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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몬 May 24. 2023

고쳐지지 않는 술버릇 세가지

버릇이 이렇게나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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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통역 겸 비서, 부사장님과의 합숙(?) 생활 1년 정도 했을 때 부사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영업팀에 가서 배우고 와라.


1년간 이 업계에서 일을 하며 전반적인 업무 파악은 되었고 전문용어도 습득했다. 그런 나에게 영업팀에 가서 일선에 투입되어 배우라고 하셨다. 그리고 한마디 더 하셨다


1년간 나가 놀고 싶을 때도 많았을 텐데 잘 참았다.
기특하다.


당시 20대였고 중국어도 할 줄 알고 회사 동료들과도 잘 지냈기에 중국인 직원들은 나와 함께 놀고 싶어 했다.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클럽도 가고 나에게 여러 차례 함께 놀자고 했지만 나는 부사장님과 팀장님이 계실 때는 절대 놀러 나가지 않았다. 통역으로써 두 분의 귀와 입이 되어드려야 했기에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두 분 다 출장 가셨을 때는 신나게 놀았다 허허허)


1년 정도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군대보다 더 빡쎘다니까요!!) 부사장님도 내가 기특해 보이셨나 보다. 


나는 그렇게 통역 겸 비서생활을 마친 뒤 중국인들 밖에 없는 영업팀에 소속되었다.

부사장님과 팀장님과 여전히 함께 살면서 말이다. 영업팀에 가게 되면서 나는 타 지역에 몇 달간 파견을 나가있기도 했고 출장이 잦아 집이 아닌 숙소나 호텔에서 머물게 되었기에 집에는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 부사장님, 팀장님과 함께 산 첫 해에는 아무래도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을 집에 들인다는 게 찝찝하셨는지(실제로 한국인 집에서 일하는 이들에 의해 도난 사건이 빈번히 발생했다) 일 하시는 분을 구하지 않았는데 내가 나가기 직전에 여기저기 추천을 받아한 분을 구했다.


이로써 1년간의 막내 생활은 끝이 났다.

군대에서도 1년이면 일병이 끝날 무렵인데 막내 생활을 끝내듯이 말이다. 생각해 보면 군대 2년은 참 길고도 길었는데 사회에서의 2년은 금방 지나갔다. 월급이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허허허


영업팀에서의 시간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중국인들과 직접 부대끼며 그들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매장 직원들과 소통하며 매장 오픈과 폐점도 진행해 보았고 직원들을 면접 보고 뽑기도 했다. 중국은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와 일하는 직원들이 많아 매장 직원들에게 숙소를 제공했는데 본사 직원들과 함께 직원 숙소에서 함께 밥을 해 먹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당시에 내가 20대 후반, 본사직원들은 30대 초, 매장 직원들은 20대 초반이었는지라 나름 재밌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시기에 정말 맥주를 많이 마셨다.

원래 맥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배만 부르고 술은 취하지 않아서 주로 소주를 마셨었는데 중국에서는 한국식당이 아니면 소주를 마실 수가 없었다. 중국인들의 술 문화는 맥주 아니면 백주(빼갈?)이지만 우리는 대부분 맥주를 마셨다.(그놈의 칭다오...) 중국인들은 한번 회식을 하면, 아니 오늘 맘먹고 마시겠다고 하면 인원 수가 몇 명이든 일단 한 박스를 시키고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차가운 맥주를 좋아하지만 중국인들은 냉장고에 넣지 않은 상온의 맥주를 마시는 경우도 많아서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음식도 네 명이서 가면 상이 부러질 정도로 시킨다.

내 생각엔 인원수 곱하기 2로 음식을 주문하는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음식에 맥주까지 많이 마시니(맥주를 병쨰로 원샷은 처음 해봤다) 토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맥주는 화장실 가서 토하고 돌아와 다시 먹을 수(소주는 토하고 오면 도저히 다시 못 마시겠던데...) 있다. 술도 깨고 속도 비우고 굉장히 깔끔하다고 해야 하나? 그때부터 나도 맥주를 즐기곤 했다.(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었으니)

중국 노래방에 있는 오바이트 전용 세면대 (그림이 참...)

나는 중국에서 일을 했다 보니 중국의 비즈니스 문화를 많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특히 술 문화는 중국에서 많이 배우게 됐는데 중국에서 술을 마실 때는 대부분 자작을 한다. 윗사람과 마시면 공손하게 술을 따라 주지만 비슷한 직책인 사람들이거나 하면 각자 술 한 병씩을 들고(맥주일 경우) 자작으로 마시는데 나는 이 자작이 버릇이 되었다 보니 한국에 와서도 자작을 하게 되었고 친구들에게 욕을 오지게 먹었다. 중국인들은 건배를 할 때 직급이 낮거나 예의 있게 하려면 상대보다 잔을 낮게 해서 '짠'을 하는데 그것도 버릇이 되어버렸다. 또 중국은 첨잔이 예의라 윗사람이 잔에 술이 조금이라도 줄어있으면 계속 첨잔을 하는데 나는 이 세 가지 버릇이 몸에 베여버려서 아직도 고쳐지지가 않고 있다.(;;;)


부사장님과 팀장님과의 생활이 2년 차가 되었을 때 부사장님과 분가(?)를 하게 되었다.

부사장님의 아내, 즉 사모님이 중국으로 오시게 되면서 새 집으로 이사를 가셨고 나와 팀장님은 함께 나와 살기로 했다. 사실 우리는 이래도 저래도 회사, 집, 회사, 집의 생활이었기에 내가 따로 살아봤자 잠만 따로 자는 것이었다. 회사에 여전히 7시 반까지 출근했고 퇴근도 부사장님이 퇴근하는 시간에 퇴근했기에 자유시간은 거의 없었다. 나는 영업팀 소속이었지만 출장 갈 때 외에는 여전히 그들과 함께 했다.


영업팀에 소속되어 딱 2년간의 생활을 한 후 부사장님은 나를 다시 팀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비중 있는 '기획' 업무를 맡기셨다. 문제는 나의 사수가 당시 새로운 브랜드의 팀장으로 갈 계획이었고 브랜드 론칭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획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사수도 없이 덩그러니 기획자로 있게 되었다.


엑셀도 할 줄 모르던 나는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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