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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Jul 31. 2017

<내 사랑>

#사적인 영화 : 경계지을 수 없는 사랑과 폭력 그 어느 사이


*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간혹 흥행을 위해서 바뀌는 제목들이 많은데 이 영화도 원제 그대로 개봉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이 영화의 원제는 <Maudie>이고, 국내 개봉 제목은 <내 사랑>이다. 바뀐 영화 제목과 출연 배우의 네임 밸류만 보고도 연상되는 시나리오가 하나 있었다. 완전 무결한 사랑을 꿈꾸는 관객들을 위하여, 혹은 그것을 완수한 이 세상의 둘도 없는 연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보편적이면서도 흔한 러브 스토리를 기대했던 것 같다.  메마른 세상에 단비와도 같은 달콤한 러브 스토리를 떠올렸을까. 하지만 만약 원제 그대로 개봉했다면, 어느 정도 기대하는 결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실존 인물을 모델로 각색한 영화이며, 원제 역시 여주인공 모드의 애칭이다.   





샐리 호킨스가 연기한 모드는 어린 시절 병을 앓아 거동은 불편하지만 댄스파티에서 술과 춤을 즐기는 여인이다. 그의 오빠는 상의도 없이 부모님의 집을 처분해버리고 숙모 집에 방치해둔다. 아픈 몸이지만 자유를 꿈꾸는 이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독립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에단 호크가 연기한 어부, 에버랫이 가정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숙모의 집을 박차고 나온다. 그러나 동거 첫날부터 거칠게 대하는 에버랫의 태도만 봐도 모드의 일상이 순탄치 않음을 직감한다. 사회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에버랫은 무엇하나 말로 설명해주는 법이 없다. 언어를 가지고 설명하고 대화하는 법을 도통 배운 적 없는 남자이다. 유머는 고사하고 웃음기 하나 없다. 작은 집 또한 그를 닮아 회색 그 자체다.


애초 모드는 주급을 요구했지만 (그 주급조차 밀리기 일쑤다.) 돈을 바라지 않았다. 특별히 사고 싶은 것도 없다. 다만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종이와 붓만 있으면 더 바랄 것 없는 여자이다. 심지어 기본적인 대우도 포기한다. 남자와 같은 침대를 사용하고 게으르다고 야단맞기 일쑤고, 심지어 입을 함부로 놀렸다며 동료가 보는 앞에서 뺨을 맞는다. 또한, 나무토막보다 못하다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말도 듣는다. 이 집에서 그녀의 위치는 개보다도 못하다. 에버랫에게 숱한 언어폭력은 물론 손찌검까지 당하지만 늘 웃고 있다.  다행인 것은 부당한 일에는 부당하다고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는 점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모드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타인과 다른 시선으로 사려 깊게 전체를 바라본다. 에버랫의 부족한 면들도 그녀의 눈에서는 좋은 사람이 된다.


과연 모드의 유일한 희망이 이 남자와의 사랑이었을까?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녀를 그녀답게 해준 것은 그림이었고 그 그림에 대한 열정과 꿈이 있어 존재할 수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마법을 부린다. 회색으로 점철된 그 작은 집이 손끝을 통해 꽃이 피어나고 봄여름 가을 겨울이 찾아왔다. 이 세상은 분명 가혹한데 모드가 그린 세상은 해피엔딩 동화같고 천진난만한 아이 같았다.



사회성이 결여된 이 남자 과연 츤데레라는 세 마디로 단정 지어 표현할 수 있을까. 누군가 그랬다. 그 당시 남자들은 다 그러했다고, 최소한 대한민국 남성보다 나은 편이라고. 가부장적인 한국 남자는 더하면 더 했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사랑을 상대 평가할 수 있을까. 저 사람보다는 낫다는 말로 위안 삼을 수 있을까.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서, 혹은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 겉과 달리 뒤에서 모드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겉으로 보인 그의 행동들은 분명 폭력적이었다. 아무리 무지했다고 하더라도 모드가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행한 행동이 모두 정당화될 수는 없는 폭력이었다.


모드는 세상 보통 여자와는 달랐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랐고 마음은 늘 열려 있었다. 그래서 이런 남자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며 당신에게는 내가 필요하다는 말로 프러포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고 행복이라고 단정 지어 설파하고 싶지는 않다. 죽음 앞에서는 행복도 사랑도 그럴듯하게 미화되어 보이고 그 사람의 잘못도 용서해주고 싶어 진다. 사랑한다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표현하고 말하고 행동하길 바란다. 후회를 남기지 않을 진실함과 용기가 필요하다.  






주인공의 사랑보다 모드의 그림을 처음으로 알아봐 주고 팔 수 있도록 격려해준 샌드라와의 우정이 더욱 눈물겨웠다. 모드와 샌드라는 같은 여자로서 지지해주고 서로의 멋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동경한다. 모드의 삶을 참견하지 않고 묵묵히 옆에 있어준 사람은 샌드라였다. 샌드라는 모드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쳐 달라며 마르지 않는 그 영감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냐고 묻자 나는 단지 보이는 걸 그리는 것뿐이라고 답한다.  


순전히 이 영화가 감동적이었던 것은 모드의 사랑스러움과 그녀가 그린 그림들 덕분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모드가 그린 그림은 따스했다. 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그림들. 모드를 닮아 모든 그림이 사랑스러웠다. 마지막까지 붓을 놓지 않고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모드, 명예와 돈을 좇기보다 한결같이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그림으로 옮기기를 멈추지 않았던 열정에 울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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