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고 오전 시간, 간단히 업무점검을 마치고, 사방이 거울로 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전날의 공연 후, 시설 점검도 목적이지만 나의 모습을 보기 위한 움직임이다.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는 유난히 천천히 작동된다. 그사이 나는 이런저런 자세를 취하고, 평소 볼 수 없던 나의 뒤태를 훔쳐본다. 뒤통수와 옆모습, 좌·우를 비교도 하고 옷매무새도 점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 습관은 이곳에서 근무를 시작한 이후로 거의 매일같이 일상이 되었다. 특히 전날 염색을 하고는 머리 색깔이 고르게 잘 됐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늘 보게 된다.
결국 나의 사방(四坊)모습을 보기 위해, 네 면의 거울 효과가 있는 엘리베이터로 또 한 번의 출근을 하는 셈이다. 거울 효과로 인해 내가 보지 못하는 외모만큼, 남들은 다 보는 나의 모습을 나만 못 보듯, 나의 또 다른 내면을 나만의 아집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의 모습은 인상과 심상으로 나뉜다고 한다. 인상은 그 사람의 얼굴이나 용모의 생김새를 말하고, 심상은 의식 속에 떠오르는 사람에 대한 나름의 평가나, 과거에 지각했던 일들에 대한 마음의 모습이라고 알고 있다.
누구를 의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생활은 같이 어우러져 사는 세상인 만큼, 너무 도외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이가 지천명(知天命)을 넘겼으니, 나의 모습이 어떻게 남에게 비춰 보일까 하는 것도, 가끔은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된 듯하다.
거울로 보이는 외모는 어떻게든 좋게 만들 수 있지만, 심상에 따른 모습은 지나온 자취의 부스러기가 만들기에, 나의 뒤태처럼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형수술이 인기를 끌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 지 오래됐다. 세월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어려운 유기체인 육신은, 병원에서 각종 성형수술을 통해 변형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이 만들어 놓은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기초로 한 심상은 어쩌지 못해 업보로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 내가 그때 야박하게 군 것은 아닐까?
- 조급함에 내 이익만 챙겼던 것인가 ?
- 거짓된 말로 위기를 모면하지 않았나 ?
- 채신머리없이 가벼이 행동하지 않았나?
-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을 모른 체하지 않았던가?
모든 행동과 말은 그 사람의 내적 모습으로 투영되어 인상과 함께 전체 모습으로 회자된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얼굴이 바뀌면 사람들에게 다른 모습으로 비치게 된다고 믿는다. 아마도 그런 믿음 때문에 그 많은 성형외과가 성업 중일 것이다. 물론, 전혀 다른 곳에서 생면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로, 또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진정한 나의 자아까지 변신한 것일까?
결혼과 이혼에 관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이혼한 커플들이 각자 재혼 후, 행로에 대한 이야기였다.
남·여는 각자 다른 사람과 재혼하게 됐는데, 우연인지, 이혼한 상대와 비슷한 유형의 상대를 찾는 것이다. 결혼 후에도 비슷한 갈등을 겪게 되고, 결국 다시 이혼하게 되는 순환이 반복된다고 한다. 외국 프로그램이라서 우리 정서와는 안 맞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 경험으로는 수긍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내 안의 자아는 결국 바뀌지 않는다. 존재하는 '나'라는 본질은 외형과 상관없이 오롯이 남겨질 뿐이다. 그러면 내면의 나는 무엇으로 긍정적으로 바뀌게 될까. 아마도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수긍하는 태도로 관조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 글의 인상은 어떨까?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끊임없이 심사숙고해서 진정성 있게 써가고자 한다. 글도 나름의 인상과 심상이 있다고 한다. 맥락에 흐르는 분위기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 글의 지문이 되어, 몇 구절의 문장으로도 인지된다고 한다.
나는 내 글이 강렬하게 사람들 속으로 회자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능력이나 실력이 되지도 않는다. 그저 나와 약속한 가슴의 소리에 익숙한, 진정성 있는 글을 써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