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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Jun 22. 2018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

#13_"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은밀한 작가다. 그녀의 대표작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을 읽은 자라면 비밀스러운 공감대를 이어 나갈 수 있으리라. (이 소설을 읽은 자와 읽지 않은 자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책을 읽고 좋았다면 설명은 불필요하다. 직감으로 알 수 있는 공유를 말없이 주고받을 수 있다. 조용히 책장 한 구석에 이 책을 슬쩍 사서 꽂아놓고 홀로 뿌듯해하는 나 같은 독자도 있을까. (그것도 개정판도 아닌 세 권의 책으로 나뉜, 지금은 절판된 구판을 말이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서사는 강렬하고 그 서늘함에 압도당한다. 현실은 비극이면서 희극이다. 동정도 연민도 없이 그렇게 사는 것이고, 살아남는 것이라고 보여준다. 처음 <<문맹>>의 출간 소식에 뛸 듯이 기쁜 나머지 작가의 신간으로 오해했다. 처음으로 아고타 크리스토프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사후 출간임을 알았다. 나는 왜 동시대 작가로 착각했을까. 바보처럼. 작가 이름 앞에 故를 붙이는 우스운 멘션도 날렸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935년 10월 헝가리 시골마을 치크반드에서 태어나, 2011년 7월 스위스의 뇌샤텔에서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불과 7년 전, 동시대 작가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역사의 현장 속에서 그녀의 삶도 파란만장하게 전개됐다. 어린 시절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여파를 피해 남편과 4개월 된 딸을 데리고, 목숨 걸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이주했다. 시계 공장에서 난민을 위해 내준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이어가며 틈틈이 헝가리 문예에 시를 발표했다. 그 와중에 이방인의 언어, 프랑스어를 배우며 읽기와 쓰기를 다시 시작하며 희곡과 소설을 써나 갔다. 1987년 <<비밀노트>>를 발표하고 5년에 걸쳐 <<타인의 증거>>와 <<50년 만의 고독>>을 완성한 이 3부작은 국내에서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로 묶여 나왔고, 전 세계의 4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단번에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소설 <<문맹>>은 프랑스어를 익혀 나가는 그 어딘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짧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제목의 두 글자처럼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이 묵직한 책이다. 




주인공 '나'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문맹이 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환경 속에서 읽기와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것을 멈추는 한, 그녀의 삶은 죽음과 같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독서는 아주 게으르고 무능한 행위였다. 독서병에 걸린 나는 주위로부터 손가락질받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읽기를 멈추지 못한 이 꼬마 여자 아이가 어른이 되어 프랑스어를 몰라 책을 읽지 못한 고통과 좌절은 말로 다할 수 없으리라. 


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읽는다. 신문, 교재, 벽보, 길에서 주운 종이 쪼가리, 요리조리법, 어린이책, 인쇄된 모든 것들을.


오빠와 남동생과 떨어져 14살, 기숙사에 들어가서도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뭔가 읽을 것이 있을 때면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나는 계속 읽고, 그러고 나면 울면서 잠든 밤 사이에 문장들이 태어난다. 문장들은 내 곁을 맴돌다, 속삭이고 리듬과 운율을 갖추고, 노래를 부르며 시가 된다.


그 사이, 헝가리는 외국의 점령으로 적어(敵語)를 강요당한다. 독일어와 러시아어. 모국어인 헝가리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헝가리 혁명을 피해 스위스로 건너간 주인공은 미지의 언어 프랑스어와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스물한 살의 나이로 스위스에, 그중에서도 전적으로 우연히 프랑스어를 쓰는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완벽한 미지의 언어와 맞서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이 언어를 정복하려는 나의 전투, 내 평생 동안 지속될 길고 격렬한 전투가 시작된다. (중략) 이러한 이유로 나는 프랑스어 또한 적의 언어라고 부른다.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이 가장 심각한 이유다. 이 언어가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1956년 11월 말의 어느 날, 비밀 작문 노트를 포함하여 오빠와 남동생 부모님을 뒤로하고, 두 개의 가방을 챙겨 나는 월경한다. 한 가방은 젖병과 기저귀, 아기에게 갈아 입힐 옷을 넣고, 나머지 가방에는 사전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모두 고향에 놓고 오는 대신, 언어로 집약된 사전만은 끝내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담담한 문장 사이에서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고향과 가족, 모국어를 그리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어렵고, 더 가난했겠지만, 내 생각에는 또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건 어떤 언어로든지 나는 글을 썼으리라는 사실이다.


스위스 공장으로 배정받은 나는 이후 난민으로써의 생계를 위한 규칙적인 일상을 이어나간다. 난민이라는 입장을 잊지 않고 낮게, 혹은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억지 웃음도 지으며 살얼음을 걷는 기분으로 지낸다. 그건 분명 고되고 힘든 일이다. 읽어야 하는 자가 읽을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만큼의 수난이다.


사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사막, 문화적 사막. 혁명과 탈주의 날들 속에서 느꼈던 열광이 사라지고 침묵과 공백, 우리가 중요한, 어쩌면 역사적인 무언가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던 나날들에 대한 노스탤지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뒤따른다.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읽을 수 있어도 그녀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뒤적인다. 누군가 그녀에게 작가가 되는 법을 묻는다면, 아래의 문장을 참고하면 된다.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문맹>>의 '나'는 사회적, 역사적 비극 속에서 강제로 정체성을 빼앗긴다. 그러나 이방인의 언어를 배우며 조금씩 자기 자신을 되찾아가는 자전적인 이야기다. 과한 감상도 자기 연민도 끼어들 틈이 없다. 암시와 공백으로 이루어진 단순하면서도 명징한 문장들은 더욱 아름답다. 간결하고 수식 없는 문장들은 마치 '인생'을 보여주는 듯하다. 당신도 읽을 수 있다고, 당신도 쓸 수 있다고,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당신도 살 수 있다고, 그러니 멈추지 말라고. 처음으로 돌아와 나는 왜 그녀를 동시대 작가로 여겼을까. <<문맹>>을 읽으며 비단 그 시대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도처의 난민 문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한 문맹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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