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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의식의 기원을 찾아

글쓰기를 통한 자아 찾기

by 포레스임


흐르는 시간 속에서 가장 이해하지 못할 존재는 역시 나였다. 다른 무엇보다 나 자신을 이해의 대상에 올려놓는 것은 힘들었다. 그냥, 나 자신은 자신에게 절대신(神)이고, 옳다고 느끼면 순종할 뿐, 의심해 본 적이 없다.'존양성찰'은 역사 속 성현들처럼, 인격수양이 완성된 성인들이나 할 수 있는 머나먼 얘기였다.


세월의 너울이 조금씩 보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할까.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는 없었을까. 그렇게 무조건 반사신경을 움직여 말이나 행동을 하고 나면 남는 건 후회와 연민뿐이었다. 모든 건 내 무의식 속에 잠재된 유전적 기질과 어린 시절 환경적 경험이 작동기제로 나타난 때문이다.


지금은 계시지 않는 어머니는 늘 우울해하셨다. 그 당시 어린 나였지만, 밝은 얼굴의 어머니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하다. 어머니는 글을 쓰고 싶어 하셨다. 생활이 허락을 하지 않으니, 일기체 형식의 글들을 빼곡히 적어 놓으신 두툼한 노트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에 당신의 회포를 오롯이 담아 놓으셨다. 뭔가를 써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의 습성은, 어머니의 글쓰기와 맥이 닿아있다. 모태의 시간 이후로 의식을 하든 안 하든, 어머니는 내 존재의 귀향점이었다.



오십 년 후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전봇대가 들걷이한 논밭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서있고 대열에 합류 못한 철새가 남은 낱알을 허겁지겁 쪼으며 힘을 비축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멀리 차도 위로 버스 한 대가 보인다 포장이 덜 된 탓에 먼지가 부옇고 식별은 불가능했다 초저녁 잔볕은 을씨년스럽고 몸을 움츠리게 만들어 빨리 엄마가 보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언제쯤 오시려나 코 끝이 시큰해도 좋다 그 시절은 기다림이 있어 좋았다 시간의 그림자가 늘어져 나를 등 떠밀고 좌표를 잃어버린 장소로 와 있다 하루가 짧아져 기나긴 하루는 실종되어 끝도 모를 해가 자꾸 넘어가고 올라온다 시간은 직선화 경향이 있어 다시 돌아가는 법이 없는 걸까 몽환적 데자뷔는 있어도 현실은 늘 낯설다 그런 시간을 뒤로하고 오십 년 후 나는 다시 길을 잃고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 서있다 하루가 너무 짧아진 태양은 토하 듯 붉은 울음을 내뱉는다
- by 포레스임



글은 그 사람의 지문과 같다. 아무리 다르게 써보려 해도, 문장과 문맥에 쓰이는 분위기는 어쩔 수 없다. 내 글의 전체적인 인상은 내가 봐도 청승맞다. 어릴 적 자주 꾸는 꿈 중에서, 나는 장벽에 막혀 안타까워하며 홀로인 채 소리를 지르는 꿈을 꾸고는 하였다. 이런 내력을 보면 나 자신을 조금은 유추해 볼 수 있다. 허공에 문장을 쓰면서, 간헐적인 영감을 붙잡으려 애쓰는 작업이 지루하지만, 놓고 싶지는 않다. 시간이 나를 채워 한 순배 돌고 보니, 나를 긍정하게 되었다.


봄이라지만, 아직 봄인가 싶다. 날씨 변덕이 너무 심하다. 여름으로 착각할 만큼 무더위가 계속되다가, 비가 좀 오는 듯하더니 바로 우수나 경칩 때의 날씨로 되돌아갔다. 예전에 이런 적이 있었나 싶게, 변덕이 심한 날씨의 연속이다. 각 매체에서는 기상이변이네, 환경오염에 따른 이상기후라는 등의 요란 법석을 떨지만, 사람은 단 한순간도 같은 경험을 못하고 직선주로의 로드러너처럼, 달려갈 뿐이다. 같은 경험을 했다고 착각하는 것은 유사한 경험의 반복이 아닐까?


시간의 재단을 다시 할 수만 있다면 참 좋을 거 같다. 짜깁고 엮어서 후회의 조각을 잘라버리고, 산뜻한 기억의 옷으로 갈아입고 싶다. 하지만 그런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하는 존재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결정되고 운명 지워진 존재다.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나라는 존재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나를 인정하고 긍정하려 한다. 그리고 나의 장점으로 부각해 볼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살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빠르다.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계속 써보려 한다. 물론, 누구의 말처럼 지난한 과정이면서 토하는 심정으로 써가길 원한다. 아직은 배워간다는 긴장은 놓고 싶지 않다. 어차피 선조들도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는 학생이라는 명칭을 관 위에 써놓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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