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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Mar 20. 2018

플래너리 오코너의 선한 시골 사람들

#10_빛과 소금 같은 선한 시골 사람들, 과연 자비란 존재할까.   

영화 <쓰리 빌보드>서 딸의 강간범을 찾지 못한 경찰 때문에 밀드레드는 광고 회사를 찾아간다.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사장 웰비는 놀라서 읽고 있던 책을 떨어트린다. 아주 짧게 자막으로  처리된 책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번역 자막과 다르지만) 그 책은 바로 플래너리 오코너의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비범한 안목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치는 악의를 이보다 더 잘 그려낸 작가가 어디 또 있을까. 플래너리 오코너는 이 사회 속 부조리와 허위, 인간 본성이 지닌 선과 악의 가면을 날카롭고 선명한 문체로 그려낸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허를 찌르는 폭력과 잔인함. 뒤통수 한대 크게 맞은 듯 얼얼한 감각을 나는 잊지 못한다.

“지옥이 없다면 우리는 짐승과도 같을 것이다. 지옥 없이는 품위도 없다”


'헤밍웨이 이래 가장 독창적인 작가', '고딕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여성 작가, 플래너리 오코너(1925~1964)는 미국 조지아주 출신으로 25세 홍반성 낭창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39세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오랜 투병 중에도 하드보일드 감성으로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해부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작품 분위기는 기괴하고 음울하며 인물 또한 일상적이면서 어디 한 군데 비뚤어져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긴다. 폭력과 죽음으로 점절된 상황 속에서도 블랙 유머를 구사한 인생의 아이러니는 날 것 그대로 충격적이다. 1971년 출간된 그의 단편 전집은 사후 출간된 작품임에도 이듬해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그밖에 오헨리 단편소설상, 미국 예술학 회상 등으로 인정받으며 SAT 추천 도서로 지정됐다. 김연수 작가는 “사건들은 기묘하고 인물들은 괴상하고 이야기는 대개 폭력적으로 끝나지만 그 아래 깊은 곳에는 선과 악이라는 종교적 주제가 흐르고 있다.” 고 추천했다. 현재 국내 번역된 책은 현대문학의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집과 문학수첩의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리고 장편은 <현명한 피>가 있다. 




문학수첩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단편집에 수록된 <선한 시골 사람들> 또한 탁월하다. 줄거리는 호프웰 부인의 30대 철학박사 딸 헐가가 성경책 방문 판매하는 선량해 보이는 시골 청년의 유혹에 넘어가 그 열정에 몸을 맡긴다. 하지만 헛간 이층 다락방에서 돌연 자신의 본성을 드러낸 청년은 헐가의 의족을 뺏더니 모욕만 주고 사라진다. 이 소설은 제목과 상반된 인간의 이중성을 결론에서 강렬하게 보여준다. 혐오와 자기기만의 가면이 무참히 까발려질 때, 우리는 수치심으로 온몸이 벌벌 떨린다. 인간은 내면의 어둠을 간직하며 감쪽같이 타인을 속일 수 있다. 그것이 진실이고, 그것이 인간이다. 과연 선함의 미덕이 가능한가 곱씹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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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시작부터 작가의 내공을 발견한다. 이웃의 프리먼 부인이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군더더기 없이 표현하며 시작된다. 두 가지 표정으로만 모든 인간관계를 맺고 판단한다는 이중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p.269) 혼자 있을 때의 정지한 듯한 무표정을 제외하면, 프리먼 부인은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표정과 뒤로 물러나는 듯한 표정, 두 가지 표정만으로 모든 인간관계를 처리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표정은 무거운 트럭이 질주하는 것처럼 침착하면서도 거침이 없었다. (...) 뒤로 물러나는 표정은 거의 사용할 일이 없었는데, 아주 드물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거두어들여야 할 상황이 되면 그녀의 얼굴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무엇보다 엄마와 딸의 관계가 흥미롭다. (이 작품 외에도 작가는 모순적인 엄마와 딸의 관계에 집중한다.) 여기서도 호프웰 부인은 딸 조이(나중에 헐가로 개명)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기독교적인 사고관으로 점철된 호프웰 부인은 아집 속에 갇혀 지내는 전형적인 남부 여성의 면모를 지닌다. 어떻게든 입맛대로 딸을 만들어보고 싶지만 딸 역시 그런 엄마에게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저항한다. 


(p.272)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호프웰 부인이 좋아하는 말이었다. ‘그런 게 인생이지!’라는 말도 좋아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말은, ‘글쎄, 저마다 자기 의견은 있는 법이니까’라는 말이었다. 그녀는 이런 말들을 식탁 앞에서 주로 써먹었고, 자기만 아는 이야기라는 듯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로 말하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조이는 큰 덩치로 식탁 앞에 앉아서 새파란 얼음 같은 눈으로 호프웰 부인의 옆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언제나 화가 나 있는 조이의 얼굴은 표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언뜻 스스로 눈이 멀었고 앞으로도 계속 눈이 먼 채로 살아가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p.275) 호프웰 부인은 조이의 그런 태도가 다리 - 조이가 10살 때 사냥 사고로 총에 맞아 절단했다 - 때문이라고 여기고 너그러이 받아주었다. 자기 아이가 서른두 살이나 되었고, 20년 넘게 한쪽 다리만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은 그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자기 딸이 남자와 춤 한번 춰본 적 없고 '평범한' 좋은 시절을 보낸 적도 없는 뚱뚱한 30대 처녀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기 때문에, 그녀는 지금까지도 조이를 어린아이로 취급했다. 조이는 스물한 살이 되자마자 나가서 이름을 바꿔버렸다. 호프웰 부인은 조이가 일부러 세상에서 가장 흉한 단어를 골라 이름으로 삼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조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엄마한테 아무 말도 없이 바꿔버린 것이다. 이제 법적으로 그녀의 이름은 헐가였다.
그녀에게 이름은 남이 뭐라고 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다. 그녀 자신도 헐가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듣기 거북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이름이 풍기는 건강한 느낌에 매료되었다. 불카누스 (주:로마 신화 속 불과 대장장이의 신이며, 미의 여신 비너스의 남편이다. 흔히 다리를 저는 추남으로 묘사된다) 가 못생긴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용광로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떠올랐고, 불카누스라면 그 어떤 여신도 마음대로 오라 가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이름을 바꾼 게 자기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행위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조이로 만들지 못하게 막은 것도 큰 승리였고, 스스로 헐가가 된 것은 그보다도 더 큰 승리였다. 

 

무엇보다 헐가는 어린 시절의 총기 사고로 한쪽 다리가 의족이다. 오코너의 인물들은 대부분 기괴한 외양을 지녔고, 그로 인해 다가가기 어려운 기묘한 매력을 품는다. 카슨 매컬러스의 작품처럼 석연치 못한 느낌을 던지면서도 묘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프리먼 부인도 헐가의 이런 정상적이지 못한 사연에 흥미를 느끼며 은밀히 욕망한다. 


(p.277) 프리먼 부인은 헐가의 무언가에 매료되어 있었고, 어느 날 그녀는 그게 바로 의족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프리먼 부인은 잘 드러나지 않는 전염병, 은밀한 신체장애, 아이들에 대한 폭력 같은 것에 대해 각별한 흥미를 보였다. 질병 중에서도 만성병이나 불치병을 특히 좋아했다. 헐가는 호프웰 부인이 사냥 사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며, 다리가 어떻게 날아가 버렸고 그 와중에 어떻게 정신을 잃지 않았는지 프리먼 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은 적이 있었다. 프리먼 부인은 바로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일인 것처럼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헐가는 30대의 철학 박사 학위를 지닌 소위 지성인이다. 그럼에도 십 대의 성경 외판원 맨리 포인터의 어수룩한 유혹에 넘어간다. (엄마조차 그가 성경책을 판매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며, 시골 사람들은 선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거듭 반복한다.) 의심 속에서도 자신의 어두운 마음을 살짝 열어 보이는 헐가 앞에 세상은 잔인하게 문을 걸어 잠근다. 과연 어느 누가 시골 사람을 선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모름지기 자신에게 결핍된 것에 흥미를 느끼는 변태적 욕망의 소유자임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작가는 이 소설의 결말을 모른 채 써 내려갔다고 한다. 작가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청년이 스스로 움직여 의족을 갖고 달아났다고 말한다. 그 섬뜩하면서 기괴한 느낌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냉소로 가득한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모순된 위로를 받는다. 반전과 전복으로 묵직한 주제를 건드리는 작가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은 언제 읽어도 새롭고 신랄하며 뻔뻔하다. 



(p.284) "무슨 말씀을!" 그녀가 소리쳤다. "선한 시골 사람들은 이 세상의 소금 같은 존재예요! 그리고 사람은 저마다 사는 방법이 다르기 마련이고,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야 세상이 굴러가는 거예요. 그런 게 인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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