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미안한 마음뿐
퇴사한 지 1년이 다 돼가는 시점, 아내는 나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이제 모아둔 돈이 다 떨어졌는데 회사에 다니는 게 어때?
나는 이루고 싶은 것이 있었고 그것을 향해 정말 열심히 했다.
퇴사했지만 회사를 다닐 때 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주말도 없었다. 6시에 눈을 뜨면 그때부터 일을 시작했고 오전 내내 방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했다. 점심 먹을 때 나와서 밥을 먹다가 나중엔 아내가 방으로 밥을 넣어줘 일을 하면서 먹기도 했다. 대신 육아 외에 모든 청소, 빨래, 설거지, 분리수거 등의 집안일은 내가 다했다.
모든 경제권을 아내에게 주었기에 아내는 1년간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이래저래 잘 굴려 우리 가족이 부족함 없이 먹을 것을 먹고 아이에게 충분히 돈을 썼다. 필요한 것은 당근 마켓을 통해 많이도 구해왔고 나는 그런 아내에게 정말 고마웠다. 내가 결혼을 참 잘했구나, 모든 경제권을 아내에게 넘기길 잘했구나 싶었다.
그렇게 나에게 내색 한번 없이 집안 경제를 잘 꾸려나가는 아내가 진지하게 이야기했을 때 나는 마음이 철렁했다. 솔직히 말하면 다시는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1년간 열심히 해보았지만 뭔가 크게 이루지 못해 나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었다. 다시 회사에 간다는 것은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실패의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에게 한 가지 옵션을 걸었다.
원래 일하던 업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그리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과 관련된 회사를 다니겠다고.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연봉 문제 때문이었다. 경력이 10년이지만 그 경력을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하려면 그때의 연봉에 절반, 아니 그 이상을 깎일 수도 있었다.
나는 내가 고연봉자인지 몰랐다.
오랜 해외생활로 높은 연봉을 받고 있었음에도 나보다 연봉이 더 높은 사람들만 바라보았기에 내 연봉이 낮다고만 생각했지 높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한국으로 이직할 때 내 연봉을 맞춰줄 수 없다는 것에 놀랐고 구직 사이트에서 내 나이에 평균적으로 받는 연봉이 내 연봉의 절반 수준인 것에 더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있던 업계가 앞으로 지는 산업이라고 생각했고 나의 적성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새로운 것을 도전해야만 했다. 앞으로 10년도 못 가 회사에서 잘리게 되면 내 가족을 어떻게 부양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기에 나는 반드시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했고 1년간 그것을 준비했지만 쉽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흔히들 월 천만 원, 회사에 다니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돈 벌기 등의 성과를 내지 못해 수입이 변변치 않았기에 아내의 말에 나는 구직사이트를 뒤지며 여기저기를 지원했다.
구직 사이트를 뒤적거리면서 1차로 연봉에 충격받았고 2차로 그들이 나를 그다지 원하지 않는 것에 더 충격이었다.
나는 나이가 많고 고연봉자인데 내가 지원하는 직군은 새로운 곳이니 그들 입장에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나는 내가 했던 일 이과 연계되면서 내가 했던 업계가 아닌 다른 쪽으로 까지 지원하게 되었고 몇 군데서 나를 찾았다.
사실 내가 있던 업계에서는 내가 무직 상태인 1년 내내 여러 경로를 통해 연락이 왔었다.
나의 특이한 이력과 경력이 그들은 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한 회사에서는 정말 집요할 정도로 연락이 많이 왔다. 그들이 제시하는 연봉 또한 원래 내가 받고 있는 연봉보다도 높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을 모두 고사했다.
누가 보았을 때는 멍청한 짓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시대의 흐름,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급변하는 세상에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 대응하다가는 도태된다는 생각이다. 세상이 바뀌어 갈 때 그것에 발맞추어 가는 이들은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다. 나는 그 흐름에 발맞추려 했지만 이뤄내지 못했다. 어쩌면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변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년 동안 새로운 무기를 장착한 것만은 확실하다.
결국 몇 군데에서 나에게 서류 통과 연락이 왔고 나는 면접을 보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