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걷는 오페라 #14 아름다운 시절
19세기 유럽은, 세계의 대륙과 바다를 유린한 제국주의 경쟁의 결과, 맹주가 된 영국의 시대였습니다. 1837년 왕위에 올라 1901년 1월 세상을 뜬 빅토리아 여왕은 유럽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이후, 유럽은 힘의 균형 상태를 유지하며 거의 1세기 동안 지금껏 볼 수 없었던 평화의 시대를 이어갑니다. 이 힘의 균형이 불러온 평화는 1914년에 발발한 1차 세계대전으로 막을 내립니다.
피를 흩뿌리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프랑스의 혁명은 나폴레옹 이후 다시 7월 혁명과 2월 혁명을 거쳐, 더디지만, 조금씩 안정되어 갑니다. 근대 국가의 형성이 뒤늦었던 독일과 이탈리아에도 통일과 독립을 열망하는 움직임이 이어집니다.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달은 지금까지의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전화, 무선통신, 철도, 자동차, 거대한 여객선, 비행기가 발명되어 인류가 꿈꾸던 신세계가 도래했음을 증명했습니다. 수세식 화장실이 등장해 위생과 보건에도 혁명적인 발전이 찾아왔죠.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가 열리며 근대의 완벽한 절정을 알렸습니다.
산업혁명이 불러온 대량생산, 자본의 편중, 극심한 빈부 격차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소불위 자본가의 무한 권력에 편입되어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노동자 계급이라는 구도가 만들어집니다. 농촌을 지탱하던 노동력은 도시로 가서 공장 노동자로서 삶을 이어갔습니다. 벨 에포크는 어디까지나 서구 열강의 자본가들에게나 어울리는 이름이었죠. 매일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공장 근처 공터에 이어 붙인 관짝 크기의 상자를 빌려서 간신히 잠을 청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아름다운 시절’ 따위는 없었습니다.
제국에 의한 식민지 수탈과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 수탈이 정점을 찍던 시기는 바로 카를 마르크스가 런던 영국박물관의 도서관에 앉아 자본론을 집필하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노동’의 수난을 타계하고 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보호하기 위해 넓은 스펙트럼의 사회주의적 전망이 나타나고 정치세력화하던 시기입니다.
규방의 여성으로부터 서프러제트까지
1838년 이후 영국에서 벌어진 차티스트 운동은 노동자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하는 보통 선거의 원칙으로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했습니다. 보통 선거, 비밀 선거, 재산에 따른 피선거권 부여 폐지 같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원칙들이 처음으로 의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차티스트 운동에 이르러서도 모든 정치적 권리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18세기를 거쳐 19세기의 중반에 이르러서도 여성은, 적어도 유럽 여성은 가정에서 현모양처로서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성은 규방에 앉아 교양으로서 음악과 인문학을 공부할지언정 직업으로 추구하는 것은 금지당했습니다. 피아노는 연주할 수 있어야 하지만, 피아니스트로 사는 삶은 암묵적으로 금지당했죠. 가사노동은 여성의 노동이 되었고, 가난한 집안의 여성들은 ‘비공식적’으로 온갖 하급 노동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현실은 이미 가정을 벗어난 영역에서의 여성 노동, 상업 분야와 공장에서의 여성 노동이 일반화되고 있었음에도 여성의 노동은 그림자처럼 사회적으로 인식되지 못했습니다.
1845년 안데르센이 쓴 동화 ‘성냥팔이 소녀’가 백린 성냥공장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학설은 상당히 신빙성 있는 주장입니다. 성냥공장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보호 장비도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으로 백린에 중독되어 증상이 나타나면 급여 대신 성냥 몇 통을 지어주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벌어지면서 추운 겨울에 성냥을 파는 소녀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는 주장이죠. 백린에 중독되면 원인도 모른 채 아래턱이 녹아내리는 증상으로 고통을 겪다가 죽어갔습니다. 아직 백린 중독의 위험도 알려지지 않은 시점이었죠. 백린 사용은 1888년 공장에서 일하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거센 노동 쟁의 끝에서야 간신히 금지됩니다.
영국 사회에서 여성이 그림자 노동을 자각해 나가는 한편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직화된 노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영국이 산업화에서 앞서간 만큼 산업화로 인한 부작용과 이에 대한 반작용 역시 더 빠르고 거세게 진행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853년 베르디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선보인 지 5년 뒤인 1858년 영국 서프러제트 운동의 대모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태어납니다. 인권운동가이자 ‘서프러제트’라 불린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끌어간 에멀린은 이미 14세 때부터 참정권 운동에 참석했다고 전해집니다.
에멀린의 방식은 굽힘 없이 급진적이었습니다. 그는 돌을 들어 귀족과 자본가들이 드나드는 고급 상점가의 유리창을 박살 내곤 했죠. 누구나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음은 확실합니다. 덕분에 수없이 경찰에 끌려가는 사진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변호사 남편과 함께 평생 여성 참정권을 위해 살았지만, 1928년 레이디 에멀린이 세상을 떠난 직후에야 영국에서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이 부여됩니다.
직업인으로 사는 삶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까지 사회인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여성들의 자각은 그들의 삶을 차츰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결혼으로 신분을 쟁취하는 삶, 규방 안에서만 허용되는 삶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깨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직업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은 아니었죠. 중산층 여성은 교사나 간호사가 될 수 있는 정도에 머물렀고, 하층 계급의 여성들은 공장 노동자로 편입되었습니다. 서프러제트 운동을 통해 여성들은 계급과 나이, 인종을 초월한 연대라는 귀중한 경험을 얻었습니다. 19세기의 후반이 되면 예술계에서도 수잔 발라동 같은 전업 화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1차 세계대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서구사회에서 여성의 그림자 노동이 처음으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성 노동자들이 비운 자리를 여성 노동자가 채우는 모습을 학습한 사회는 더 이상 여성 노동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었죠. 그제야 여성의 권리, 참정권, 재산권 등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길고 긴 여정을 거치며 여성 자신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한 이후에야 사회는 모두의 권리를 인정할 수 있는 역량을 비로소 갖추게 되었습니다. 여성의 말, 생각, 노동, 참정권이 비로소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 ‘아름다운 시절’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