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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커 Oct 09. 2023

유리 동물원에서 만나요

뒤로 걷는 오페라 #15 오페라 '나비부인'

  푸치니는 영리한 작곡가입니다. 오페라의 클라이맥스라 부를 만한 장면에 간신히 알아들을 정도의 톤으로 허밍을 배치하는 배짱은 벨칸토 시대의 작곡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면모죠. 합창의 힘을 마음껏 발휘한 베르디의 음악 세계에서도 저 소리죽인 허밍이 합창을 이루는 발상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양식으로,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선율을 극도의 클라이맥스에 배치한 작곡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명장면입니다.


  하지만 그 선율의 비밀을, 맥락을 알게 되는 순간, 예술적인 감각을 넘어선 깊은 슬픔, 비애가 찾아옵니다. 문득, 테네시 윌리엄스의 놀라운 대본 ‘유리 동물원’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각. 한 사람의 상상 속 욕망이 모난 현실 세계의 프리즘으로 비추어질 때, 서툰 욕망이 문득 벌거벗겨져 초라하게 현실의 시선 앞에 던져졌을 때, 느껴질 만한 한기가 그 속에 있습니다. 1904년, 20세기의 벽두에 푸치니는 나가사키 항구에서 낮은 슬픔의 소리를 발견했거나 발견했다고 여겼을 듯합니다.


   ‘뒤로 걷는 오페라’ 이야기를 여기서 멈추면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초초씨는 유리 동물원에서 걸어 나왔을까요? 죽음은 그에게 자유를 주었을까요? 우리들의 마지막 이야기는 초초씨에 대한 것입니다.    

          

호기심과 고양이, 쥴리어스 아담, 19C


  일본, 나가사키, 그리고 오리엔탈리즘          


  오페라 ‘나비부인’은 실은 좋아하기 어려운 오페라입니다. 적어도 동북아시아를 살아가는 동양인으로서는, 그럴 수 있죠.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미국인의 현지처가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도 자기 안의 세계에서 진정한 결혼의 서약을 지키기 위해 애쓰다 생명을 버리는 모습을 서양인의 관점에서 그려낸 작품에 호감이 갈 리 없었습니다.


  굳이 애써 들여다보지 않아도, 이국적인 일본풍을 애호하던 19세기 중후반, 20세기 초 서양인들의 취향이 읽히는 작품입니다. 당대 유럽의 지식인, 예술인 사이에서 일본풍에 대한 애호는 일종의 세련된 감각의 전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취향은 대체로 동양 문화와 동양 사람들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별 고민 없이 범벅된 서양 지식인들의 ‘오리엔탈리즘’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탁자에 앉은 여성과 나비를 쫓는 흰 고양이, 우타가와 쿠니요시, 19C


  차별의 중첩     


  ‘동양’하고도, ‘여성’에 대한 그네들의 시선은 각별히 왜곡되어, 거의 ‘차별의 중첩’이라고 부를 만한 인식이 자주 드러납니다. 21세기에도 오해 어린 시선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고, 소담하고, 소극적이고,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들어주는, 순종적인데 심지어 관능적이기까지 한 동양 여성에 대한 그릇된 신화가 아직도 살아있을지 모릅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인종에 대한 편견, 여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은 조금은 두려울 정도로 강력하게 뿌리 박혀 있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을 예감하고 느낀 불유쾌함은, 개화기의 일본 정부가 미국인 장교에게 제공한 집에서 함께 살게 된 일본인 여성의 출산, 결혼에 대한 헛된 환상, 부질없는 순종과 기다림, 죽음의 선택이라는 이야기의 전형적인 비극성으로 또 한 번,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며 오랫동안 거리를 둔 오페라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서구 오페라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한 요소로서 푸치니 자신이 선택한 마케팅 포인트임을 생각한다면 더욱 할 말이 없어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세계에 엄연히 존재했던 어떤 폭력을 깨달으며, 허밍 코러스의 불가해한 힘으로, 음악의 불가해한 힘으로 다시 돌아보는 ‘나비부인’은 역설적인 설득력을  가진 오페라임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당시 일본 여성들의 삶에 대해, 그 비극적인 환경에 대해 우리가 조금은 관심을 두게 만드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다시금 나비부인의 주인공 초초씨에게 대단히 미안해집니다. 그 삶을 상자 한쪽에 넣어두고 잊어서는 곤란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요.      


리보른 항구, 마리오 푸치니

   

  이탈리아의 라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오페라 ‘나비부인’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일본풍을 과감히 들여온 선율, 무대, 의상은 청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았고, 일본인들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가차 없는 비하 표현들은 그네들이 보기에도 지나쳐 보였나 봅니다. 비하 표현들을 다소 삭제하고, 지루한 2막을 3막으로 나누고, 등장인물도 많이 줄여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올린 후에야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아리아는 아마도 허밍 코러스가 아닐까 합니다만, 2막 1장에서 초초씨가 떠난 핀커튼을 그리며 부르는 아리아, ‘어느 맑은 날’의 가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Madam Butterfly     


Un bel dì, vedremo

levarsi un fil di fumo

sull'estremo confin del mare.

E poi la nave appare.

Poi la nave bianca

entra nel porto,

romba il suo saluto.     

Vedi? È venuto!

Io non gli scendo incontro. Io no.

Mi metto là sul ciglio del colle e aspetto,

e aspetto gran tempo

e non mi pesa,

la lunga attesa.     

E uscito dalla folla cittadina,

un uomo, un picciol punto

s'avvia per la collina.

Chi sarà? chi sarà?

E come sarà giunto

che dirà? che dirà?

Chiamerà Butterfly dalla lontana.

Io senza dar risposta

me ne starò nascosta

un po' per celia

e un po' per non morire

al primo incontro;

ed egli alquanto in pena

chiamerà, chiamerà:

"Piccina mogliettina,

olezzo di verbena"

i nomi che mi dava al suo venire.

(a Suzuki)

Tutto questo avverrà,

te lo prometto.

Tienti la tua paura,

io con sicura fede l'aspetto.     


나비 부인     


어느 화창한 날, 우리는 볼 거예요.

바다 끝자락으로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그리고 배가 나타나죠.

하얀 배가

항구에 들어와

포효하며 인사하죠.     

봤지, 그가 왔어!

나는 그를 만나러 내려가지 않아요.

언덕 가장자리에 서서 기다리죠,

한참을 기다려도

상관없어요.

긴 기다림도 견뎌야 합니다.     

도시의 군중 속에서

한 남자의 작은 점이

언덕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어떻게 올까요?

무슨 말을 할까요? 무슨 말을 할까요?

그는 멀리서 나비를 부르겠죠.

나는 대답하지 않고

숨어 있을 거예요.

조금은 보이지 않게

죽지 않게

첫 만남에서...

그는 약간의 고통으로

전화하겠죠, 전화할 거예요.

"나의 작은 아내,

버베나 향기"

그가 올 때 나에게 줄 이름.

(스즈키에게)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겠죠,

약속할게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확실한 믿음으로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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