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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인단상

신인류

#개인단상02 : 20160205

by 사유

그는 오지 않는 미래가 불안하다고 하였고

나는 지금 매일 매일이 우울하다고 하였다


배가 고프고 허기져서 허겁지겁

마뜩지 않은 한 끼로 배를 채운다


음식에 집중하고 나면 늘 허무함이 삽시간에 퍼져간다

먹는 동안 들떠서 맛있다를 연발하다가

다 먹고 나면 더 먹지 못해서 아쉬웠다가

다 먹었다는 공허함이 온몸을 휘감는다

차라리 내 위가 두개였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까


다 먹고 나서도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다

배는 부르고 이미 커피는 한잔 마셨고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하였다


당분간 술은 멀리하기로 약속했는데

한 잔 하자는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다

신도시를 어렵지 않게 찾았지만

층수를 계속 헷갈려서 몇 번이나

다른 사무실 문을 열려고 했는지 모른다

왠지 오존은 영영 문을 닫은 것 같다

아지트 같은 곳이 또 한번 사라진다


처음의 그 신기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두 번째는 여느 술집과 다를 바 없어졌다

맛있다고 생각했던 화이트 에일도

도수 낮은 김 빠진 음료 같다


엄마한테서 온 글을 보여주었다

일목요연하고 정리가 확실한 문장들에서

피 한 방울 새어나오지 않을 예리한 칼날 같은 섬뜻함,

공포가 뚝뚝 묻어난다


내 멋대로의 나와

가족으로서의 내가

분리되어 마주 보고 서 있다


나는 어떤 칼을 건네주어야 할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초콜릿 한 덩어리 사서

원 없이 먹고 토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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