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차도 없던 내가 10살 차 그녀와 결혼한 이야기 - Final
그 전 이야기
나는 지금까지 그녀에게 했던 말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나에게 완벽한 여자였다.
그 전의 몇 번의 연애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는 깨달은 게 많다. 나 스스로 고쳐야 될 부분을 보완해 나갔고 결혼하게 될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쌓여왔다.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이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괜찮은 사람이었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했고 공감대, 공통점이 많았다. 예를 들어,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기에 카페에 가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그녀도 그렇다. 나는 TV를 보지 않는다. (약 10년간 TV 없이 살았다) 그녀도 그렇다. 이런 사소한 것들부터 잘 맞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놀란 건 돌아가신 나의 친할아버지와 그로부터 약 20년 뒤에 돌아가신 그녀의 외조부모님께서 모셔진 묘(산소)가 같은 곳이라는 것이다. 나의 할아버지와 그녀의 외조부모님이 사신 곳은 완전히 다른 도시였는데도 말이다. 우연히 이야기를 하다 알게 되었는데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라니. 우리는 조상님이 맺어준 인연이라며 웃었다.
그녀는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차가 없었기에 그녀와의 첫 번째 데이트에 고민을 하다 렌트를 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자고 했다. 차가 있으면 분명 본인이 편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장인어른은 딸들이 어디 간다고 하면 그게 어디든, 몇 시든 다 픽업을 해주셨는데 그녀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나에게 단 한 번도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요구하지 않으니 오히려 나는 그녀에게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었다.
주말 중 하루는 그녀가 쉬는 날이라 매주 그녀와 함께 맛집과 쇼핑몰에 가 맛있는 것도 먹고 이것저것 사주었다. 그녀는 나의 선물 공세를 부담스러워했지만 내가 해주고 싶어서 한 것이었기에 그녀에게 무언가를 사줄 때마다 항상 기분이 좋았다. 사실 나는 좀 짠돌이인데 그녀에게만큼은 아낌없이 주고 싶었다.
그녀가 내가 다니는 회사에 대타로 아르바이트를 온 것도 공시생이라 용돈을 적게 받았기에 잠깐 용돈을 벌러 온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절대 나에게 얻어먹지만은 않았다.
체크카드를 들고 다니던 그녀가 혹시 돈이 필요할까 봐 내 신용카드를 줬는데 (이렇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그러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다니) 그녀는 딱 한번, 자신의 교통카드에 문제가 생겨 내 신용카드를 사용하였을 뿐 그 외에는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정말 검소한 편이었다.
그녀가 들고 다니는 핸드백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손에 들고 다니는 큰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깨에 멜 수 있는 작은 것이었다. 그녀의 예전 사진을 보면 항상 그 가방들이 보이는데 무려 4,5년 전 사진에도 있길래 얼마 주고 샀냐고 물었더니 큰 건 10만 원 대 이고 작은 건 세일할 때 사서 만 8천 원을 주고 샀단다.
이런 검소한 그녀의 모습을 보니 제대로 된 걸 하나 사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고 결혼 전 혼인신고를 하던 날, 그녀를 데리고 백화점으로 가 명품백을 하나 사줬다. 그날도 그녀는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나는 혼인신고 기념 선물이라며 그녀의 손을 이끌고 기어코 명품 매장으로 들어갔다. 나 같이 명품에 관심 없던 짠돌이가 명품 매장에 들어가 돈 쓰는 날이 오다니. 그녀는 정말 대단한 존재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결혼하게 되면 그녀에게 모든 경제권을 넘기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받는 월급과 모은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지 디테일하게 정리하여(나도 내 재산을 처음 계산해보았다) 보기 쉽게 엑셀과 PPT로 그녀에게 보여주었다(이놈의 직업병).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결혼해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 위함이기도 했다.
장인, 장모님은 한 번도 내 연봉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 결혼하기 직전, 그녀에게 내가 얼마나 버느냐고 물으셨는데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 나에게서 듣긴 했는데 기억이 잘 안 나더란다 허허허. 나는 궁금해할까 봐 PPT에 엑셀까지 만들었는데 그녀는 내가 얼마나 버는지, 얼마나 가졌는지 보다 나라는 사람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들을 보면서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의 마인드는 이런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약속대로 그녀에게 경제권을 넘기기 시작했고 그녀는 알뜰하게 결혼 준비를 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에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했다. 굳이 이것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의견을 들어주고 조언해주며 지지해주었다. 사실 나는 결혼식 준비가 이렇게 해야 될 일이 많은지 몰랐는데 그녀가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서 나는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만 하면 됐다. 농담으로 결혼식을 세 번 정도 해본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드디어 우리는 부부가 됨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결혼식에 서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이란 걸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나였는데 이렇게 나에게 완벽한 여자를 만나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넘고 넘어 신랑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수 만 가지 생각이 오가는 가운데 내 인생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가족은 가장 소중한 존재다. 지금까지의 나는 내리사랑만 받아왔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그 사랑을 베풀 시간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내가 있게 해 준 나의 가족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나의 친구와 지인들에게도 감사하다.
부모님의 이혼을 보면서 자란 나, 이제는 내가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엄격하고 무섭긴 했지만 나는 아버지를 존경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아버지와는 다른 아버지가 되고 싶다. 아버지도 할아버지에게서 싫었던 모습은 나에게 하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나도 아버지의 싫었던 모습은 내 아이와 아내에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남편이자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가 10년, 20년 뒤에 내가 원했던 모습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었다고 나 스스로 떳떳하게 말할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