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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또 다른 아침

2023 봄, 어느 구보의 하루

by 포레스임


눈을 떴다. 또 하루가 시작됐다. 너무 오랫동안 시작하는 하루가 조금은 지겹다. 거기에 틀에 박힌 듯, 뻔한 하루는 맥이 빠질 지경이다.

하긴, 시간이 지루한 것은 나의 잘못이다. 틀에 박힌 일을 몇 십 년째하고 있으니 지겨운 건 당연하다.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루한 건 지루한 거다. 시간과 보수를 바꾸는 일은 늘 지겨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부리나케 일어나 하루를 준비한다.

더 이상 헛된 망상이나 생각으로 시간을 소비할 순 없다. 생각도 적절한 타이밍에 '컷'을 해줘야 한다. 세수를 하고, 늘 그렇듯 머리카락을 곧추세우고, 긴장도 다시 불러 의식을 근무 모드로 바꾼다.

현관에 신발이 어지러이 여러 켤레 보인다.

"왜 어제 정리를 못했을까?" 짜증은 나지만 시간이 없으니 찾아 신고 밖을 나선다.


전철역을 가는 길에서 비 온 뒤 쌀쌀해진 추위를 느낀다. 올 봄 날씨는 유난스럽다.

여름 더위를 연상할 만큼 덥다가, 비만 오면 기온이 급강하하여 기온의 변화가 무쌍할 지경이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그래서인지 패딩차림의 중년 남자와 반팔 차림의 청년들, 짧은 치마를 입고 벌벌 떠는 여자애들, 정말 가관들이다.

나 또한 낮기온을 예상치 못하고, 반코트 차림으로 나섰기에 은근히 걱정된다.


전철역 플랫폼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바닥에 비둘기 배설물이 여기저기 보인다.

늘 주의하는 일이지만 천정을 힐끔 보니, 아침 추위에 비둘기들이 H자 구조물 사이에 후줄근하게 무더기로 모여 잠을 청하는 게 보인다.

"네 놈들도 사는 게 그리 녹녹하지 않은가 보다"

어디선가 먹이 활동을 하다가 이제야 잠을 청하는 것을 보니, 나와 같은 처지의 비둘기들이 한편,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철을 타니 뭇사람들이 앉거나, 서서 열심히 자신의 폰을 들여다본다. 굳이 자리를 찾지 않았다.

한 정거장이면 어차피 갈아타기도 하고, 서서 가는 동안 운동도 되니 가능하면 앉지 않는다.

환승역에 내려 갈아타러, 더, 지하로 내려간다.

계단으로 내려가 또,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한다. 좌. 우측 같이 걷던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빨라진다. 맞은편 올라오는 사람들도 유난히 속도가 있었다. 다들 시간 가늠들을 안 하고 임박한 시간이라 그러는 걸까? 이 시간이면 겪는 일이지만 나는 이해를 못 하겠다. 무엇이 그리 급할까?


에스컬레이터에는 걷거나 뛰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습관적으로 오른편으로 붙어 손잡이를 잡고 내려간다. 왼편은 타고 걸어 내려가는 사람들 차지다. 언제부터인지 그런 지하철 문화가 고착되었다. 비가 오는 관계로 바닥엔 물이 보인다. 미끄러운 바닥에 에스컬레이터 계단의 접지 부분은 신발면의 접지력을 떨어뜨린다.


기어이 왼편의 걸어내려 가던 사람들 중 사달이 났다. 아래편에서 누군가 미끄러져 쓰러져 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서성이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기는 나도 한 번은 거의 다 내려가서는 앞사람들이 모두 걸어간다고, 무턱대고 걸어 내려가다 넘어질 뻔해서, 손잡이를 잡고 겨우 일어선 일이 있었다. 어깨에 통증을 느껴 파스를 붙이고 며칠 동안 고생한 이후로는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절대 걷지 않는다.



내 기준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남이 걸으니까 걷고, 뛰어가니, 왜 뛰는지도 모르고 뛰니 사고가 나는 거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아침 시간마다 허둥대는 건 습관일 것이다.

뒤쳐져선 안된다는 생각들과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빠르게 타려는 생각들, 오는 열차를 놓치지 않으려는 발걸음은 결국 사고로 이어진다. 그렇게 빨리 가서 모자란 아침잠을 보충하는 걸까? 아니면 못 먹은 아침밥으로 김밥이라도 사 먹을 요량인가?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속도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 최고일 것이다. 또 그렇게 세계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도 한다. IT와 인터넷, SNS 세상에서 속도는 모든 것의 척도가 되었다. 그런데 실물사고가 가끔씩 난다는 게 문제다. 돌아볼 겨를이 없이 속도경쟁을 하다 보니, 주의력이 없어졌다.

만화 '루니툰쇼 로드러너'를 보면 그 속도에 코요테는 늘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다. 언젠가 그 쏜살같이 지나가는 새가 한 번은 실수하길 기대한다. 우리가 그 만화의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갈아탈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폰을 들여다본다.

아직 시간은 여유가 있다.

늘 서있는 자리에 서서 잠시 기다리니 벌써 열차가 들어온다. 자동문이 열리니 익숙한 자세와 모습의 회사동료가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일부러 다음칸으로 옮긴다. 괜히 아는 척해서, 그 친구가 졸고 있는 걸 방해하기도 싫고, 어차피 회사에서 종일 봐야 하는데 출근길에서 조차, 멀뚱히 같이 간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서서 가기 좋은 자리에서 힐끔 보니, 앉아있는 젊은 친구의 폰이 눈에 들어온다. 무슨 먹방 동영상을 뚫어져라 보는데, 아침을 안 먹고 나왔나 보다.



목적지 역에서 내린다.

지하 3층의 플랫폼에서 지상으로 나가기까지 또 한참이 걸린다. 그 여정이 또 지루하게 느껴진다.

바로 지상으로 나가는 엘리베이터로 가서 요금체크를 하고, 드디어 지상으로 나왔다.

비 갠 아침이 상쾌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공원으로 연결된 출근길이 나왔다.

천천히 걸어서 오분이면 갈 수 있다.

아직 철쭉이 흐드러지고 녹음은 서서히 여름으로 갈 태세로, 짙은 태양은 아침햇볕을 내리쬔다.


! 또 다시 새로운 아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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