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5. 소리에 색이 입혀지는 순간

들리지 않는 무음의 상태가 좋다.

by 개경님

새벽 6시 30분이면 알람이 울린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나는 휴대폰을 베개 밑에 넣고 잠이 든다. 잠결에도 베개 밑에 휴대폰이 잘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해서 늘 선잠을 자고 두통을 달고 살았는데, 스마트 워치가 생긴 이후로는 손목에서 울리는 진동에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스마트 워치가 생긴 이후로는 밤새 휴대폰이 침대 밑으로 떨어졌는지 발 밑으로 사라졌는지 신경 쓰지 않고 푹 자고 있다.

나는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듯, 일어나자마자 인공와우를 착용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를 생각만 해도 무섭고 외로워 눈물이 흘렀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순간의 시간들이 너무나 평화롭다. (인공와우로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모순적인 평화로움이다.) 인공와우를 착용하지 않으면 정말 작은 소리도 들리지 않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 같은 이명만 계속 맴돈다. (최근까지 그 이명소리가 냉장고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냉장고에 인공와우를 대보니 내가 생각했던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에게 들리는 윙~ 하는 이명소리는 어떤 소리에 가까운 걸까)

무음 상태에서 간단한 세안을 하고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스킨케어를 바르고 흡수될 동안 출근룩으로 갈아입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선크림을 바른다. 선크림이 또 흡수될 동안 아이들이 먹을 아침을 간단하게 준비한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거나 전자레인지에 냉동밥을 돌리거나 밤새 해동시켜 놓은 생지를 와플 메이커에 넣는다. 음식들이 준비되는 동안 나는 여전히 무음 상태로 간단한 메이크업을 시작한다.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내 발자국 소리도, 내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메이크업과 아침 준비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인공와우와 보청기를 착용한다. 그러면 세상 조용하던 아침에 동시다발적으로 색이 입혀지기 시작한다.


임플란트를 통해 내 귀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소리는 인공와우 전원이 켜지는 삐삐 소리와 바스락 거리는 머리카락들이 부딪히는 소음이다. 머리카락들이 부딪히는 바스락 소리는 매일 들어도 적응이 안 된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머리카락 부딪히는 고음소리에 두통이 오기도 한다. 그렇게 인공와우의 전원을 켜면 소리가 입혀진 세상이 시작된다. 첫째 방에서 나오는 노랫소리, 작은 방에서 울리는 둘째의 휴대폰 알람 소리, 방금 켠 가스레인지의 불 나오는 소리(특히 가스레인지 처음 켤 때 소리가 나는 건 정말 충격이었다.), 안방에서 들리는 신랑의 코 고는 소리까지. 갖가지 소음들에 급 피로함이 느껴지면서 '아 와우 끼고 싶지 않다' 하는 생각이 들때도 종종있다.


그래서 인공와우를 착용할때마다 심호흡을 하고 소리들을 받아들인다.

소리에 색이 입혀지는 순간 나의 하루도 시작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4. 청각장애 엄마의 블랙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