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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몬 May 12. 2023

입사 조건이 직장 상사와 동거라고요? 그것도 두명이랑?

Feat. 대기업

대기업.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다들 대기업을 노렸다.

10년 보다도 더 전이니 그 당시에는 다들 대기업에 가겠다며 해당 기업의 시험을 준비하고 미친 듯이 스펙을 쌓았다. '스펙'이라는 단어도 그때 처음 생겨났던 것 같다.


나는 중문과 출신이다.

고등학생 때 배운 중국어가 재밌어서(당시엔 중국어 학원도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대학 학과를 중문과로 선택하게 되었다. 한문을 잘했던 나는 남들보다 중국어를 습득하는 속도가 빨랐는데, 영어를 수년간 배웠지만 겨우 두 달 배운 중국어가 더 쉬웠다, 아니 나에게 더 잘 맞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중국어에서 중요하다는 성조도 잘 읽었고 남들이 어려워하는 발음도 쉽게 해냈으며 한자를 외우거나 읽는 것도 금방 해냈다.


군대 전역 후 복학하니 중국어 수업을 따라 가기가 힘들었다.

고등학생 때 겨우 두 달 중국어를 배우고 대학 1학년 때는 학부제였기에 영어 수업만 듣느라 4년을 쉬었으니 처음부터 중국어를 다시 공부를 해야 했고 결국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기간 동안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중국어만 하면 되니 실력이 쑥쑥 올랐고 1년 만에 목표로 했던 HSK 6급을 땄다. 환경이 주어지니 언어 습득 속도는 더 빨라졌고 무엇보다 중국을 직접 느낄 수 있었기에 언어 외에도 중국의 문화, 음식, 그들의 성격 등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국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많은 선입견들이 깨졌다.


남들 놀 때 나는 더 열심히 놀았다. 

'여행'이라는 놀이로 말이다. 나는 웬만한 중국인들보다 더 많은 곳을 여행했다고 자부할 정도로 유학시절에 갔던 여행지만 20곳이(현재까지는 60곳 정도) 넘는다. 평소에는 하루에 (한국 돈으로) 1,500원만 쓰고 돈을 아껴 틈날 때마다 여행을 다니며 드넓은 중국을 더 많이 이해하려 노력했다.


한국에 돌아와 4학년이 되었고 남들 영어 공부할 때 나는 '중국'을 공부했다.

중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중국에 관한 지식을 쌓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중국어는 기본이고 중국의 문화, 경제, 역사 등 중국의 전반적인 부분을 다 공부했고 중국 여행도 몇 번이나 다녀왔다. 중국만큼은 남들보다 더 잘 알려고 노력했고 그 어떤 중국인과도 중국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대기업, 뭐 이런 욕심도 없었고 그저 중국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명확하게 어떤 일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는 없었다.


대신 '중국通'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중국 대기업에 부사장으로 이직하는 분의 통역 겸 비서로 갈 사람이 필요했고 면접을 볼 기회가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원래 통역 겸 비서로 같이 가려는 사람이 있었는데 중국 가기 며칠 전, 갑작스레 안 가겠다고 통보 했다고 한다) 부사장님은 이미 중국으로 넘어간 상태였고 나와 전화로 우선 면접을 보았다. 이 전화 면접에서는 중국에 오겠냐는 의향 정도와 중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 면접이었고 중국인과 중국어 면접도 했다. 이 두 가지 면접에서 통과하여 최종적으로 영상통화로 면접을 보았다. (당시 캠이 없어서 빌리느라 욕봤다 휴, 페이스톡 그런 것도 없던 시절. 심지어 내 폰은 폴더폰이었다)


영상통화로 하는 면접이라도 대면 면접이라 생각하고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넥타이를 맸다.

집이었지만 양말까지 신었다. 집에서 컴퓨터에 장착한 캠을 바라보며 두 주먹을 살짝 쥐어 무릎 위에 얹고 바른 자세로 면접에 임했다. 부사장님은 학교 성적이나 스펙보다는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셨다. 그동안 중국에 대한 공부를 다방면으로 했기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중국인은 '돌솥'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서히 끓어오르지만 한번 끓어오르면
끝까지 가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과 친구가 되기는 어렵지만
한번 친구가 되면 평생 친구가 됩니다.


중국에 대해 공부하면서 봤던 문구였고 내가 직접 중국인들을 겪어보았을 때 정말 그랬다.


면접은 약 1시간 정도 진행 되었다.

일주일 뒤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일주일이 지난 날,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합격 여부를 기다리며 집에 누워있었다. 오전부터 한참을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었고 안됐나 싶어 노심초사 하는 찰나, 오후 세시쯤 국제전화로 전화가 왔다.


동동몬씨,
중국으로 오세요


으아아아아아아아!!!

취직이다!!


당시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취직했고 내가 원하던 중국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대기업!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성을 질렀다. 4학년때 중국에 올인한건 도박이었지만 한 우물을 판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부사장님, 그리고 팀장님과 한 집에 같이 살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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