여전히 머리는 아프고 명치엔 돌덩이가 걸려있지만 오늘 하루도 일상을 살아냈다. 


  병약한 내 자아는 다짐한다. 내일 아침은 운동으로 시작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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