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독일식 직육면체 난로는 은밀하고 집요했다.
김 대리의 진짜 꿈은 아이돌 매니저였다. 누구 못지않게 잘 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180센티가 넘는 김 대리는 피지컬도 좋고, 알게 모르게 섬세하여 적재적소에 뭐가 필요한지 파악이 빠르고 임기응변도 좋은 편이었다.
그러게 왜 여기 있냐고 묻자, 김 대리는 어깨를 크게 으쓱했다. 인생이 불가항력인 걸 어쩌겠냐며 자기도 왜 이리 오래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SM 엔터테인먼트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김 대리는 우연히 JM사의 공고 모집을 보고 홧김에 원서를 넣었다가 그만 붙고 말았다. 신문장학생 출신이었던 사장이 같은 출신의 김 대리를 마음에 들어 했다는 후문이었다. 이것도 학연이라면 학연인지 단순히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그게 불행의 시작인지 알 수 없지만, JM사는 김 대리의 첫 직장이 되고 말았다.
김 대리가 물었다. 내가 신문장학생 시절 얘기도 했던가요? 내가 고개를 젓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썰을 풀기 시작했다.
스무 살의 김 대리는 대학을 자퇴하고 신문장학생을 지원하여 도쿄로 떠났다. 신문장학생은 신문배급소에서 학비와 기숙사비를 지원받아 어학교를 다니며, 새벽 4시와 오후 3시, 하루 두 번 신문을 돌려야 했다. 일본어는 한 마디도 못했던 김 대리는 공동기숙사의 다다미 6첩 방과 특유의 곰팡내에 울음을 터트렸다. 게다가 난방이 잘 되지 않아 몹시 추웠으며 먹을 거라곤 편의점 삼각 김밥이 유일했다. 그가 배달한 신문은 요미우리였는데 신문이 젖을까봐 늘 전전긍긍했다. 신문이 젖어 항의가 들어오면 욕먹는 건 물론 급료에서도 차감됐다. 비가 오던 그날도 힘겹게 자전거로 신문을 돌리던 김 대리는 신문 한 부가 젖은 걸 발견했다. 제발 항의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그는 그 집 벨을 눌렀다.
삼십대로 보이는 일본인 여자가 나와 김 대리를 빤히 바라봤다. 여자는 그의 어눌한 일본어를 듣더니 혹시 유학생이냐고 묻고는 잠깐만 들어왔다 가라고 권했다. 집안은 꽤 널찍하고 한적했다. 신문은 남편이 보기 때문에 상관없다던 여자는 다행히 그가 출장 중이기에 문제없을 거라고 김 대리를 안심시켰다. 여자는 추우면 난로 근처에 앉으라고 일렀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독일식 직육면체 난로는 은밀하고 집요했다. 집 안은 따뜻하다 못해 뭉근할 정도로 훈훈했다. 김 대리는 난로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귤을 보며 침을 삼켰다. 기숙사로 돌아와서도 김 대리는 자꾸 귤 생각이 났다. 다음날 김 대리는 다시 그 집 벨을 눌렀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김 대리는 신문을 다 돌리고 나면 어김없이 그 집 벨을 눌렀다. 난로 가에 앉아 여자와 함께 차를 마셨고 가끔씩 화과자나 구운 귤을 먹으며 남편이 돌아오기 전까지 담소를 나눴다. 그 덕에 일본어도 늘고 전문학교까지 무사히 다닐 수 있었다고.
김 대리의 썰이 끝나자 나는 그 여자와 이야기만 나눴냐고 물었다. 김 대리는 그럼 뭘 하냐고 되물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더는 묻지 못했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독일제 난로를 검색했다. 김 대리와 일본인 여자가 귤을 까먹으며 노닥거리는 그림이 그려졌다. 정작 궁금했던 건, 두 사람이 진짜 대화만 나누는 사이였을까, 아니면 잠도 같이 자는 사이였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사무실 안에서 우리를 둘러싼 수군거림을 알고 있었다. 사수가 말하길, 김 대리가 유독 나를 챙긴다고 했다. 김 대리가 직접 찾아와 먼저 말을 걸고 스스럼없이 대하는 건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수는 우리를 가리켜 나이도 비슷하고 잘 되면 좋겠다고 재미삼아 부추겼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김 대리를 살폈는데 그는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