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그 한마디 때문이었다
제인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쇼핑백을 내던지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이윽고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제인은 벽을 향해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다시 현관문 소리와 함께 존의 기척이 느껴졌다. 제인은 그제야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쇼핑백이 보이지 않았다. 제인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존을 바라봤다. 테이블 위에 신용카드와 영수증 몇 장이 놓여 있었다. 환불했어? 제인이 묻자 존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환불하라며? 제인이 말했다. 내가 언제? 그 말에 존이 눈을 껌뻑였다. 제인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사장이 욕 했겠네. 존은 황당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환불 안 했으면 하루 종일 불평했을 거 아니야. 제인은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몰라. 내가 뭘 원하는지. 존은 노트북을 열고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이 없었다. 제인은 그런 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때도 당신은 그랬어. 제인은 반응 없는 존을 내버려 둔 채 방으로 들어갔다.
존과 제인은 결혼한 지 반년 지난 신혼부부였다. 그날은 존이 쉬는 토요일이었고, 저녁에는 파티에 함께 참석할 예정이었다. 블루스 댄서들을 위한 파티는 밤 10시부터 입장이었다. 존과 달리 제인에게 블루스는 낯선 춤이었다. 고작 그를 따라 몇 번 춘 게 다였으나, 존이 추는 블루스가 무척 섹시하여 마음속 깊이 그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날 파티는 규모가 컸기 때문에 제인은 큰맘 먹고 빨간색 드레스를 구입했다. 거기에 맞춰 금색 댄스화까지 수제로 맞췄다. 존은 그런 제인을 위해 청록색의 긴 술이 달린 귀걸이를 선물했다. 귀걸이는 제인이 고개를 흔들 때마다 어깨 위에서 달랑였다.
그날은 오전부터 후덥지근했다. 비라도 시원하게 내려주면 좋으련만, 공기는 꿉꿉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났다. 제인이 먼저 밖에 나가자고 했다. 존이 살짝 표정을 찡그리며 굳이 그래야 하냐고 했다. 제인이 고집을 꺾지 않자 존은 집에서 쉬는 걸 포기했다. 그들은 각자 노트북을 챙겨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시원했으며, 사람들이 밀려와도 그들의 자리는 굳건했다. 제인이 뿌듯한 듯이 말했다.
빨리 오기 잘했지?
존은 노트북 화면을 보며 말없이 고개를 까딱했다. 두 사람은 커피를 시킨 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각자의 작업에 집중했다. 존은 유튜브 영상을 편집했고, 제인은 기획 기사를 작성했다. 어느새 그들은 커피를 한 잔 더 시켰고 존은 샌드위치를, 제인은 치즈 베이글을 베어 물었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즈음 존이 노트북을 덮으며 집에 가자고 했다. 제인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기사 앞에서 인상을 썼으나 이내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작은 베이커리샵이 제인의 눈에 띄었다. 한 눈에도 구운 과자를 만들어 파는 가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파란색 차양 아래 중세시대 기사를 연상케 하는 고풍스러운 문양 앞에서 제인이 말했다. 우리 이거 사갈까? 제인은 존의 지인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배가 고플 경우를 대비해서 가져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이미 반 이상은 팔리고 없었다. 에그 타르트와 까눌레는 일찌감치 품절이었고, 휘낭시에와 마들렌 정도가 소량 남아 있었다. 10개가 한 세트인 것도 있었으나 품절된 과자를 제외한 나머지 과자로만 채워져 있었다. 존이 세트로 하나 사자고 했지만 제인은 망설였다. 구성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개별 구매해도 마찬가지였고, 이왕 들어왔는데 빈손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제인은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존은 주저 없이 신용카드를 내밀었으며, 주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구운 과자 한 세트를 박스에 넣어 쇼핑백에 넣었다.
가게를 나서자마자 제인은 영수증을 확인하고 인상을 썼다. 왜 이 가격이지? 존은 넘겨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박스 값인가 보지. 과자 10개 가격에서 박스 값이 포함된 세트 가격이었다. 말도 안 돼. 그러면 그렇다고 미리 말을 해 줘야지. 존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제인은 영수증을 들고 집까지 걷는 내내 투덜거렸다. 말도 안 돼. 너무 비싸. 지금이라도 바꿀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존은 짜증이 일었는지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야,라고 묻고 싶은 걸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제인은 들으라는 듯이 소리를 높였다. 우리 속은 거 아니야? 괜히 샀나 봐. 차라리 사지 말 걸. 그 한마디 때문이었다. 존이 구운 과자를 환불해 오고 파티에 가지 않은 건.
존의 말대로 환불하지 않았다면 제인은 종일 투덜댔을지도 몰랐다. 그렇긴 해도 파티까지 취소할 필요는 없었는데. 제인은 침대에 머리를 묻고 생각했다. 나에게 조금의 시간을 줬더라면. 그랬더라면 제인도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그때처럼 말이다. 뱃속의 아기가 죽었다는 것을 일주일이 지나 결국은 인정하지 않았던가. 제인은 존처럼 다음 스텝으로 빨리 나아갈 수 없었다. 영원히 아기를 갖지 못할까 봐 무서운 동시에 자신이 행복할 자격이 있는지를 고민했다. 제인은 몸을 일으켜 화장대 서랍장을 열고 존이 선물한 귀걸이를 꺼내 들었다. 이내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제인은 서랍장 안 깊숙이 귀걸이를 밀어 넣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