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초보 딱지를 떼도 될까 싶을 때 보조석에 누군가를 태우고 운전해야 하는 심정이랄까? 심사받는 것처럼 초조하고, 혹여나 실수해서 질타받을까 긴장되는 것처럼.
“나는 선생님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청각장애가 있다고 오픈하는거 듣고 사실 조금 놀랬어요! 보통 사람들은 자기 얘기를 먼저 그렇게 하는거 힘들어하잖아요. 나라면 어느 정도 친해진 사람한테만 사실~ 이러고 말할 거 같은데, 어쩌면 감추고 싶은 핸디캡이니깐요”
“사실 친해지지 않으면 선생님이 어디가 불편한지 아무도 모를거 같은데?”
나랑 같은 해에 첫 발령을 받은 우리 상담선생님의 이야기다.
나보다 5살이나 어린 우리 상담선생님은 나의 직장 생활에 있어서 단순히 직업 동료 이상으로 힘이 되어주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늘 혼자 도서관에 있는 나를 챙겨주고 간혹 회의라도 있을라치면 내가 마스크로 인해서 불편할까 걱정해주고, 나하고 이야기할때는 입 모양을 보여주는 배려를 해주신다.
교직원 회식이 잡혔다.
11월 말의 강화도는 해도 더 일찍 지고 더 어두웠다. 설상가상 하루 종일 비까지 내려 안 그래도 어두운 강화도에 검정 페인트를 사방에 뿌려놓은 듯 짙은 어둠이 가득했다.
보통의 나라면 회식에 참석하지 않았을테지만, 상담선생님의 참석여부로 나의 참석도 자발적 확정되었다. 같은 관사에서 지내고 있어 운전은 내가 하기로 했고, 상담선생님은 회식에서 좀 더 자유롭게 즐기기로 결정했다. 우리만의 역할은 그렇게 정해지고 회식 자리는 유쾌하고도 즐겁고 에너지가 넘쳤다. 삼겹살집에서의 회식은 다양한 소리가 들렸지만(hear) 그 소리들은 들리지(listen) 않았다.
(어쩌면 우리 상담선생님이 이 글을 본다면 너무 속상해 할 것 같다. 부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삼겹살이 구워지는 소리는 다른 소음에 묻혔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다양한 목소리들은 동시에 와우를 통해 입력되느라 미처 어떤 소리인지 누구의 음성인지 파악도 되지 않았다.
분명 컬러TV 인데 나에게만 흑백TV처럼 보이는 느낌이다. 사람들과 함께 웃고 있지만 그들만의 세계를 내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 여기저기에서 말들이 튀어나오는데 나에게는 그 말들의 컬러가 보이지 않아 읽히지 않는 느낌.
하나의 소리 이상으로 이것저것 섞여버린 소리들이 와우로 들어오면 나는 거기서 어떤 소리를 분간해 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나보다 더 잘 듣고 재활을 열심히 한 분들은 각각의 고유한 소리들을 하나하나 포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되지 않았다.
내 앞에 앉은 선생님의 입 모양을 보면서 선생님의 행동에 간간이 반응을 해주었다. 그 와중에도 내가 혼자라고 느낄까 신경쓰인 우리 상담선생님은 사이다가 든 내 잔을 들고 나를 자꾸 끌어당겼다. 상담선생님의 그 마음은 하나도 불쾌하지 않았고, 내가 불편함보다는 소속감을 느끼면서 좋은 기억만을 가지길 바라는 상담선생님의 진심 어린 친절이 느껴졌다.
자리가 무르익고 우리 테이블로 모인 선생님들은 건배사를 외치기 시작했다. 각 선생님들의 노고를 칭송하며 서로 박수로 격려를 해주고 건배사로 다 함께 하나됨을 느끼는 아주 즐겁고도 활기가 넘치는 행위였다. 교감선생님께서는 선생님 한분 한분을 지목하며 진심과 존경을 담은 칭찬을 해주셨고, 박수를 받은 선생님들은 본인만의 건배사를 생각해내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러다가 예상치도 못 한 내 이름이 불리었다.
건배사를 외치는 선생님들의 입모양을 따라갈 수가 없어 대충 흐름만 타고 있던 나로서는 건배사를 어떻게 외쳐야하는지도 멘붕이였고 사실 앞자리 선생님이 내 이름을 외칠때까지만 해도 교감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하시는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게 바로 들리지만 (hear) 들리지 (listen) 않는 난청인들의 상황이다.)
내 이름이 불리었고 박수를 받았으니 나도 건배사를 외쳐야 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과 회식내내 듣던 건배사를 알아듣지 못 했던 나는 어떤 뉘앙스의 건배사를 해야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우리 상담쌤의 조언으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라는 전혀 그럴 듯 하지 않은 건배사를 외치고 자리에 앉았다.
(분위기에 취해서 초반에 건배사를 같이 외치려다가 S쌤이 “‘가’하면 ‘족같이’ 해주세요” 라는 입 모양을 보고 내 맘대로 해석을 해버렸다. ‘아’하면 ‘똑같이’ 해주세요. 라고.... 그래서 성훈쌤이 ‘아!’ 하면 아주 신나게 ‘아!’라고 따라 말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수록 내 에너지는 방전이 되었고, 다행히도 자리는 금방 정리가 되었다. 11월의 강화도는 7시만 되어도 사방이 블랙아웃인데, 오후 8시반에 거세게 내리는 비까지 더하니 강화도는 암흑 그 자체였다.
나와 상담선생님은 억센 비를 해치면서 관사로 향했고 회식이 즐거웠음을 다시 곱씹었다. 무엇보다 우리 상담선생님은, 교감선생님께서 나를 잊지 않고 챙겨주고 내가 건배사를 한 것이 무척이나 뿌듯하고 감동이었나보다. 나보다 그 상황을 더 의미있게 여기고 재차 감동받아 하셨다.
관사까지 엉금엉금 운전해가던(회식장소에서 관사까지는 끽해야 15분 내외의 거리였다.) 우리는 뭔가 아쉬워 편의점에 잠시 들리기로 했고, 내가 올 초에 딱 한 번 가본 편의점이 그 목적지가 되었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가다보니 눈에 들어온 편의점 간판! 워낙 가로등도 적고 비까지 내리니 시야 확보가 더 힘들었다고 핑계를 대본다.
“도대체 입구가 어디지 여기는~”
편의점을 들어가는 공식적인 길목은 길가에 세워져 있는 간판을 지나서 좌회전을 해야했고, 나는 간판을 지나기 전에 좌회전을 시도했다.
차를 꺽고 보니 잡초가 무성하고도 빼곡하게 나 있는게 보였다.
“여기로 들어가도 되는건가?”
방치된 길목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보고 이 길을 지나 편의점으로 들어가면 되겠다고 판단을 마쳤다. 그리고 나는 그 길로 천천히 들어갔다.
내가 길이라고 판단했던 그곳은 보이지 않는 도랑이었다.
결국 내 차는 도랑에 쳐박혔고 뒷바퀴가 붕 뜬 상태에서는 페달을 아무리 밟아도 움직임이 없었다. 우산으로 떨어지는 빗소리 + 세차게 부는 바람소리 + 게다가 보험 담당자분은 스피커로 통화하시는지 인공와우로 소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바람 부는 소리가 와우를 스치면 마치 상대방이 선풍기 바람 ‘강’ 앞에서 통화를 할 때처럼 기계적인 바람 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러면 다른 소리 및 소음들은 순간적으로 출력을 멈추어 바람소리 외에 소리들은 음량 0이 된다. 즉,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바람소리가 귓가를 스쳐도 소통이 가능하지만 와우는 바람소리가 스치면 다른 소통이 힘들다.)
소통이 불가한 나는 상담선생님한테 전화를 넘겨주었고, 선생님은 나 대신 열심히 차량번호와 소유주 확인, 그리고 우리가 있는 곳의 주소까지 전달해주었다.
도랑에 쳐박힌 내 쪽팔림보다 상담선생님이 있어 든든했던 나는, 차를 바라보고 서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누군가가 사진으로 찍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이 상황이 너무 어이없고 웃겨서 두고두고 꺼내 볼 추억으로 여겨졌는데, 본인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가득했던 우리 상담선생님은 내가 즐기고 있는 쪽팔림과 추억의 감정 따위에는 조금도 동의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사실 편의점 방문의 목적이 상담선생님의 먹거리 구입이었다.) 미안함이 너무 컸던 상담선생님의 “아니요!”로 우리는 셀카를 찍을 수가 없었지만 상담선생님이 언젠가 이 글을 본다면 미안함이 아닌, 다시 봐도 너무 웃긴 추억의 감정을 떠올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