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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커 Oct 08. 2023

지금, 길을 잃은 사람

뒤고 걷는 오페라 #13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페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 낭만주의의 아름다운 이상과 거칠 것 없는 열정이 세상을 물들였던 시절, 오페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슬프고 처연한 세계를 그려냈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를 낭만주의의 틀 안에서 이해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지요. 그 자신이 하나의 사조이자 새로운 장르의 창조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주의 오페라 베리즈모의 물결이 아직 도달하지 않은 곳에 자신 만의 세계를 구현했습니다.               


나폴레옹 황제의 초상, 프랑소아 제라르, 1805~1815


  그가 태어난 1813년은 유럽을 뒤엎은 나폴레옹이 러시아 침공의 실패를 끝으로 어느덧 그 세를 다하여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시점이었죠. 바로 그해 1813년에 나폴레옹은 엘바섬으로 유배됩니다. 프랑스는 다시 왕정으로 복귀하고, 1815년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패배한 뒤 열린 빈회의를 통해 유럽은 재구성됩니다. 근대 유럽의 지도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입니다.     


나폴레옹의 군대로부터 공격당하는 코사크 기병, 장 밥티스트 에두와르 드테유


  르네상스 이후의 이탈리아는 200년 이상 외세의 지배를 겪게 됩니다. 1815년이 되어서야 통일된 국가로서 독립을 이루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지요. 독립운동 역시 이후 50년 이상의 지난한 과정을 겪게 됩니다. 베르디가 태어난 시점은 바로 이렇게 이탈리아가 독립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는 시점이었습니다. 그의 초기 오페라들이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이탈리아인들의 애국심을 대변하는 작품들이었던 배경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요.


  그의 작품들이 드디어 ‘인간’을 주제로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게 된 것은 1850년 이후의 일입니다. 1850년 리골레토, 1853년 일 트로바토레, 1853년 라 트라비아타, 1871년 아이다, 1887년 오델로, 1893년 팔스타프 같은 작품들이 발표됩니다.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분들이 많을 듯하네요. 그의 오페라 작품 대부분이 비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서슬 퍼런 비극적인 상황에 놓인 이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느끼고, 절망하거나 감당하는지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오페라 속 합창을 통해 인간으로서 서로에 대한 깊은 탄식과 공감을 표현합니다. 연극적인 장치들로 극의 개연성과 완성도를 높이고, 오케스트레이션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오페라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말엽의 작품인 팔스타프가 오페라 부파인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역시 코미디는 비극의 최상급이 아닐까, 또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이탈리아, 필립 베이트, 1834~1836


  라 트라비아타, 길을 잃은 사람  

    

  알렉산드로 뒤마의 ‘춘희 La Dame aux Camélias’를 원작으로 1853년 베르디가 발표한 오페라가 바로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입니다. 원작은 알렉산드르 뒤마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뒤마가 사랑한 여성은 코티잔(courtesan)이었지요. 코티잔을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상류층을 상대하는 매춘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귀족 가문의 자제라고 해도 가문이 몰락하거나 사정이 있어 결혼하지 못한 여성들은 19세기의 유럽 사회에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살아갈 방법이 없었던 까닭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당시의 사교계를 통해 성매매의 길로 들어서기 쉬웠습니다. 부유한 신사의 애인이 되어 후원을 받으며 예술적인 재능을 펼치는 경우도 많았죠.                              


트라비아타, 가봉 막스, 19C


  관계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고 합니다만, 상류층의 사교계에서 코티잔으로 살아가는 것이 겉모습은 화려할지 몰라도 거리의 삶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었죠. 많은 여성이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살아가며 질병과 사고, 폭력에 희생당했습니다. 결핵은 당시 이들을 괴롭히던 대표적인 질병입니다. 뒤마의 연인 ‘마리’도,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도 결핵에 희생됩니다.


  피할 수 없는 가난으로 당대 사람들이 규정한 정상적인 궤도의 삶을 벗어난 이들,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 즉, 궤도를 벗어난 사람, 길을 잃은 사람, 타락한 사람이라는 제목은 이들의 지난한 삶에 들아가 그 삶에 공명하려는 작품의 지향성을 잘 보여줍니다. 적어도 뒤마의 ‘동백꽃 아가씨’라는 원제보다는 더 깊이 있게, 인간에 대한 통찰을 품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 우리가 살펴볼 장면 아리아는 바로 ‘프로벤차 고향의 하늘과 땅 Di provenza il mar il suol’입니다. 코티잔을 대하는 시대의 편견 어린 시선과 자애로운 아버지의 사랑이 교차하는 곡입니다. 바리톤을 위한 대표적인 오페라 아리아라고 말할 수 있는 이죠.            

       


  사랑의 두 얼굴     


  ‘프로벤차 고향의 하늘과 땅’은 아버지 제르몽이 아들 알프레도에게 전하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문제는 그 사랑이 한 사람의 희생을, 아들의 연인 비올레타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죠. 제르몽은 코티잔과 사랑에 빠져 동거 중인 아들 몰래, 아들의 연인 비올레타를 찾아갑니다. 식상한 협박과 아들의 미래를 생각해 달라는 호소 끝에 비올레타를 떠나게 하는 데 성공합니다. 비올레타는 부러 알프레도에게 매정한 이별을 고해, 그를 분노로 들끓게 만들고, 결국 알프레도의 온갖 모욕적인 폭력을 감수하며 쓸쓸히 죽어가게 됩니다.


  1970년대를 전후해 우리나라에서 수없이 만들어진 영화들, 거리의 여성들을 그린 영화들의 원형 같은 줄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100년이 넘게 지난 뒤에도 지구 위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들이 되풀이되고 있었다는 것을 뒤마나 베르디가 예상했을지 궁금해집니다.


  돌아가자, 고향의 하늘과 땅으로      


  제르몽의 아리아는 비올레타가 갑자기 알프레도를 떠난 뒤, 깊은 배신감과 상심에 빠져든 아들에게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으로 이제 그만 파리를 떠나, 행복했던 옛날로, 고향의 아름다운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자고 회유하는 노래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책략을 감추고 아들을 위해 노래합니다.     


GERMONT


Di Provenzailmar, ilsuol

chi dal corticancello?

Al natiofulgentesol  

qual destinotifuro'?

Oh, rammentapurnelduol

ch'ivigioiaa tebrillo';

E chepace cola' sol  

sutesplendereancorpuo'.

Diomi guido'!

Ah! iltuovecchiogenitor  

tunon saiquantosoffri'

Telontano, di squallor

ilsuotettosicopri'

Ma se alfin titrovoancor,  

se in me spemenon falli',

Se la voce dell'onor

in teappiennon ammuti',

Diom'esaudi'! (abbracciandolo)     


제르몽


프로벤차의 바다와 땅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니?

고향의 타오르는 태양

너에게 어떤 운명이 닥친 걸까?

오, 슬픔 속에서 되새겨 보렴.

너의 마음속에 기쁨이 빛났던 것을

평화로운 태양이

여전히 너를 찬란하게 비출 거야.

신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지!

아, 네 늙은 아버지

그의 고통을 너는 모르겠지.

멀리 떨어져 불결해진 너.

고향집 지붕은 기다림에 지쳐 덮여있지.

그러나 마침내 내가 너를 찾으면,

내 안의 희망이 실패하지 않는다면,

명예의 목소리,

신 안에서 나는 침묵하지 않으리

주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리라!

(그를 껴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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