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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모쌤 손정화 Jul 22. 2022

엄마의 고스톱

이거 하면 잠깐 잊어버려!

어제는 엄마께 브런치에 쓴 내 글을 읽어드렸다.

엄마는 고스톱을 하시면서 내가 읽어드리는 것을 들으셨다.

요즘 엄마는 다른 때보다 고스톱 앱을 자주 여신다.

"안 좋은 생각 잊어버리려고 이걸 하는 거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말씀하셨었다.

자신이 암에 걸렸고, 그 암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번 주사를 맞아야 하고, 수술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엄마도 그랬을 거다! 그런데 내색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 더 마음을 꾹 누른다.


엄마의 고스톱은 우리 집 데스크탑 컴퓨터가 주인을 잃고 혼자 남은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복작복작 6남매가 엄마 아빠와 한 집에 살았다.

첫째가 나머지 동생들 몸이 다 크기 전에 결혼을 해 집을 떠났고, 둘째가 첫째가 아기를 낳기 전에 결혼을 해 집을 떠났다. 그 이후는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세한 것은 모른다.

막내까지 결혼을 해 집을 떠났을 때, 건너 방 주인을 잃은 책상 위에 주인을 잃은 컴퓨터가 남아 있었다.


"엄마 컴퓨터 하는 방법 가르쳐 드릴까?"

"내가 컴퓨터로 뭐를 하라고?'

"음... 컴퓨터로 고스톱 칠 수 있어요 엄마"

엄마는 금방 컴퓨터를 켜고 끄는 법, 컴퓨터에서 고스톱을 치는 법을 배우셨다.

엄마는 심심풀이로 옆집 아주머니들과 모이시면 점 10원 고스톱을 치셨는데 멤버가 한분 두 분 떠나시고 적적해하시던 차였다.

그 이후로 컴퓨터의 새로운 주인은 엄마가 되었고 엄마의 고스톱은 온라인에서 계속되었다.

가끔 부러우신 것 같은 눈으로 바라보시는 아빠가 보여 아빠께도 컴퓨터 켜고 끄는 법을 가르쳐드렸다.

"아빠 여기 여기를 이렇게 따닥하고 두 번 누르면 이게 열리거든요? 아빠 해보세요"

마우스를 건네받으신 아빠는 아주 천천히 따닥을 하셨다.

"아니 아빠 그렇게 천천히 누르면 안 되고, 이렇게 빨리 눌러야 돼요"

"이렇게?"

어쩌다 되기도 했지만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은 컴퓨터에게 마음 상한 아빠는 그날 이후 컴퓨터를 쳐다도 보지 않으셨다.

그렇게 컴퓨터는 엄마의 것이 되었다


핸드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꿔드렸을 때 엄마는 제일 먼저 고스톱을 핸드폰으로도 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우셨다. 가끔 엄마는 이런 내용의 전화를 하시기도 하신다.

"내 핸드폰이 뭣이 잘 못 되었는지 고스톱이 안 돼"

그러면 우리는 전화를 받은 사람이 누구이건 간에 최대한 빨리 집으로 가서 엄마의 핸드폰을 봐 드려야 한다.

그렇게 엄마는 스마트폰의 기능을 하나, 둘 익히셨다.

"아빠! 아빠 핸드폰도 이제 바꿔요"

"아니야, 괜찮으니까 상관하지 마러! 전화만 되면 돼 그렇게 큰 걸 어떻게 가지고 다니냐?"

그러시면서도 아빠의 눈은 엄마의 핸드폰을 부러워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아빠 보니까 뭘 완전히 알지 않으면 아예 손도 안 대시려고 하시더라고, 그러니까 이번에 스마트폰으로 바꿔드리는 것도 아빠가 충분히 연습하시고 나서 이제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 하실 때 그때 사드리면 될 것 같아"

언니,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는 집에 있던 공기계 중 가장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의 핸드폰을 들고 집으로 갔다.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나서 아빠께 드리며

"아빠! 이거 임서방이 쓰던 폰인데요 이게 이 부채 모양이 펼쳐져 있으면 전화는 되지 않아도 다른 건 할 수 있거든요. 전화는 지금 쓰는 전화기로 걸고 받고, 이거로는 이제부터 가르쳐드릴 테니까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연습해요 아빠"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연습용으로 썼던 공기계와 완전히 친해지셨을 때 조금 큰 것으로 바꿔드렸다. 그리고 그 기계와도 친해졌을 때 아빠는 핸드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는 것을 허락하셨다.


엄마가 처음으로 보내신 카톡에 우리 6남매는 할 수 있는 이모티콘을 총동원하여 마치 돌쟁이 아기가 첫걸음을 내딛었을 때처럼 축하해드렸다. 물론 아빠의 첫 카톡에는 더!


요즘 병원에서 생활을 자주 하시는 엄마는 우리가 열어드리는 넷플릭스를 자주 애용하신다.

언니가 같이 있을 때에는 언니의 태블릿으로, 내가 같이 있을 때에는 내 태블릿으로!

엄마는 오늘 항암 2차 주사를 맞으시러 입원하셨다.

오늘 언니의 태블릿은 열일을 할 예정이고 엄마의 고스톱은 잠시 드라마에 져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이거 하면 잠깐 잊어버려"


이 말을 들은 이후로 엄마가 핸드폰으로 고스톱하고 계시면 마음 한편이 묵직해진다.

엄마를 위해 잠깐 기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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