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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Sep 07. 2018

와카타케 치사코의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14_ 잃어야 얻는 인생,  생명이 가는 곳에 눈물 따윈 필요 없다.


(131) 이별이 필연이라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여자의 얼굴이다.


시인 미야자와 겐지의 영결의 아침》 시구에서 따온 제목,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Ora Orade Shitori egumo)는 남편을 잃은 74세 모모코 씨의 오롯한 독백으로 시작된다. 독한 개인의 내면을 자유롭고 감각적인 문체로 풀어낸 이 소설의 비범함은 마음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여러 목소리들을 놓치지 않고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로 잡아 냈다는 것이다. 형식의 구애 없이, 고정된 시점에서 탈피하여 홀로 남겨진 고독의 아픔을 가슴 절절하게, 그럼에도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결의는 통쾌하게 다가온다.



(56-57)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건 발견이 있기 마련이다. 인생의 끝에서, 어쩌면 난 이걸 발견하기 위해 평생 부지런히 살아온 게 아닐까 싶은 무언가. 아무리 진부하고 흔한 것이라 할지라도 현장에서 시간과 공을 들여 획득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마디, 옛사람의 노래처럼 한이 서린 한마디가 있어서, 그게 또 그 사람을 수놓는. 모모코 씨의 경우엔 이 한마디가 있다. '인간은 어떤 삶을 살건 고독하다.' (중략) 변한 건 암 긋도 없아요. 어제구 오늘이구 똑같애요. 그런데도 마음이라는 녀석은 어찌된 노릇인지 기분이 돌변해 모모코 씨는 풀이 죽는다. 대체 뭣 때문에 이렇게 맥이 빠지는지, 애초에 고독이란 것의 정체가 무어인지, 모모코 씨는 알 수가 없다. 불현듯 고독감에 휩싸이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58-59) 모모코 씨는 깨닫는다. 외로움이란 얇은 종이를 벗겨 내듯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해소되는 것이구나, 세월이 약이니까 언젠가는 잠잠해지겠지. 그렇게 어물어물 얼버무리며 어떻게든 극복했다고 느낀 바로 그 순간부터 또다시 도지는 통증. 아아 이건 평생 안고 갈 통증이야, 도망칠 수 읎아.


(147)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이 슬픔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죽음은 생명 곁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다들 깨닫지 못할 뿐이다. 보고도 못 본 척할 뿐이다. 죽음이 존재한다면, 견디기 힘든 상실의 아픔도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이 세상은 사실 슬픔으로 가득하다. 모른다는 말은 하지 말기를. 상실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앞으로 충분히 맛보게 될 테니.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누구 한 사람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 와카타케 치사코 작가는 모모코 씨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주부였다. 남편의 사별을 계기로 55세부터 소설 강좌를 들었으며, 8년 후에 이 소설을 발표했고 2017년 제54회 문예상을 최 연장의 나이인  63세에 수상했다. 게다가 올해 2018년 제158회 아쿠타카와 상까지 수상하며 세상에 이런 일이, 또 한 번 인생 역전을 알렸다. 이례적인 작가 데뷔는 물론, 24일 만에 50만 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운 이 소설의 묘미는 어디에 있을까.


(66) 생각해 보면, 확장 없는 삶이었다. 보는 것에, 응시하는 것에만 국한된 인생이었으니까. 자문하고 자답만 하는 인생. 질문의 내적 소비랄까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랄까, 물 고인 웅덩이 같은 삶이었다. 남에게 뭘 시키지도 않고, 하물며 영향을 미치는 일도 없이. 남들에게 제대로 말을 걸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68) 투명한 의식 속에서 모모코 씨는 어떤 징후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이제 곧 놀랄 만한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예감. 뭔지는 몰라도 그것은 바로 곁에 와 있다. 이런 감각이 사실 처음은 아니었다. 모모코 씨는 원래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타입의 인간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건 이러저러해서 이렇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돌연 겹겹이 쌓아 올린 논리를 버리고 문득 어떤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사람들은 그걸 직관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모모코 씨는 그 한 단어로 간단히 매듭짓고 싶진 않다. (중략) 쉽게 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립된 인간이 그래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 자기 마음을 친구로 삼고자 하는 마음의 발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모코 씨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며, 수많은 인간이 내 안에 살고 있어서 다양한 생각이 가능하다.


마치 의식의 흐름 기법처럼 물 흐르듯이 자유롭게 풀어낸 문장 속에서 고독과 인생에 관한 아포리즘들이 툭툭 튀어나올 때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모코 씨는 일상 어디에서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할머니들 중에 한 명이다. (소설의 시작 단계에서 모모코 씨가 어디 아픈 것은 아닌지, 혹은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이 아닌지 의심부터 하게 된다. 여러 생각과 대화들이 정신없이 오고 가기 때문이다.) 그토록 사랑하는 남편 슈조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고 나자 모모코 씨는 홀로 이 세상에 남겨진다. 남편이 떠난 후, 갑자기 터져 나온 수많은 목소리들, 가장 깊은 본연의 욕망과 사회에서 요구받는 욕망, 개인으로서의 여성과 가정 안에서의 역할, 사회에서 주어진 여성의 순종적인 위치에서 과연 내가 누구인가를 반추해가는 과정을 스스럼없이 솔직하게 꾸밈없이 풀어냈다.


(114) 남편 목소리뿐만 아니라 어디 사는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존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대화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풀과 나무와 흐르는 구름마저도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대화가 가능하다. 그것이 모모코 씨의 고독을 지탱한다. 모모코 씨가 품은 비밀, 행복한 광기. 모모코 씨는 절실히 생각한다. 슬픔은 감동이다. 최상의 감동이다. 슬픔이 빚어내는 기쁨도 있는 법이다.



우리 모두 늙음에 관해 아직 먼 미래의 일처럼 여기며 마주 보려 하지 않는다. 그 끝 갈데없는 고독과 외로움과 맞설 용기가 부족하다. 무지로 점철된 낙관주의자가 되어 손 놓고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모코 씨의 정신은 어느 젊음 못지않게 자유롭다. 그녀는 자신과의 대화를 통한 사유를 놓치지 않는다. 고독을 외면하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슬픔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는다. 자유롭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내면으로 흘러 들어오는 목소리는 그래서 표준어일 수가 없다. 모모코 씨는 도호쿠 출신이고, 숨길 수 없는 정체성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이 소설에서는 강원도 사투리로 번역됐다.) 그녀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붙어 있는 언어와 자기 안의 융모 돌기로 빼곡하게 이루어진 감각과 사고는 수많은 대화로 넘쳐흐르고, 우리는 그녀에게 서서히 동화되어 간다.


(016) 사투리란, 나의 가장 오래된 지층입니다. 혹은 가장 오래된 지층에서 나를 끌어올리는 빨대 같은 것이죠. 사람의 마음은 한 겹으로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엔 여러 겹의 층이 있어요. 갓 태어난 아기의 눈에 비친 나의 근원적인 층과, 살아가면서 후천적으로 생기는 이런저런 층들, 누가 가르쳐 줬다고 할까요, 교육으로 주입됐다고 할까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상식이니 뭐니 하는 것들,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게 된 처세 같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겹겹이 투툼 한 층을 이룬 거라, 결국은 지구의 지층과도 같은 것이 나의 마음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모모코 씨는 '늙는다는 건, 패배를 인정하는 전투가 아닐까'라고 말한다. '녹아내리는 것'처럼 팔다리와 발가락 끝 부위가 모호해지는 느낌, 슬픔이 충만해지면서 온화하고 편안한 감각, 모모코 씨는 지금이라도 인생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스스로 터득해나간다.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고 나아갈 용기, 모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인생의 모든 아픔과 기쁨, 슬픔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시작할 수 있다. 모모코 씨처럼 우리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면 결코 혼자가 아닐 것이다. 각자의 길을 가며 모두가 서로 지켜봐 주는 따뜻한 시선에서 결국 우리 모두 함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나의 인생을 도맡고 나의 근본을 너에게 내 맡기고, 도맡고 내맡기며 대등하게 위치하는 너와 나의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의 숨은 묘미가 아닐까.


(92) 중요한 것은 사랑보다 자유다, 자립이다. 더는 사랑에 무릎 꾾지 마라.
그래. 사랑을 미화시켜선 안 돼. 인생 금방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첫째로 자유. 셋, 넷은 건너뛰고 다섯째로 사랑. 그쯤의 문제야.
여기서 둘째는 새슴스레 말할 필요도 읎아.


(118) 모모코 씨는 진지하게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다. 의미를 욕망한다. 때로는 의미 자체를 만들어 낸다. 참기 힘든 고통이 찾아오면 고통의 의미를 알아내고 싶다. 그 의미에 따라 역시 이 고통은 내게 필요했구나 하고 납득할 때, 로소 그 아픔을 받아들일 수 있다. 고통받는 지금을 긍정할 수 있다. 이건 남편이 죽고 모모코 씨가 장착한, 말하자면 단 하나의 처세술이었다.  


(140) 나의 생은 이제부터다. 터져 나오는 웃음은 터져 나오는 의욕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모두를 안고 혼자, 혼자가 되어 모두를 기억하며.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다. 맞서는 것이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상태로. 이 책도 결국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늙음, 당신의 절망, 당신의 고독, 혼자 뒤떨어진 것 같고, 혼자 소외된 것 같고, 혼자 길을 잃은 것 같은 당신에게 말하나니, 우리는 모두 함께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중략) 앞으로 늙어갈 길 위에서, 분명 잘 챙겨뒀다고 생각한 인생의 지도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을 때, 이 책이 당신과 나에게 꼭 필요해지리라는 예감이 든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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