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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몬 May 23. 2023

팀장님과 5년을 함께 살았네요

형수님 보다 더 오래 같이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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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장님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직원들을 단합시키고 업무적으로 그들을 이끌었다면 팀장님은 따뜻한 카리스마로 직원들을 사로잡았다.


사실 중국인들은 자존심이 강하기에 자기네들 보다 땅덩어리가 작은 나라에서 온 한국인을 조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그들의 윗사람으로 한국인들 두 명이 와서 부사장과 팀장을 맡았으니 중국인들 사이에선 두 가지 시선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 그래, 너희들이 와서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자.

- 배울게 많을지도 몰라


부사장님은 자신의 생각대로 부서를 이끌어 가고 있었고 팀장님은 부서 기획팀의 팀장으로서 팀을 잘 꾸려가고 있었다.


부사장님과 팀장님은 그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사이였다.

부사장님이 중국으로 가게 되면서 직원 한 명을 데리고 가려고 했고 과장이었던 팀장님에게 같이 중국에 가자고 했다. 이에 팀장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함께 중국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라며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고 한다.

형수님과 맞벌이인 데다 이제 겨우 돌이 지난 아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정을 그 자리에서 내리고 중국에 왔다는 게 참 대단할 따름이었다.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팀장님은 항상 가족을 그리워했다.

하루도 빠짐없이(팀장님은 정말 가정적이었고 형수님과 사이도 좋았다) 가족과 영상통화를 했다. 아이는 이제 겨우 걸어 다니는 정도였고 말이라고는 '네!' 밖에 하지 못할 때였으니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이 군대처럼 내무(?) 생활을 함께 생활하고 일했다. (팀장님은 중대장, 나는 이병. 부사장님은 사단장;;)


팀장님 온화한 성격이었고 능력적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에이스였다.

부사장님은 그런 팀장님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고 많은 업무를 지시했으며 팀장님은 항상 그 일을 퍼펙트하게 처리하고 실행했다. 부사장님의 무리한 요구도 여러 번 있었지만 문제없이 해냈다. 가끔은 직원들이 어떤 일에 대해 부사장님께 여쭤보면


팀장한테 가서 물어봐.


라고 하셨는데 정작 팀장님은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님은 모든 일을 잘 해결했다.


중국인 직원들과도 굉장히 잘 지냈다.

팀장님에 대해 우선 직원들에게 권위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고함을 지르거나 쉽게 화를 내거나 누군가를 함부로 질책하지도 않았다. 항상 웃으며 직원들을 대했고 말투에서부터 온화함이 느껴졌다. 문제가 있으면 본인이 나서서 해결해 주었기에 누구나 그를 편하게 대했다. 부사장님이 크게 호통을 쳐도 팀장님은 그걸 직원들에게 이야기하거나 화를 풀지(대단한 그의 인내심) 않았다. 이렇다 보니 팀장님에 대한 평판은 우리 부서 외에도 모든 부서 직원들이 인정하는 좋은 사람이자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가 팀장님에 대해 불평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험담도 없었다. 직원들에게 부사장님은 엄한 아버지라면 팀장님은 온화한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의 이런 역할은 부서가 원활히 돌아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팀장님을 형님처럼 모셨다.

서로 의지 할 수밖에 없었고 가끔 나에게 부사장님에 대한 푸념을(나한테 밖에 할 수 없기도 했다) 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유일한 휴가는 부사장님이 출장을 가시는 기간뿐이었지만 팀장님은 부사장님이 부재중일 때도 주말도 휴일도 나를 데리고 출근했다. 회사에 오후까지 일 하다 사우나나(이 이후로 나는 목욕하는 걸 더 좋아하게 된 듯하다) 마사지를 받으러 갔고 우리에겐 그것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런 힘든 생활 속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팀장님 덕분이었다.


부사장님과는 2년간 함께 살았지만 부사장님과 분가(?)하고 난 뒤로 나는 팀장님과 3년을 더 같이 살았다. 형수님이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중국으로 오시기 전까지 약 5년을 팀장님과 함께 살았다.


중국에 오신 형수님이 나에게


동동몬씨가 마나님보다 더 오래
우리 남편이랑 사셨네요~ ㅎㅎ


라며 웃으며 이야기하실 정도였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했다. 팀장님이 결혼하여 형수님과 살았던 시간보다 나와 중국에서 살았던 시간이 더 길었다. 아이와 함께 산 시간은 겨우 1년이었는데 나와 살았던 시간이 더 길었으니...


지금의 나는 그때의 팀장님 보다 나이가 더 많다.

생각해 보면 팀장님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었을까 싶고 어떻게 그렇게 직원들의 마음을 사게 되었는지 대단하다 싶다. 지금도 연락하는 중국인 직원들은 그를 자신이 만난 리더 중에 가장 '능력있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평가한다. 이 이상 좋은 사람은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나는 그런 분을 첫 번째 직장상사이자 5년을 함께 살았으니 영광일 따름이다.


그때 팀장님께 좀 더 잘해드릴걸 하는 후회가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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