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부모님께 감사하며
앞선 이야기
아내의 배는 점점 불러왔고 정말 심각했던 입덧도 이제 덜 해져 아내는 마구 먹기 시작했다.
거의 분노의 섭취였다. '그동안 제대로 못 먹은 한... 이제는 풀리라' 하는 느낌이랄까. 뱃속의 아이는 태동을 하기도 했는데 가끔 손가락 발가락의 모양 그대로 아내의 배에 보이기도 했다. 아내는 자신의 뱃속에 한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걸 너무 신기해했다. 아내가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 오늘 엄청 신기한 걸 발견했어!
뭔데?
샤워를 하는데 내 발이 안 보이는 거임??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자신의 배가 그만큼 불러온 걸 잘 모르다가 샤워를 하는데 아래를 보니 발이 안 보였다는 표현이 너무 재밌었다. 그 뒤로 나는 쫓아다니며 아내가 했던 말 그대로 하며 놀려댔다. "발이 안 보이는거임~~?"
이런 신체적 변화 속에 살이 찌고 튼살이 생겨났다.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와 신체적 변화는 꽤 컸고 처음 겪어 보는지라 불과 얼마 전까지 날씬했던 자신의 모습과는 반대되는 모습에 투덜거리기도 했다. 옷도 모두 임산부에 맞는 옷으로 구매해야 했고 딸꾹질을 심하게 하기도 했고 숨을 가쁘게 쉬기도 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나온 배로 인해 몸은 무거운데 '임산부 좌석'이라고 떡하니 적혀있는데도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앉아있는 걸 보면 화가 나기도 했다.
아내는 항상 잠을 잘 때 정자세로 하늘을 보고 자는 편이고 몸부림도 없는 편이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배가 불러오니 정자세로 자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나는 몸부림이 심한 편인데 임신한 아내를 옆에 두고 자려니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도 하고 뱃속의 아이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작은 세포로 시작하여 점점 사람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초음파 속의 아이 모습을 보면 코가 꽤나 오독했는데 아내는 아이가 나오면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해했다.
아이 출산 한 달 전, 드디어 우리의 첫 집에 들어가게 되었고 주문했던 가전, 가구가 집으로 한날 들어와 집의 모습을 갖추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우리집’은 없었는데 이제 나와 아내의 ‘우리집’이 생겼다. 감격스러웠다.
나는 아내와 공동명의로 했는데 장모님이 나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사실 이게 왜 고마운 일인지 몰랐는데 여기저기서 들어보니 명의를 누구로 하느냐의 문제로 부부 간에 다툼이 있다고 들었다.
아내는 이사 후 일주일 뒤 친정으로 내려가 출산 준비를 했다. 예정일이 다가오고 나도 휴가를 내고 처갓집으로 갔다.예정일이 지나도 반응이 오지 않았고 우리는 예정일을 넘긴 다음날 오후 8시에 병원에 입원하러 가게 되었다.
처갓집에서 이런저런 짐을 챙겨 장인어른과 처제가 병원에 동행하기로 해 같이 나오는데 아내가 장모님께 다녀오겠다며 인사를 했다. 스킨십이 없는 모녀지간인데 장모님이 아내를 꼭 안아주셨다.
잘하고 와~
아내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잘 다녀올게요
나는 그 순간 눈물이 한가득 고여있는 장모님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출산의 고통을 아는 장모님은 자신의 딸이 그 고통을 견뎌야 된다는 생각에 얼마나 걱정이 되셨을까... 나 또한 공감이 되어 눈물이 날 뻔했다.
어머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보살필게요
그런 내게 장모님이 말씀하셨다.
진통이 오거든 손이라도 꼭 잡아주게...
아내는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느라 장모님의 울먹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후에 처제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우리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니 장모님이 한참을 울고 계셨다고 했다.
저녁 8시에 병원에 도착하여 입원 수속을 밟으니 새벽 4시가 되면 분만실에 내려오라고 했다.
우리는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 분만실로 향했는데 '보호자'는 6시가 되면 다시 오라고 했다. 보호자라... 이제는 내가 아내의 보호자였다. 장인어른이 결혼식장에서 나에게 아내의 손을 넘겨주는 순간부터 나는 아내의 보호자였다.
6시가 되어 분만실에 내려가니 아내는 홀로 누워 있었다.
간간히 진통이 오는 듯하더니 7시쯤 되자 진통이 심해졌고 아내의 얼굴은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는 침대를 붙잡았고 나는 장모님의 부탁이 생각나 얼른 아내의 손을 잡아주었다. 진통은 더욱 심해지는 듯했고 아내는 간호사분께 진통제를 좀 놓아달라고 했다.
일그러졌던 아내의 표정은 평온해졌고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나도 분만실에 있는 작은 소파에서 쪽잠을 잤다. 약 한 시간쯤 지나고 아내가 깨어났고 다시 진통이 시작되었다. 병원에는 삐삐 거리면서 선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기계가 있는데 그 기계의(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수치가 갑자기 올라가더니 아내의 고통도 심해졌다. 그러다 또 수치가 내려가고 다시 올라오면서 아내의 고통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아내의 손을 꼭 잡아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계속 눈물이 났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이 어린아이가 홀로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남편인 내가, 보호자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다. 동시에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도 아내와 같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출산을 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도 정말 어린 나이에 나를 위해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하셨을 거다.
아내는 약 1분 간격으로 진통이 왔고 극에 달하는 고통이 한 시간쯤 지속되었다.
진통이 시작되면 아내는 내 손을 찾았다. 그렇게 나는 아내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는데 10시 반이 되자 간호사분들이 분주해지더니 '보호자 분은 나가주세요'라고 했고 나는 문 앞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런 장면이었다. 아내는 분만실에서 출산을 하고 남편은 초조한 마음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기도하고 있는 모습(나는 의자가 없어서 서 있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시국이라 보호자 한 명만 병원에 출입이 가능했고 다른 가족들은 그저 집에서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출산을 수술방 같은 곳에서 하는 줄 알았다.
나가달라길래 아내를 데리고 수술실로 가는 줄 알았는데 입원실 같이 생긴 분만실에서 그대로 출산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분만실 앞에 홀로 서서 기다렸다.
분만실은 여섯 곳 정도 있었는데 산모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신음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다들 아내처럼 새벽 4시에 와서 유도분만을 시작한 듯했다.
내가 서있는 바로 옆 분만실에 있는 산모가 특히 고통스러워했는데
의사 선생님, 제발 수술시켜 주세요...
하며 울부짖었다.
그 소리가 들리면서 나는 더 눈물이 났다.
아내도 그만큼 고통스러울 텐데 절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자신은 어떻게든 자연분만을 하고 싶다고 했고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했는데 아내가 있는 분만실에서는 힘주는 소리와 호흡을 가다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어린 나이에 참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11시가 되면서 분만실에서 간호사분이 아내에게 '숨을 들이쉬고!' 혹은 '쭉 당기고!'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분만실의 간호사 분 한분이 나오더니
남편 분 캥거루 케어 준비해 주세요!
라며 다른 간호사분에게 외쳤고 나는 바로 옆방에 있는 곳에 들어가 윗옷을 벗고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순간,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응애~ 응애~
정말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런 아기의 울음소리였다.
아내가 있던 분만실과 내가 앉아있는 곳 사이의 문이 스르륵 열렸고 아내의 모습이 살짝 보였다.
남편 분 들어오세요
들어가자마자 나는 아내의 상태부터 먼저 보았다.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이었는데(이미 울고 있었지만) 기진맥진하여 거의 탈진 상태를 생각했던 아내의 모습이 생각보다 너무 멀쩡했고 아내는 내가 아닌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순간 눈물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아내의 상태를 너무 걱정하고 있었는데 안도감이 컸던 것 같다) 대신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아내는 나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듯했다.
그저 자신의 배 위에 올려진, 자신의 배에서 방금 나온 아이만 바라보았다.
그제야 나도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정말 세차게 울고 있었다. 누가 들어도 이 녀석은 건강하구나 싶었다. 몸에 피가 조금 묻어있었고 엄마 배 위에 누워 눈을 감고 울고 있었다. 간호사 분이 나에게 검지 손가락으로 아이 손을 잡아보라고 했다. 손을 갖다 대니 아이는 내 손가락을 덥석 잡았다. 너무 신기했다. 방금까지 엄마 배 안에 있던 녀석이 내 손을 잡다니. 나와 아이의 첫 번째 교감이었다.
간호사 분이 탯줄을 자르라며 내 손을 가위에 가져다 댔다.
실제로 탯줄은 처음 봤다. 생각보다 두껍고 탱탱했다. 탯줄이 '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잘렸고 나는 다시 아내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우리의... 첫 번째 아이야. 우리의 아이.
아내는 여전히 내 말은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저 자신의 배에서 나온 아이가 신기한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는 아이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아이와 함께 다시 옆방으로 옮겨졌다.
아이를 따뜻한 물에 목욕시켰는데 그렇게 세차게 울던 녀석이 따뜻한 물안에 들어가자 금세 울음을 그쳤다. 간호사분은 엄마의 양수와 같은 온도라 편안할 것이라 이야기했다. 나는 아이의 손을 만져보고 발을 만져보며 교감했다. 자세히 보니 이 녀석 코가 좀 눌러져 있다.(초음파에서는 오똑하더니?) 다리는 부실해 보이고 배는 볼록했다. 음...초음파 사진이랑 조금 다르군.
간호사분은 나에게 가운을 열라고 하더니 아이와 나의 맨살이 닿도록 하곤 한동안 안고 있게 해 주었다.
너무 조그마한 아이, 따뜻한 나의 체온에 안심이 됐는지 잘 안겨 있었다. 간호사분이 동영상을 촬영해 주었는데 나중에 동영상을 보니 목도 못 가누는 녀석이 고개를 들어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세차게 우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그 영상을 보면 너무 신기하다.
그러다 다시 아내가 있는 분만실로 들어갔고 아이를 아내 옆에 뉘었다.
아내는 너무 작다며 신기해했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이를 안고 간호사 분과 신생아실로 이동했다.
수많은 신생아들이 있는 곳에 아이도 보내졌고 나는 긴장이 풀려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전화기를 꺼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도 마음조리고 있으셨기에 내 전화를 많이 기다리셨을 것이다.
엄마...
'엄마'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눈물이 쏟아져 말문이 막혔다.
말이 나오지 않았고 꺼이꺼이 우는 소리만 나왔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우는 내 목소리에 너무 놀라
왜 그러노?!!
나는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재차 왜 그러냐고 묻는 어머니의 말에 대답했다
고마워요...
아내가 겪는 고통을 보며 우리 형제를 위해 한평생을 희생해 온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겨우 아내의 임신기간과 출산 장면을 본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그 고통과 수고로움이 느껴졌는데 육아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머니는 그 수많은 세월을 이겨내고 우리를 키운 것이었다. 부모가 되면 부모 마음을 안다는데 나는 아내의 출산 당일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키웠을지 가슴저리게 느꼈다. 어머니는 자신을 희생하며 우리에게 항상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셨다. 나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고 어머니는 원래 그런 존재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아내의 출산으로 이제 내가 부모가 되었다.
나는 어머니처럼 내 아이에게 할 수 있을까?
어머니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아이에게 줄 수 있을까?
아내의 출산과 동시에 나는 세상의 모든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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