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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모쌤 손정화 Jul 26. 2022

아빠의 계곡 수영장

어이! 그러세! 그러자고!

여름이 되니 나 어릴 적 여름 풍경이 생각난다.

나 어릴 적 여름! 여름방학이 되면 일요일 아침에는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전화를 받으신 아빠가

"어이! 그러세! 그래! 그러자고!" 하시면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엄마에게

"어이! 형택이네가 계곡에 가자고 하네!" 하시고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하셨다.  

그러면 그때부터 우리 집은 갑자기 전쟁통에 피난 가는 사람들처럼, 사실 그때는 이런 생각 못 했지만 나중에 TV에서 피난 가는 사람들을 봤을 때 '저 사람들도 어디에 물놀이 가나?' 하고 생각할 만큼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어릴 적이라 뭘 어떻게 쌌는지는 자세히 생각이 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갈아입을 속옷과 수영복을 챙겨 넣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것과 6남매 모두가 아빠를 따라나서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내 기억 속 물놀이에는 항상 엄마가 안 계시고 끝에서 두 명, 또는 세명의 동생이 없다.

아마도 동생들이 어려 엄마가 돌보시고 아빠는 나와 바로 아래 동생을 데리고 나오셨던 것 같다.

언니는 부모님을 따라다닐 나이가 지나 따라나서지 않았던 것 같다.


딱 한 번인가 모든 언니, 동생들과 함께 물놀이를 갔던 기억이 있다. 사실 그 기억 속에도 나 외에 다른 형제자매의 얼굴은 정확히 보이지 않지만 처음 물놀이를 가려고 준비할 때 다 같이 갔으니 다 같이 간 여행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 여행에서 우리는 한탄강으로 피서를 갔다. 한탄강에 도착했을 때 많은 피서객들이 눈에 보였고, 약속 장소를 찾아가는 길에 얕은 강물을 가로질러 건너가야 했었다. 아빠는 우리가 건너기에는 너무 깊은 강물을 가로질러 건너가셨는데 먼저 몇 번 오고 가며 짐을 옮기셨고, 우물쭈물하는 우리들을 양쪽 손으로 잡으시고 걸어가시다가 아빠에게는 허리쯤이지만 우리에게는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의 깊이까지 갔을 때 양쪽 팔로 번쩍 들어 올려 우리를 건너편 강가로 옮겨놓으셨다. 나는 이 여행에서 물의 무서움을 처음 알았다.

물이 가슴 정도까지 차올랐을 때, 숨이 턱턱 막히며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가 휘몰아쳤고, 그 공포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누가 봐도 '이 아이가 지금 겁에 질렸구나!'하고 알아볼 수 있을 때쯤 아빠의 구조가 있었었다. 아빠의 큰 팔에 매달려 나머지 강을 건너갔다. 그 바람에 나는 다시 그 강을 건너 돌아올 때에는 튜브 없이는 절대로 가지 않겠노라고 했는지, 아니면 아빠도 겁에 질린 딸을 위해 방법을 생각하신 것인지 튜브를 타고 그 강을 건넜다. 그러나 나는 이때 아빠에게 매달려 강을 건널 때보다 더 큰 공포에 떨어야 했다. 튜브를 껴고 건너고 있으니 아빠는 튜브에 연결된 끈을 끌고 앞서 가셨는데 튜브에 올라타 있으니 건너올 때보다 더 빨리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을 느껴야 했고, 아빠의 체온이 느껴지는 믿을 만한 팔이 아닌 제 멋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연약한 튜브에 몸을 의지하고 발을 바둥바둥거리며 덜덜 떨고 강을 건너야 했다. 앞서 가시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소리 지르며 울었다. "무서워 무서워"

그렇게 나는 물놀이! 하면 생각나는 기억을 얻었고, 그 기억과 연결된 나의 감정 두려움, 공포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곳에서의 물놀이는 꿀맛이었고, 아빠 하면 생각나는 것 몇 가지가 이때 만들어졌다. 아빠는 우리가 다른 아이들과 부딪치지 않기를 바라셨을까? 계곡 물이 한 곳으로 모일 수 있도록 물길을 만드셨고 그 물들이 모였을 때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주변의 돌들을 가져다가 물길을 막으셨다. 어린 나의 눈앞에 아빠가 만든 수영장이 펼쳐졌다. 다른 아이들은 무릎도 되지 않는 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을 하겠다고 튜브를 타고 있었다면 나는 달랐다. 아빠가 만들어주신 수영장은 수영하기 적당한 높이의 물이 있었고, 그 안에서는 튜브에 탔을 때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무섭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아빠가 만들어주신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있는 우리들을 몹시 부러워하며 바라보았다.


아빠가 만들어 주신 수영장은 나의 물놀이의 두려움을 밀어내고도 남는 기쁨과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물놀이가 감당하기 어렵지만 재미있고 짜릿한 것으로 기억되게 해 주었다.

그 후로도 매년 여름 아빠의 계곡 수영장은 계속되었다.

우리가 결혼하고 난 후로는 손자 손녀들에게 계곡 수영장을 매년 개장해주셨다.

우리가 다녀간 곳에서는 아마도 다른 가족들이 계곡 수영장을 이용했을 테니까 아빠의 계곡 수영장은 매년 여름 여러 곳에서 개장되었을 것 같다. 올여름에도!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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