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부모님께 임신 소식을 말씀드리던 날

무섭다.

by 동동몬

제1부 이야기(완결


결혼식을 한 달 앞둔 시점의 일이었다.


그녀가 회사에 출근하는 길에 갑자기 속이 좋지 않아 중간에 내려 구역질을 하고 다시 탑승했다고 했다. 처음엔 음식을 잘못 먹었나 했지만 횟수가 잦아졌고 설마 임신...? 임신테스트기를 두 개 사서 그녀에게 주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서울에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하여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두 줄 떴어


머리가 멍해졌다.

결혼식을 한 달 앞둔 시점,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말들 때문에 멘붕이 왔다.


그녀는 회사생활을 하고 싶어 했고 이제 겨우 20대 중반이었기에 그녀가 경력을 쌓을 만큼 시간을 주고 싶었다. 내가 마흔이 되고 그녀가 서른이 될 때쯤 아이를 가지자고 이야기했다. 그걸 가족들에게도 선포했기에 몇 년 뒤를 기약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지키지 못할 말은 잘하지 않는 편이고 내뱉은 말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려고 하기에 임신 소식은 나에게 멘붕이었다.


그녀의 임신 소식에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실 임신 소식을 들으면 기뻐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결혼을 코 앞에 두고 있었고 부부가 될 사이인데 그녀의 입장에서는 나의 태도가 꽤나 섭섭했던 것 같다.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해서 기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 말을 지키지 못한 것에 실망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아이를 낳아 못 키울 상황도 아니었고 부부가 될 사이인데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신 소식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7년 차인데 아이가 안 생겨 고생하는 친구도 있는데 기뻐해야 될 일이 아니던가 싶었다. 하늘이 선물해 준 우리의 아이다. 꿈꿔왔던 일 아니던가. 사랑하는 그녀와 나의 피가 섞인 ‘우리의 아이‘.


면접을 보고 다시 내려간 후 나의 무덤덤한 태도에 섭섭한 그녀를 위해 이벤트를 준비했다.

꽃을 준비하고 벽에 이것저것 붙이고 "Hello Baby"라는 문구도 넣었다. 깜짝 이벤트는 성공적이었고 그제야 그녀의 마음은 조금 풀린 것 같았다(휴우.. 안 했으면 아마 평생 욕 들어먹을 뻔...)


한동안 그녀의 부모님께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께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 했다. 그러나 임신 후 그녀의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고 호르몬의 변화로 얼굴에 뾰루지 같은 것들도 나기 시작했다. 행복해야될 결혼식 준비에 딸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걸 보며 예비 장인장모님의 걱정이 커지고 있었다.(처제에게 이런 걱정된 마음을 이야기를 하셨다) 그녀는 임밍아웃의(임신했다는 것을 밝히는 것)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어느날, 이제는 말씀드려야겠다며 저녁에 집으로 오라고 했다.

예비 장인 장모님과 즐겁게 식사를 하면서 내가 말을 하려고 그녀의 눈치를 보니 그녀가 이야기하지 말라며 눈치를 줬다. 직접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가? 싶어 가만히 있었고 식사가 다 끝나고 집에 갈 타이밍까지 왔는데 그녀는 여전히 이야기하지 않고 있어서 내가 말을 꺼내야겠다 싶었다.


아버님, 어머님


응?


두 분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 됐다.

하... 이거 참 말이 쉽게 안 떨어진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좀 충격이 덜 하실까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곧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실 것 같아요


순간 두 분 눈이 동그랗게 커지면서 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셨다.

욕을 먹을까 싶어 순간 긴장했는데 (예비) 장인어른이 입을 여셨다


그걸 왜 이제야 이야기 하나?
식사 시작할 때 이야기 하지!
이거 술이라도 한잔해야겠구먼 허허허


너무나 기뻐하셨다.


그녀는 식사 내내 죄인인양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반응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본 아버님은


아니 왜 그렇게 고개 숙이고 있는 거냐,
이렇게 기쁜 소식에!!
축하한다!


두 분은 정말 기뻐하셨다.


나는 집으로 가야 될 시간이었기에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 인사를 드리고 나가는데 닫히는 문 사이로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안아주는 모습이 보였다.


스킨십이 정말 없는 부녀지간인데 그날만큼은 당신의 딸을 꼭 안아주었다.


다음 날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장인어른은 너무 기뻐하셨고 아침에 출근하면서도 딸을 안아주었다고 했다. 몸관리 잘하라는 당부의 말도 함께.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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