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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Sep 01. 2017

리베카 솔닛 내한 강연 (1부)

"페미니즘은 우리 인간 모두를 해방하기 위한 운동이다."

한국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로 잘 알려진 리베카 솔릿은 예술 평론과 문화 평론에 걸쳐 다양한 저술로 주목받는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1980년대부터 환경과 인권 운동에 오래 동참해온 현장 운동가이다. 특유의 재치 있는 글쓰기로 일부 남성의 맨스플레인 현상을 통렬하게 비판하여 전 세계적인 공감과 화제를 모았다. 이번에 출간된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2014~2017년까지 리베카 솔닛이 페미니즘에 대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솔닛은 이 책에서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범죄, 여성 혐오, 여성을 배제한 문화, 코미디,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드는 전 세계적인 페미니즘의 새 물결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늘 강연은 김화영 통역사의 순차 통역으로 진행돼며, 이 행사는 창비, 창비 학당, 세교 연구소가 주관하고, 알라딘이 후원한다.  






이 자리에 와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모두가 나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지만, 나는 여러분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이 부끄럽다. 더 부끄러운 사실은 내가 도널드 트럼프를 당선시킨 나라에서 왔다는 것이다. (좌중 웃음) 비록 우리가 치른 선거가 진정 자유롭고 공정했는가에 대해서 의심해 볼 여지는 충분하며, 트럼프가 일반 유권자들의 투표에서 이기지 못한 것 또한 분명하다. 나는 지난 며칠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부패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한국에 간다,라고 농담하곤 했다. (좌중 웃음) 그러나 지난겨울 한국 사람들이 시민 사회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들고 일어서는 모습에 우리가 깊은 인상을 받았고 감동했다는 것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그리고 내 남동생 데이빗은 정치 사회 운동가인데, 그보다 더 이전부터 한국의 반세계화 운동가들의 용기와 헌신에 감명받아왔다. 데이빗은 홍콩에서 한국 사람들과 일했던 적이 있었고, 2013년 홍콩에서 열렸던 세계 무역기구 각료회의 반대 시위에서도 저 멀리서 한국 운동가들을 지켜본 바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여러분을 거의 모르는 채로 이 자리에 왔다. 그러나 떠날 때는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길 바란다.    


세상이 어떻게 우리를 형성하고 거꾸로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형성하는가를 탐구하는 글을 쓸 때, 나는 내 나라인 미국이 규정하는 여러 가지 구분들, 가령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구분,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구분을 가급적 상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걷기의 인문학>>을 쓸 때는 정신과 몸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생각은 정치를 하지만 몸은 겉으로 통해서 그 생각이 형성되고 대화, 발전하는 것을 거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도시와 시골을 즐거움과 정치로 구분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왔다. 한국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아는 것뿐이다. 미국의 페미니스트로써, 그리고 희망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한 글도 쓴 사람으로서, 내 눈에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두 주제는 서로 모순되는 주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금도 여성은 전 세계에서 끔찍한 폭력을 겪고 있다. 폭력은 이번 주에도 있었을 것이고 바로 오늘도 있었을 것이다. 얼마 전 이집트에 사는 나의 친구 모나 앨파하이가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신 지체가 있는 한 여성이 모로코의 어느 버스에서 집단 강간을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범죄가 드러난 것은 그 짓을 저지른 남자들이 동영상을 찍어서 온라인에 올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짓이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이런 일들은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고, 여러분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가 이런 사건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는 사실, 볼 수 있다는 사실, 뉴스로 퍼트릴 수 있다는 사실, 피해자인 여자를 비난하고 가해자인 남자를 이해하는 오래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이런 사건을 논의할 수 있다는 사실, 이 자체는 놀라운 변화이다. 구체적인 통계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언론계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이 그런 고정관념 없이, 또한 가해자 남성에게 동일시하지 않은 태도로 이런 사건을 보도해주는 것이 우리가 이야기를 바꾸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영어에서는 '속보를 내보낸다'라고 할 때, 'break the story'라는 표현을 쓴다. 이 표현은 보통 어떤 뉴스를 1등으로 보도한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나는 이 말 그대로 '오래된 이야기를 깨트린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를 감옥에 가두는 오래된 이야기, 새로운 빛을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도록 시선을 차단하는 오래된 이야기들 말이다.


이야기를 다르게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요즘 간헐적으로나마 여성에 대한 폭력을 범죄로 고발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게 된 사실 자체가 일종의 변화이다. 더 중요한 변화는 남자들이 애초에 그런 행위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며, 자신들에게 타인의 삶과 신체, 존엄, 생존, 행복을 지배할 특별한 권리가 있다는 생각 자체를 품지 않는 것이지만 말이다. 우리가 강간, 가정 폭력, 거리와 일터에서의 성추행을 이야기하게 된 것은 페미니즘 운동 덕분이었다.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름을 붙이고 범죄를 규정해야 한다고 집요하게 말해준 덕분이다. 페미니즘은 아주 단순한 사상이다.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사상이다. 즉,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 자기 일을 자기가 결정할 권리, 세상에 온전하게 참여할 권리, 존엄과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 또한 그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 운동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지난 200년에 걸쳐서 노예제, 인종 차별, 아동권을 다뤄 온 인권 혁명의 일부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은 전통적인 남녀 역할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우리가 모두 다른 젠더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남자는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도 말했듯이, 페미니즘은 우리 인간 모두를 해방하기 위한 운동이다.


나는 페미니즘이 모든 것을 바꿨다고 믿는다. 아니, 페미니즘이 모든 것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우리는 아직도 그 과정의 초기 단계에 있다. 내가 종종 떠올리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70년대, 중국의 한 고위 관료가 했던 말이다. 누가 그에게 프랑스혁명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 뭐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군요,라고. 어떤 사건의 결과는 수 백 년에 걸쳐 펼쳐지기 마련이므로 어떤 행동의 영향은 그로부터 긴 시간이 흘러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표현한 아름다운 대답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가 서론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영국 가디언지에 발표한 나의 에세이 <내가 남자였다면>의 일부를 발췌해서 낭독하겠다.  







* 본 내한 강연은 2017년 8월 25일, 건대 새천년관에서 이루어진 독자와의 만남을 재구성했으며, 개인적인 감상은 일체 배제되어 있습니다.  

* 2부는 <내가 남자였다면> 낭독 일부를 발췌하며, 3부는 독자와의 사전 질의응답으로 이어집니다.

* 녹음 상황 및 통역으로 인하여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문 및 수정 사항이 있다면 문의 바랍니다.

* special thanks to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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