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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날들

호국영령 S에게 부치는 글

by 포레스임

현충일 아침이었다.

공휴일이니 잠이나 늘어지게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치였나 보다. 아내의 눈치가 보였다.

'빨리 감을 잡아야 한다'

살다 보니 아내의 표정은 누구보다 잽싸게 감을 잡는다.


"현충원이나 다녀오자!"

장인어른과 합사 한 장모님의 묘소가 거기에 있었다.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휴일이라 차 막히고, 힘들다는 등의 말은 너스레라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다. 이미 표정을 나한테 들켰다고 생각하나 보다.


"김밥이라도 쌀까?"

하이톤으로 목소리가 올라간다.

'그럼 그렇지!' 내 눈은 못 속인다.

올해 초에 갔었으니, 묘비 옆의 조화도 색이 바랬을 터이다.


오 개월이 지난 묘비옆 조화는 붉은색꽃이 허옇게 바랬다. 조화매점에서 해바라기 세 다발을 사서 꽂으니, 환하니 좋아 보인다.


현충일이라 많은 사람이 방문을 하여 조금은 혼잡스러웠다.

아직은 봄인데, 여름 뙤약볕처럼 따갑다. 조금 한적한 그늘막 벤치에 자리를 잡고, 잠시 다녀오겠다고 했다.

섹터별로 수없이 오와 열을 맞춘 비석들 사이를 지나 S를 찾았다.


다른 묘비 옆에는 모두 화려한 형형색색의 조화다발이 꽂혀 있지만, S의 묘비 옆에는 언제 적 조화인지도 모를 색이 바랜 꽃이 있었다. S는 내가 군생활 시절, 사고로 운명을 하였다.



"선임하사님, 내일 휴가 좀....."


S가 머뭇거리다 내게 한마디 했다.


"꼭 내일 가야 해? 다음 주 초에 가라!"


심드렁하니 내가 말했다.


"TS훈련 복귀 후, 차량들 상태가 엉망이잖아!"


뭔가 할 말이 있었는지 머뭇거리다...

이내 체념한 표정이 역력했다.

찜찜했으나 모른 척했다.


예비사단의 동원훈련은 피곤했다.

오십여 대의 차들을 손봐야 한다. 사단 검열이 코앞이었다. 토요일까지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충성! 돌아가겠습니다."

"그래 미안해, 담주에 꼭 보내줄게"


그때는 몰랐다.

S에게 못할 말을 했다는 것을....

그 대화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비가 억수로 퍼붓던 그날, 호출이 왔다.

금요일 오전 7시 부리나케 상황실로 올라갔다.


"임중사! 방위병 애들 몇 명이야?"

"예! 45분의 2명입니다."


"중대장도 없이...쯥..좀 버겁지.."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당직사령 200 연대 김소령은 나를 힐끗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폭우에 애하나가 떠내려 갔다고, G 검문소 헌병들이 연락이 왔어."


"근데 너희 행정방위병 한 놈이 같이 있었다는 거야"


순간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그러면... 우리 단기사병 하나가... 실종.....?


"내려가 인원파악 해보고, 연락을 최대한 해서 방위병들 출근하지 말라고 전달해"

"네 충성! 알겠습니다."


치장차량중대 사무실로 돌아오니, 같이 폭우를 뚫고 건너다 되돌아간 K에게 전화가 왔다.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차도라서 건널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가운데 서고 양쪽에 한 명씩 붙잡고 건너는데, S가 발 쪽으로 내손을 뿌리치고 잡다가... 휩쓸려 내려갔습니다."


요즘이야 핸드폰으로 일괄문자를 보내면 그만이지만, 당시에는 연락이 힘들었다. 다른 애들은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방위병들은 내가 전날 주말까지 차량 정비, 세차 등을 마쳐야 한다는 말에 부담감을 느껴, 차마 그냥 가지 못했나 보다. 다 내 잘못 같았다.


폭우에 연계도로 중 지대가 낮은 곳으로 물이 범람했다고 한다. 수송버스도 건너지 못해 돌아갔는데, 우리 병력 3명은 걸어서 건너올 심산이었나 보다.


물살이 세니 무언가에 발이 걸려, S는 손을 놓고 발을 잡는 순간, 떠내려 간 것이다.



전 사단에 수색령이 떨어졌다. 우비를 쓰고 간단한 수색도구로 장대 하나씩을 들고, 사고 장소에 집결을 했다. 반경 5Km 내를 뒤지라는 명령에 흩어져 수색이 시작됐다.


다행히 비는 잦아들어 다행이었다. 이틀 동안 수색은 이어졌으나, 소득은 없었다. S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잠시동안 나무 아래 모여 휴식을 취했다. 나무 뒤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났다. 애들끼리 나누는 대화였다.


"선임하사가 휴가만 내줬어도.... 쯥.."

"S가 애인하고 야구장 간다고 하던데.., 좀... 보내 주지.."


내가 바로 뒤에 있는 줄도 모르고 말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소름이 끼쳤다. 나의 말 한마디에, S가 목숨을 잃었다는 자책감이 몰려왔다.


S는 야구선수 출신이었다. 고등학교 야구부 선수였는데, 부상으로 대학지명에서 탈락을 하고는 바로 입대를 한 녀석이었다.


하얀 피부에 크지 않은 체구였지만, 넉넉한 성품이 동료들의 인정을 받는 방위병이었다. 그래서 2.5톤 차량의 조장을 맡겼다. 자기가 맡은 일은 빈틈없이 해내는 성격이었다.


반경 5Km 내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발견이 안되자 귀대하게 되었다. 관련된 연락은 다음날 왔다. 사고지점에서 7Km 떨어진 지역에서 노인 한 분이 비 갠 하천에서 사람형체를 발견했다고 했다.


황급히 수송관의 지프차에 몸을 싣고 가보니,, 참혹했다.

이미 삼일이나 지난 주검은 물에 불어, 본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북부지구 병원으로 이송 후 장례절차에 들어갔다. 가족들이 와서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죄책감에 휩싸여 밖으로 나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전역 후, 취업 전 잠시 쉴 적에 나는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차도 없을 때라 기차에 버스로 굽이굽이 이 길을 왔었다. 지금은 상전벽해로 바뀌어 잘 꾸며진 공원으로 탈바꿈하였다.


매점에 들러 노란색의 국화꽃 조화를 한 다발 사들고 S의 묘비로 갔다. 바랜 조화를 뽑고 새 꽃으로 갈아준다.


"부디 영면하소서!"



돌아오는 길,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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