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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거리

카뮈의 뫼르소들

by 포레스임


특정사건을 일반화할 의도를 가지고 이 글을 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일련의 보도된 사건들은 일정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온 나에게는 충격일 뿐이다. 점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들이 우리 사회에도 출몰하고 있다.



카뮈의 《이방인》이 발표된 게 1942년이니 벌써 80년이 지나간다. 당시의 카뮈는 온갖 비난적인 여론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부조리한 당시의 사회적 환경에 따른 카뮈의 철학기조는 시대를 관통하여 지금, 여기, 우리에게 처절하게 현실이 되고 있다.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

'이상동기 범죄'로 규정하고 경찰은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려 관련 범죄에 몰두하겠다고 한다. 과연 유사범죄는 근절이 될까?


'신림동 칼부림' 사건에서 보는 우리 사회의 단면은 단순히 사이코패스의 사고로 보는 시각부터 전면수정을 요구하고 있어 보인다. 백주 대낮에 그것도 전혀 경계의식 없이, 지나는 행인을 상대로 칼을 휘두르는 장면은 그동안 일련의 사건들과도 무관치 않음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 3월에도 수인선 지하철에서 40대 여성 한 명이 주변 승객들이 폰소리가 너무 크다고 한 소리에 격분해 칼을 휘둘러 3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기막힌 점은 가해자가 재판과정에서 보인 태도나 언행이었다. 가해자는 태연히 이렇게 말한다.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다" ??



불과 두 달 전 5월,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온 환경이 살인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 정유정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평소 범죄수사물에 관심이 많고, "살인을 해보고 싶었다"라고 태연히 말한다.


더욱 소름이 돋는 이유는 체포 후, 유치장에서 정유정은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없이 세끼 식사와 잠도 잘 잔다고 한다. 《이방인》 뫼르소와 어찌 이렇게 일맥상통할 수 있단 말인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는 세상일에 별 관심이 없으며, 어머니의 죽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런 무감수성은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짜증 난다는 이유로 아랍인을 쏴 죽이는 행위로 이어진다. 정유정이나 수인선 지하철의 김 씨와 무엇이 다른가?


카뮈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연계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른바 부조리 문학의 태동을 알리는 작품이 《이방인》이다.


삶에서 부조리는 엇박자를 말함이다. 개인의 욕구와 사회의 현실에서 오는 불일치,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으로서 뫼르소를 선보인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단순히 사이코나 소시오패스로 명칭 하면 편하다는 것쯤은 안다. 그렇지만 일련의 사건들은 분명히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담고 있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 젊은 시절을 보낸 시기는 개발경제 도약을 통한 성취의 시대였다. 그 시대는 이미 종언을 고했다. 지금은 성장정체의 시대상이 사회도처에 만연한 시기이다.


더 이상 그런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현재의 장년세대는 한 국가의 역사에 있어서 특이한 시대를 살아왔다. 모자랐기에 채우려 노력했고, 서로가 없었기에 나눔의 정이 있던 시간대였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혼돈의 시간을 보내는 이유를 여기서 인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초고속으로 밀어붙인 경제적 성취에는 사람이 빠져있었다. 삼포세대니 사포, 오포세대니 하는 말들이 결국은 우리 기성세대들이 뿌린 씨앗들이 부실했음을 방증하고 있다.


적어도 내가 살던 청년기 시기에는 기회가 있었다. 지금의 정체된 사회에서 공고화된 자본의 위력 앞에 그런 기회 따위는 없어졌다.


젊은이들이 생활고로 인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더니 인간관계와 주택구입도 포기하게 만든 세상은 오롯이 기성세대가 남겨준 유산일 뿐이다.



꾸준한 시청률이 나오는 MBC의 예능프로 '나 혼자 산다'를 본다. 재밌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되는 프로그램이다. 요즘의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볼 수 있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젊은 시간동안 해보고 싶은 여행이나 주거문화도 자유롭게 누리는 모습은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TV로 보이는 세상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생활고로 인한 홀로 살기를 하는 청년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홀로 살기를 최신 경향으로 포장하는 TV는 보여주고 싶은 것의 콘텐츠 상품일 뿐이다. 취업까지 포기하고 칩거하는 청년들이 많다고 들었다. 과연 그들이 '나 혼자 산다'의 출연자들처럼 자유롭게 거리낌 없이 살아갈까?


칩거는 움츠러들어 자책을 하게 한다. 자신을 혐오하는 내적 괴로움에 어느 순간 자기 합리화에 도착증세를 보일 수 있다. 세상과의 단절은 새로운 뫼르소들의 양산을 부추길 뿐이다.


한국의 사회문화가 각성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지금보다 좀 못살아도, 1인당 GDP, GNP가 내려가도 사람이 살만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본다.


정부정책도 선거 때, 표가 좀 나온다고 노년층 정책에 집중하지 말고, 고르게 하여 젊은이들에게 기회의 균형을 어찌 줄 것인가에 고민을 해야 한다고 본다.


문제가정에 문제아가 나오고, 이상(異常) 사회에 이상한 사람들이 출몰한다. 더 이상 이방인으로 떠도는 뫼르소들이 거리를 광폭(狂暴)하게 어지럽히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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