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불가능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을 거 같아,
내가 생각한 방법이 통하길 바랄게..
엄마의 일기장엔 나를 향한 안타까운 글이
작성되어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닌데도,
마음과 감정에 관련된 책들과 함께
놓인 엄마의 일기장,
엄마의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아들의 고통을 더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이젠 내 몸도 망가져 가는 것 같다.”
“남편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
엄마의 일기장 곳곳에 놓인 글들은
내 마음을 점화시켜 질식시켰다.
마음이 무너졌다. 쓰라렸다.
불편함의 연속, 불행의 순환,
죽은 물고기,
죽어서 수면 위에 떠다니는 물고기,
그게 나인 것 같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느껴졌다.
이 순간에 엄마를 도와줄 상황도 안되고,
도와줄 능력도 안 되는 나 자신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술에 취한 엄마를 안으면서 마음으로 대화했다.
“아직 나의 문이 잠겨있지만, 언젠가 이문을 박차고
들어가 엄마를 사랑하리라, 그리고 죄인인 아들은
죗값을 혹독히 치르리라. “
심판의 날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를 빠지는 일이 잦았다.
조퇴, 결석, 무단결석, 지각,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의 평판은 더 안 좋아졌다.
16살이 되고 나니 고등학교에 대한 진로 문제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선생님 들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최대한
나를 좋게 생각해 긍정적인 부분들을 많이 작성해 주셨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제 가족과 멀어져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아직 1학기가 안 끝났으니, 생각할
시간은 충분하겠지, 다른 곳에 집중하자.
상담 선생님 과의 서로의 대한 격려와 감사 인사를 남기고 나는 상담을 중지했다.
2년의 시간 동안 선생님은 두 번 바뀌셨고, 나에게 충분한 안정과 도움을 주려 노력하신 분들 이였다.
그분들, 잘 지내시길, 감사한 마음을 바람에 실어 보냈다.
괜찮아지기 위해 일부러 괜찮은 척을 했다.
친구들과의 교류도 천천히 진행했고,
불편해했던 친구들은, 곧이어 바뀐 나의 모습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요새 네가 웃으니까 참 좋다.”
“진작 이렇게 바뀌지 그랬어,”
“너 다시 힘들어지면 그땐 우리에게 말해”
“그동안 못 본 체해서 미안해, 네가 괜찮아질 때까지
내버려 두고 싶었어. “
오랜만에 기쁜 감정을 느꼈다.
가면을 쓰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고민이 생겼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 음식을 먹는 거라,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살이 많이 쪘다.
“다이어트를 해볼까,”
좋아하던 치킨도 거르면서
살을 조금씩 빼기 시작했다.
닭가슴살을 시키고, 하루에 그것만 먹으며
죽어라 달렸다.
살이 빠지고, 친구들이 놀라고, 엄마가 나를 응원했다.
한 달 만에 17킬로를 감량하였다.
그간 운동 덕분에 우울했던 감정에서
벗어나고, 힘들어지려 하면 다시 달려서
감정을 해소했다.
“이렇게 하는 건가..?”
이대로만 간다면, 나는 우울증에서 해방될 수 있는 걸까, 깊은 심해에서 족쇄를 벗어던진 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학교 축제 기간이 다가왔고, 나는 열심히 친구들과 준비를 했다. 마지막 축제이자 마지막으로 나의 마음을 보여줄 자리가 만들어진다.
나의 차례, 우리들의 차례가 되고, 축제는
재밌게 진행되었다.
중학교를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비상하는
학생들의 마지막 얘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몇몇 애들은 유쾌하게 끝내기도 하고 슬퍼하며 끝내는 애들도 있었다.
나의 차례가 되고 나는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댔다.
“자리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감사하고, 제 곁에 있는 친구들의 앞날에 응원합니다.”
“많은 추억과 괴로움을 안았습니다.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가 성장하는 모습을 영원히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에게 미안합니다. 아들이 못났습니다. “
나는 눈물을 흘렸고,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축제를 보러 와주신 주민분들과 선생님은 침묵하였다. 그리고 나의 감정에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도 계셨다.
“어디 있지, 내가 정말 전달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또 이 자리에 없는 걸까,”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 밤낮으로 일을 다니시기에 학교행사에 들리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
.
.
“찾았다.” 엄마다. 내 엄마다.
눈이 마주쳤다.
기쁨과 슬픔의 파도가 일어난다.
엄마는 맨 뒤에서 내 눈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시고 계셨다. 곧이어 자리를 뜨시고 나가셨다.
졸업, 이라는 건 이렇게 의미가 방대하구나,
머무르고, 성장하고, 둥지를 뜨는 것, 날아오르는 것,
또 다른 바다에서 나의 헤엄은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잘할 수 있을까, 나 진짜 잘할 수 있을까, 기회라면 지금 인 것 같은데, 나..
졸업식 당일날,
나는 엄마에게 꽃을 받았고, 주변 사람들의 축하와 친구들의 격려를 안았다.
잠시나마 아빠를 잊은 듯이 지냈다. 미안한 소리가 되겠지만,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에 그리워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나의 고등학교는 사람이 많지 않은 조리과 고등학교였다. 혼자 있으며 요리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빠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요리사로 꿈을 전향했다.
“엄마, 잘 다녀올게, 나 없어도 괜찮지?, 오히려 그게 더 좋겠지만,”
“아들 고생했다, 가서는 마음 관리 잘해야 해, 드러내면 안 돼. “
나는 모르는 사람들로만 가득 찬 곳으로 향하였다.
선배들은 무섭기도 하지만 친절한 분들도 계셨다.
지나다니며 인사를 해야 하는데, 서로 얼굴을 모르기에
동급생끼리 인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배정된 자리에 앉아 책을 정리하였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서로 자기소개를 진행하였다.
내 앞자리에 있던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넌 어디서 왔어?”
아마 모를 건데, OOO에서 왔어,
“OOO? 그렇구나~ 거기 OO주변 아니야?”
오, 맞아, 넌 어디서 왔는데?
간단한 교류를 이어가며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은 친절했고, 나와 잘 맞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았다.
고요한 바다가 얼마만인지 , 까먹고 있었다.
주말이 되면 친구들과 놀러 다니며 즐겁게 지냈다.
그사이에 해선 안될 일탈도 해보았다.
혼자 담배를 태워보거나, 술을 마시는 행위,
호기심으로 해봤는데, 염치없게 재미있었다.
어릴 적 엄마에게 담배를 절대 안 피우겠다고 맹세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타락해 가는 것 같다. 그걸 즐기는 것 같다.
주말에 엄마를 보러 갔었다.
엄마가 나에게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주셨다.
엄마의 남자친구였다.
“남자친구?”
“왜?”
엄마, 혹시 아빠를 잊은 건 아니지?
당황스러웠다. 엄마 옆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
서있다. 엄마는 아빠를 잊고 싶었던 걸까,
아빠를 잊은 걸까,
나에게 얘기정돈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가 미워졌다.
“엄마, 나에게 아빠는 한 명뿐이야, 그 사람은 나에게 아빠역할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안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 그리고, 잘 모르겠다, 이젠 나도 하고 싶은 대로 아빠를 잊으면 되는 거지? “
나의 세계와 엄마의 세계가 뒤틀렸다.
나는 또 한 번의 상처를 입었고,
고요하던 바다에 태풍이 오갔다.
파도가 우리를 집어삼켰다.
“엄마가 미안해, 아들한테 미리 얘기를 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너도 봤듯이 아빠가 엄마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제일 잘 알지 않아? “
“그래서 나에게 칼을 들고 오라, 유리를 들고 오라, 시켰던 거구나, 그런 행동이 내입장에선 어떤 느낌이었는지 알아? 난 항상 지옥에 있었어, 보고 배운 게 그런 것뿐이라 나도 이렇게 되나 보지, 난 잘 지낼 수 없을 거 같아, 환경이 나를 망치고 있잖아. “
나는 드디어 엄마가 시킨 행동을 이행했다.
“들고 왔어, 여기 베고 죽어버릴 거야, 나 그냥 죽어버릴 거야, 다가오지 마, 나 더 이상 못해먹겠으니까,”
손목에 칼을 가져다 댔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하…”
또, 실수를 저지른 걸까,
엄마의 남자가 나에게 충격으로 오갔지만,
오죽하면 엄마도 외롭지 않았을까,
진정한 위선자는 내가 아니었을까,
한심해,
엄마에게 상처를 준 죄책감에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칼로 나의 팔을 그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느새 다른 상처들이 내 팔을 덮었다.
그리고 이 감정은 나의 학교생활에도 지장을 주었다.
또 나는 배제당하는 걸까, 두려웠다.
그래도 괜찮은 척하면 괜찮아질 거야,
내가 배웠던 대로 신문지를 찢어도, 숨이차게 뛰어다녀도, 오히려 더 웃고 다녀도, 이번에는 뭔가, 무언가가 이상했다.
가슴에 답답함이 해소되질 않았다.
숨이 턱턱 막혀와서 무서웠다.
상담을 끊은 게 문제였을까, 정신과 약 복용을 중지한 게 문제였을까,
괜찮다고 생각하고 정리한 나 자신이 제일 문제였을까,
내가 힘든 것조차 괜찮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어떤 감정이 몰려와도 내면에 숨겨둔 가면으로
피해왔었고, 괜찮아 보였기에 괜찮은 줄만 알았다.
나는 망가진 나의 모습을 직면하니
모든 감정의 고통이 나를 휘감았다.
“물리면 많이 아프겠지? 마비된 내 몸은 돌돌 말려
입속으로 버려지는 걸까? “
생각보다 아프다. 많이,
아팠는데 안 아픈 척했던 거구나,
나 아직은 아파해야 하는구나,
대체 얼마나 더 아파해야 하는 걸까,
뭘 더 노력하고 애써야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선생님, 저 한 달만 쉬고 싶어요.”
모든 것을 중지한 체 밖으로 나왔다.
주마다 무엇을 했는지, 적어내서 올렸다.
“무탈하게 지냄”
“무탈하게 지냄”
“무탈하게 지냄”
더 이상 나를 속일 수가 없다.
속일 필요가 없어졌다.
내 모습 있는 그대로 더 깊이 내려간다.
담배를 태우고 연기와 함께 한숨을 내뱉었다.
연기에 눈이 따가워서 눈물을 흘린다.
그런 눈물은 비와 함께 떨어진다.
우는 것처럼 안 보이지, 신기하지,
“드러내면 안 돼,”
드러냈다, 안될게 뭐가 있겠어,
“힘들면 우리에게 말해줘”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 난 괜찮아.
“우와, 쩐다.”
그러게.. 내 인생 진짜 전다.
보고 싶네, 오늘따라 더,
아빠가 좋아하는 비는 내리는데,
보러 와주면 안 돼?
아빠는 비가 내리면 항상 운치 있다며 좋아하시곤 했다.
괜찮다면 내가 아빠를 보러 가도 될까,
그래도 될까,
결국 나는 돌아갈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심해에서 마주친 나라는 괴생명체에게
살점이 뜯기는 고통을 겪고 나서야
내 선택이 명확해졌다.
이게, 마지막 이길 바라,
과거의 나야, 우리 곧 보겠네,
내가 졌어, 너를 어떻게 이기겠어, 내가,
아빠, 곧 봐요, 사랑해요.
복용을 중지하던 약뭉치에서
12일 분의 약을 모조리 꺼냈다.
팔꿈치 라인까지 새겨진
나의 상처 자국들, 뚝 뚝 떨어지는 피,
그것과 함께, 삼켜냈다.
한껏 몰려오는 졸음과 함께,
몽상가 들이여, 당신들 말씀이 옳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두렵습니까,
두려워마세요.
내 꿈은 이제야 실현된 것 같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빠..
.
.
.
.
.
보고 싶어요. 내 손 잡아줄 거지?
.
.
.
.
.
심판의 날이 왔다.
.
.
.
.
난 눈을 감았다.