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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이 지나가다 Sep 30. 2015

32. 믿다

여기 저기서 하루가 시작되는 다채로운 소리들이 들러옵니다.

나는 그저 그 사람을 믿었어요, 오랫동안 그 사람은 내게 그런 사람이니까.


믿음의 화답이 늘 믿음은 아닙니다. 때론 믿음이 뼈아픈 상처로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간 그 사람은 나의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나는 그 사람의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그 사람뿐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등등 생각의 늪에서 길을 잃게 됩니다.


마음의 거리가 가까웠던 이일수록 마음은 더 아프고 미쳐갑니다. 무엇 하나 손에 제대로 잡히질 않고 고통은 계속될 것만 같고 출구는 보이지 않으며 이 시간이 이 상황이  계속될 것만 같습니다. 무기력한 나와 제대로 만나게 됩니다. 누구와도 쉽사리 만날 수 없으며 이야기조차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끝없이 망설이게 됩니다. 멍하니 상황 속에 던져진 나를 내버려 둘 뿐입니다.


혹 시간이 지나 수습이 될지라도 그 사람뿐 아니라 그 사람을 믿었던 나를 이해하거나 용서하는 건 쉽지가 않습니다.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아 나를 아프게 할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소중했던 사람을  잃어버렸으니까 말입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져 흔들거리며 타인에의 믿음 역시 예전과는 같지 않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시간이 내 안에 어떤 형태로 남겨져 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른 채 누군가들이 가득한 하루 속에 나는 여전히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들은 희미해질 뿐이지 원래부터 없던 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지나간 시간이 있기에 지금의 나 역시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지나간 시간 역시 안고 내일의 오늘로 함께 갑니다.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건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그때 묵묵히 나를 믿어줬던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에 그 늪과 같은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너만 너가 아니라 그때의 너조차 너였다고 그건 너의 한 조각일 뿐 그게 너의 전부는 아니라고 언제나 너는 너라고 말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함께 오래오래 오늘을 살았으면 합니다.


2015. 9. 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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