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 플라톤의 <향연> (천병희 역, 숲 출판사)
에뤽시마코스 "그가 에로스를 두 종류로 구분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인 것 같네. 그러나 에로스는 인간의 혼 안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훨씬 광범위한 현상이네. 에로스는 동물의 세계와 식물의 세계뿐 아니라 사실은 우주 만물 속에 존재한다네. 내가 우리 직업인 의술에 종사하며 관찰한 바에 따르면, 에로스는 인간과 신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치는 위대하고도 놀라운 신이라네. (...) 이들 여러 가지 대립되는 것 안에 살아가 한마음을 심어줌으로써 서로 화합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음악일세. 따라서 음악은 간단히 말해 조화와 리듬에 미치는 사랑의 영향에 관한 지식이라네.
아리스토파네스 "자네들은 먼저 인간의 본성이 처음에 어떠했으며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알아야 하네. 옛날에는 우리들의 본성이 지금과 같지 않고 판이했다네. 처음에 인간의 성(性)은 셋이었고 지금처럼 남성과 여성 이렇게 두 성만 있었던 것이 아닐세. 이 두 성의 결합체인 세 번째 성도 있었는데, 지금은 이름으로만 남아 있고 그 자체는 사라져 버렸네. 당시에는 남녀가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을 다 갖춘 실체로 존재했으니 말일세. (...) 소년을 사랑하는 연인이든 그 밖의 어느 누구든 자신의 반쪽을 만나게 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그 순간 이 한 쌍은 호감과 친근감과 애정에 압도된 나머지 말하자면 한순간도 서로 떨어져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네. 그래서 그들은 평생을 함께하지만 자기가 상대방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성생활뿐이고, 단지 성생활 때문에 각자가 상대방과 함께하기를 그토록 열망하는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네. 각자의 혼은 분명 뭔가 다른 것을 원하지만 표현하지는 못하고, 원하는 바를 어렴풋이 예감하며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는 것이라네. (...) 간단히 말해 각자는 자기가 그동안 늘 원하던 바를 제의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로 결합되어 용해되어 둘이 하나가 되는 것 말일세. 그 이유는 내가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본래 온전한 전체였기 때문이네.
아가톤 "그래서 그분은 가장 젊고 가장 부드러우며, 게다가 형체가 유연하다네. (...) 누구나 인정하듯 우아함은 에로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일세. 그래서 우아하지 못한 것과 에로스 사이에는 늘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라네. 에로스 신의 아름다움에 관해서는 이쯤 하고, 그분의 미덕에 관해 말해야 할 차례네. 가장 중요한 것은 에로스는 신이든 인간이든 어느 누구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어느 누구로부터 불의를 당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네. (...) 에로스는 정의뿐 아니라 절제에도 누구보다 많이 관여한다네. 쾌락과 욕망을 통제하는 것이 절제인데, 그 어떤 쾌락도 에로스보다 강하지 않다고 누구나 다 동의하니 말일세. (...) 궁술과 의술과 예언 술은 아폴론이 발견했지만 욕망과 사랑의 인도를 받은 만큼, 따지고 보면 에로스의 제자일세. 마찬가지로 에로스한테서 무사 여신들은 음악을,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 기술을, 아테나는 직조 기술을, 제우스께서는 신과 인간을 조종하는 기술을 배우셨네."
소크라테스 "친애하는 아가톤, 자네는 먼저 에로스가 어떤 분인지 밝힌 다음 그분이 하는 일을 논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이야기를 훌륭하게 시작한 것으로 생각되네. (...) 그렇다면 에로스에 관해서도 말해주게. 에로스는 그 어떤 것에 대한 사랑도 아닌가, 아니면 어떤 것에 대한 사랑인가? (...) 살펴보게 '아마도'가 아니라 '반드시' 원하는 주체는 자기에게 결여된 것을 원하고, 결여되지 않으면 원하지 않을 걸세. (...) 따라서 이 경우에는 이 사람도 그리고 원하는 다른 사람도 모두 아직 주어지지 않아서 지금은 없는 것을 원하는 걸세. 그러니 갖고 있지 않는 것, 그 자신이 아닌 것, 결여되어 있는 것, 이런 것들이 욕망과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네."
디오티마 "소크라테스, 에로스는 위대한 정령이에요. 모든 정령은 신과 필멸의 존재의 중간에 있어요. 정령들은 신과 인간들 사이를 오가며 인간들의 기도와 제물을 신들에게 전하고, 신들의 명령과 인간들이 바친 제물에 보답하는 선물을 인간들에게 전하는 사자들이지요. 정령들은 신과 인간들의 중간에 있기에 양자 사이의 간극을 메워 모두가 하나의 전체로 묶이게 하지요. 온갖 예언술은 물론이고 제사, 의식, 주술, 온갖 점, 마법에 관한 사제들의 기술도 정령들이 있기에 가능해요. 신들은 인간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 인간들이 깨어 있건 잠들었건 정령들을 통해 인간들과 교류하고 대화해요."
'사랑이 언제나 그런 것이라면 사랑하는 자들이 대체 어떤 방법으로 어떤 행위를 통해 사랑을 추구하기에 그들의 열성과 노력이 사랑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요? 이러한 활동의 목적이 뭐죠?'
'그러한 활동의 목적은 몸과 관련해서도 혼과 관련해서도, 아름다운 것 안에서 생식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잉태 중입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한창때의 나이가 되면 본능적으로 출산하기를 원하게 돼요. 그러나 추한 것 안에서는 출산할 수 없고, 아름다운 것 안에서만 출산이 가능해요. 남녀의 관계가 곧 출산이니까요. 이러한 잉태와 출산은 신적인 거입니다. 필멸의 존재 안에 내포된 불사의 요소이니까요. 그러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데, 추한 것은 어떤 신적인 것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반면, 아름다운 거은 모든 신적인 것과 조화를 이루지요. 이런 출산에서는 아름다움이 운명의 여신과 출산의 여신 역할을 합니다. (...) 그러니까 잉태하여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자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크게 달뜨는 까닭은, 아름다움을 가진 자가 잉태한 자를 격렬한 산고에서 해방시켜 주기 때문이지요. 소크라테스, 그대가 생각하듯 사랑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랍니다.'
'아름다운 것 안에서 생식하고 출산하기를 원하지요. 그런데 왜 사랑이 생식을 원하느냐고요? 필멸의 존재에게는 생식이 영속적이고 불사의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앞서 합의한 바에 따라 사랑이 좋은 것을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좋은 것과 더불어 불사를 원하게 마련이에요. 따라서 사랑은 불사도 원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정신적인 잉태를 하는 자들도 있지요. 몸보다는 혼 안에 더 많이 잉태하는 자들도 있기 때문인데, 이들은 혼이 잉태하고 출산하기에 적합한 것을 잉태하지요. 무엇이 이에 적합하냐고요? 지혜와 그 밖의 다른 미덕이지요. 이런 것들을 낳는 이는 다름 아니라 모든 시인과 창의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장인들이지요. 그러나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지혜는 국가와 가정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인데, 그런 지혜는 절제와 정의라고 불리지요.'
'그가 접촉하는 것은 미덕의 환영이 아니라 참된 미덕이니까요. 그리고 참된 미덕을 낳아 기르게 되면 그는 신들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며, 그것이 인간에게 가능하다면 그 자신도 불사의 존재가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