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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몬 Nov 08. 2022

아내를 위해 처갓집 근처로 이사하는 거, 어떤가요?

많은 이들이 반대하네요

아내와 나는 결혼할 때 세명의 아이를 갖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첫째를 임신해 있는 기간 동안 아내가 너무 힘들어했기에 나는 셋까지는 무리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첫째 아이가 두 살이 되는 시점에 둘째를 가지자고 했다. 그리고 그 시기가 다가왔다.


장인어른과의 첫 만남에서 장인어른은 나에게 물어보셨다.


자네 꿈이 뭔가?


그 질문에 나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입니다.


라고 대답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장인어른은 결혼을 허락해주셨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청년이라면 내 딸을 허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꿈을 향해,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야 한다.


언젠가 몇십만 유튜버에게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나도 유튜브를 하고 싶었지만 도대체 어떤 콘셉트를 잡아야 될지 몰랐다. 말을 재밌게 하는 편도 아니고 내가 대단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물었더니 그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신이 살고 싶은, 자신이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그것을 먼저 정하세요.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결국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이자 목표라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더 이상 남은 돈이 다 떨어져 집안 경제가 힘들다는 아내의 말에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한참을 지원하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평생을 자신이 살던 도시에서 떠나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를 만나 결혼하면서 처음으로 집을 떠나 서울과 수도권에서 살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아내는 나 하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1년간의 백수 생활을 하면서도 아내는 단 한 번도 나에게 닦달하지 않고 나를 믿어주었다. 처갓집에서도 걱정했지만 아내는 내가 들리지 않게 모두 차단했다. 장인어른은 내 딸이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하실 정도였다.


내가 다시 회사에 들어가면 아내는 아이를 홀로 돌봐야 한다.

더군다나 둘째까지 임신하면 아내는 입덧을 하며 첫째를 챙겨야 한다. 너무 힘든 시간이 되겠다 싶었다. 누군가는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겠지만 나는 아내의 고생을 최소화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나에게 우울증의 무서움을 알려주셨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홀로 집에서 육아를 하면서 우울증에 걸려 나를 업고 자살하려고 약국에 가 약까지 샀을 정도라고 했다. 퇴근한 아버지를 보면 모른 척할 정도로 우울증이 심각했는데 어머니는 그 감정이 잘 조절이 안되더라고 말씀하셨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례도 많이 보았기에 나는 혹여나 아내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 싶어 친구를 만나고 싶거나 어디 가고 싶다고 하면 항상 다녀오라고 했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을 보았을 때 나는 아내의 고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처가가 있는 지방으로 회사를 취업하자는 결론을 내렸고 취업이 되면 바로 처갓집 옆으로 이사하기로 약속했다. 주변 친구들이 처갓집 근처에 가는 걸 모두 반대했다. 좋을 것 같지만 가까이 지내면 결국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좋은 뜻으로 처갓집 근처에 이사 갔지만 서로 사이가 멀어진 친구도 있었기에 그들은 정말 잘 생각하라고 했다.



그 와중에 내가 지원한 몇 군데 회사에서 나에게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고 합격하게 되었다.

합격한 다음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처갓집으로 내려가 집을 알아보았고 정말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거실 창문으로 처갓집 안이 보일 정도의 거리다.


걱정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아내의 편안함이 가장 우선이었기에 결단을 내렸고 다른 것은 우리가 하기 나름이고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조언 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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