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우리는 18세기 유럽, ‘시민의 힘’이 역사의 장에 도달한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여기 혁명의 순간을 숨 쉬며, 시대를 뛰어넘어 불멸의 선율을 펼쳐낸 한 사람을 만납니다. 불꽃같은 삶, 바로 그 자체였던 한 사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입니다. 살아간 모든 순간에 머릿속 가득 담긴 음악적 상상력을 악보 위로 쉼 없이 쏟아냈음에도 음표를 그리는 손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천재의 삶을 살다 간 사람이죠.
모차르트와 린리, 작가 미상, 1770
대체로 그를 어린 나이에 연주와 작곡에 재능을 보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사라진 천재로 기억하지만, 혁명의 시대를 들뜨게 한 열망과 시대의 변화에 대한 기대, 박제된 엄숙주의를 본능적으로 거부한 시대의 인간이었음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무엇보다 작품 안에서 이러한 기질은 면면히 드러나고 있지요. 교향곡, 협주곡 등의 기악곡들에서 보여준 음악적 혁신도 그러하지만, 언어로 전달되는 ‘이야기’를 통해, 당대의 사회적 인식, 세계관을 올곧이 드러내는 오페라에 이르러서는, 새로움,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그의 민감성을 더욱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 초상화, 크로체, 1780~1781
흔히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시 판 투테, 마술 피리’를 모차르트의 4대 오페라라고 말합니다. 거장의 작품들을 저널리즘의 관점으로 순위 매김하고, 재단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이 네 작품의 완성도, 음악사적 의미, 더 나가 사회문화적인 영향도를 고려한다면 대표작으로서 상찬 하지 않을 수 없겠죠. 네 작품 모두 코믹 오페라, ‘오페라 부파’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명작들입니다.
모차르트는 엄숙주의의 한계를 깨부수는 웃음의 힘을 정확히 짚어냈던 듯합니다. 기존의 권력 체제, 기득권의 압제를 단 한 순간에 녹여버릴 호탕한 웃음, 때로는 냉소적인 웃음의 장치들이 작품 안에 수없이 등장합니다. 현실을 비틀고, 과장해 드러내는 장치들이죠. 우아하고 위대한 영웅주의를 뒤로한 채, 일상의 한복판을 무대 위로 끌어들여 미시적인 세상의 일상적 부조리가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집니다. 이번 장에서는 바로 이렇게 현실을 증폭해서 비틀어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 ‘돈 조반니’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돈 조반니로 분한 가수 조반니 마리오, 1850
신을 배반한 탕아, 돈 조반니
‘돈 조반니의 어긋난 모험과 멸망', 만약 이 작품에 부제를 붙인다면 이런 제목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여성을 오로지 성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희대의 바람둥이 '돈 조반니'는 오페라의 마지막 장에서 '기사장'의 참회 요청을 세 번이나 단칼에 거절합니다. '기사장'은 돈 조반니가 유혹을 시도했던 돈나 안나의 아버지로 돈 조반니와 결투 중에 죽음을 맞이한 인물입니다. 이 결투 역시 돈나 안나의 명예를 위한 것이었죠.
마지막 장면 속 기사장(Commendatore)은 마치 지옥에서 돌아와 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자, 죄를 묻고 판단하는 심판자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며 등장합니다. 기사장의 배경으로 바리톤들의 거대한 합창이 무대 위 돈 조반니와 무대 밖 관객에게 삶과 죄에 대해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돈 조반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의 목소리에 대항하며 신의 재단을 거부합니다.
기사장의 존재를 모차르트 자신의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은유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양가감정, 그 귄위를 부정해 보지만,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위력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게 되는 존재에 대한 양가감정이 돈 조반니의 반응과 행동으로 오페라 속에 드러나 있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권위는 프로이트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슈퍼에고, 내 안의 판단자, 신적 존재에 대한 알레고리로 확대해서 해석할 수도 있겠죠.
신적 존재의 심판대 앞에 서서 조차 불복하지 않고 결국 지옥의 불길 속에 던져지는 돈 조반니의 모습을 단순히 권선징악의 구도 안에서 읽어낼 수 있을까요? 기존의 모든 권위를 뒤엎고자 하는 욕망, 죄를 재단하는 세상에 대한 거센 불복종을 읽어내게 되는 장면입니다.
돈 조반니로 분한 가수 프란시스코 당드라데, 막스 슬레복트, 1912
인간의 범주 밖 존재, 여성
중세적 세계관, 신적 권위에 도전하는 18세기 계몽주의적 '인간'의 범주 안에 여성의 존재는 포함되어 있을까요? 여성은 왜 죄의 피해자로서, 대상으로서의 존재로 남게 되었을까요? 오페라 돈 조반니에는 조반니의 악행을 과장해서 드러내는 장치들이 많습니다. 돈 조반니의 거짓 유혹의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하인이 부르는 아리아 '카탈로그의 노래'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게 됩니다. 나라별로 돈 조반니가 유혹한 여성의 숫자를 열거하는 이 노래는 극한에 다다른 냉소주의의 산물로도 읽을 수 있겠으나, 극한에 다다른 여성에 대한 대상화의 산물로도 읽힙니다.
돈 조반니 속 수많은 명곡 중, 기괴할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 아이들을 위한 동요처럼 맑은 선율의 아리아를 여기 소개합니다. ‘내 손을 잡아요(Là ci darem la mano)’라는 곡입니다. 돈 조반니가 농촌 마을에 숨어들어 약혼자가 있는, 마을의 순박한 처녀 ‘체를리나’를 유혹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이중창입니다. 조반니는 심지어 체를리나에게, 귀족인 자신의 아내가 되어달라며 파렴치한 유혹에 전력을 다합니다. 선율을 배반하는 가사를 함께 음미해 보시지요. 혁명의 중요한 이율배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권 선언의 어처구니없는 한계가 태연히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